반남박씨는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후예로, 고려 고종 때 반남현 호장을 역임한 휘 박응주를 반남박씨의 시조로 받들고 있으며 본관이 반남이 된 유래는 4세 휘 박수(朴秀)의 계축호적(癸丑戶籍)에 본(本)은 반남(潘南)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5세 휘 박상충이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이 예조정랑에 이르렀고 반남선생이라 하였으며 6세 휘 박은이 조선조 태종을 도와 일대동덕좌명공신으로 반남군에 봉해졌다가 반남현이 나주에 속하게 되어 금천군으로 개봉(改奉)되었다가 금천부원군(錦川府院君)으로 진봉(進奉)된 연유로 해서 호장공으로부터 여러 대 살아 온 반남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시조(始祖) 호장공은 박혁거세의 혈손으로 전하고있은나 상계가 실전되어 정확한 계대룰 알 수 없고 고려 고종때 반남현 호장을지냈으며 공이 반남호장이 되었을 때 본현의 촌락은 천호 백호의 집단이면 모두 호장을 두어서 관활(管轄)하게 하였는데 공은 그중의 일인이였다.

 

그때 관인이 석천암(石泉庵)에 보존되었던 것이 영조(英祖) 경신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의암(義庵) 회원(會源) 가승에서)  

 

 

 

향직(鄕職)의 우두머리로 고려 초 성종때, 신라 때부터 지방에 세력을 펴고 있던 성주(城主)나 호족(豪族)을 그대로 포섭하여 호장·부호장의 향직을 준 데서 부터 시작되었으며, 지방자치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983년(성종 2)에 고려 태조(太祖) 때의 당대등(堂大等)을 호장, 장대등(長大等을 부호장이라 고쳤으며, 목종 때는 호장으로 70세가 넘으면 안일(安逸)에 속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