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작성자 Alex
ㆍ작성일 2016-03-29 (화)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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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石泉庵(석천암)
允武 →允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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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종중] 石泉庵(석천암) (2016-02-05 18:04)


 


 


 

 

 

석천암은 태종 10년 (1410년)에 6세 평도공(平度公) 휘 은(?) 께서 시조 호장공(戶長公) 휘 응주(應珠)와 3세 참의공 휘 윤무(允武) 묘소를 수호하도록 재궁(齋宮)사찰(寺刹)로 창건하시었다.

호장공 후손으로 9대손녀 인성(仁聖)왕후(王后)(인종(仁宗)왕비) 12대손녀 의인왕후(懿仁王后)(선조왕비)께서 숭조사상이 유별 하시어 묘소 수호 잘하라는 전교(傳敎)(성급한 문서)도 내리시고 선조(宣祖)조(朝), 경종조때 예조를 통해 전라도 나주 반남에 암자는 바로 인성왕후(仁聖王后), 의인왕후(懿仁王后) 양왕후의 선세산소의 제궁이니, 수호하고 제사하는 제절을 모두 이암자에 위탁하니 승도(僧徒)에게는 잡역 세금을 일체 부과 못하도록하는 교시(증서)로 오늘날도 대종중주관시 제전묘소제사를 석천암에서 올리고 있다.

 

자는 평도공께서 창건하신후 세 번 중수하고 안타갑게도 영조15년(1739년) 석천암이 화재로 전소되어 보장되오던 귀중한 호장관인 제기 제전문서 선조 조의 수교 인성왕후 의인왕후께서 내시로 하여금 성급한 전교 예조완문 중수문서 교권표석의 제문 등도 꺼내지 못하고 함께 소실되었다.

석천암이 소실되자 당시 도유사 남곽공후 금평위(필성)께서 종원의 중지를 모아 재건을 서둘러 2년후 영조17년(1741년)에 준공을 보아 석천암이 오늘에 이르렀다.

 

※위의글은 대전지회에서 발간한 “시조묘역 홍보자료”에서 발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