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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관리자
ㆍ작성일 2016-03-23 (수)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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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밥(속반粟飯)과 평도공

서울지명사전 북바위

구분

자연명 >바위

위치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유래

모양이 북처럼 생긴 데서 유래됨.

 

성북구 안암동 1번지 고려대학교 구내에 있던 바위로서, 모양이 북처럼 생긴 데서 유래되었다. 한자명으로 종암(鐘岩), 고암(鼓岩)이라고 하였다. 북바위 부근의 논, 밭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온다. 북바위 부근에 학더미라는 논이 비옥하여 세 마지기에서 나는 쌀로 10여 식구가 살 수 있었는데 욕심 많은 주인이 곡식을 더 내어 먹으려고 논 가운데 있는 더미를 파 들어가자 속에서 학이 날아가고 그 뒤로 논은 박토로 변했다 한다. 북바위 부근의 토지는 소출이 잘 나서 유명하였다. 태종이 하루는 몰래 우의정 박은(朴訔)의 집에 이르러 박은이 조밥을 먹는 것을 보고 한 나라의 재상으로서 이렇게 가난해서야 되겠느냐?” 하고 북바위밭(고암전) 몇 마지기를 주었다고 한다. 종암 [바위]

북바위(서울지명사전, 2009.2.13,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정릉천과 월곡천이 만나 흘러내리는 개울이 이제는 주민들의 산책공간이 되었다. 이 길을 건너 고대(高大) 방향으로 간다. 10분이 안 걸려 길을 건너면 교우회관 건물 앞으로 가게 되는데 우회전하여 50m 가면 개운산 방향으로 가는 길을 만난다. 즉 고대 후문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로 1km 가면 고대 후문이 나오고 개운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이 있다. 이 동네를 예부터 북바위(鼓岩)골이라 불렀는데 북바위를 일명 종암(鐘岩)이라 했다 한다. 종암동이란 지명은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한경지략에 의하면 북바위밭(鼓岩田)은 예부터 기름지고 소출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조 초에 우의정 박은(朴訔)이 북바위골에 살았는데 청빈하였다고 한다. 하루는 왕(태종)이 미행 나왔다가 박은의 집에 들렀는데 조밥을 먹고 있던 박은은 급히 씹던 밥을 삼키려다가 목에 걸려 기침하느라 임금을 한참 기다리게 했다고 한다. 화가 치민 태종이 그 연유를 묻자 아뢰니 그제야 태종은 박은의 청빈함을 알아보고 북바위골 농토를 하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북바우가 鍾岩으로

종암동의 동명은 고려대학교 뒷산에 종 또는 북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어 한자로 鍾岩이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平度公과 고암전(鼓岩田)

조선초 문신 박은(朴訔1370-1422)은 좌의정의 벼슬까지 올랐으나 평소 검소한 생활을 하고 가산을 생각하지 않아 자신도 조밥과 거친 옷으로 자족하는 생활을 하였다. 하루는 태종이 사복 차림으로 그의 집을 찾았는데 마침 조밥 식사를 하다가 재채기가 나서 곧 나와 손님을 맞이하지 못함에 오랫동안 문 밖에 서 있던 태종의 안색이 자연 좋지 않았다.이를 송구스러워 하며 사실을 말하자 태종은 놀라 믿지 못하고 경이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조밥을 먹다니 말이 되느냐면서 사람을 시켜 안으로 들어가 알아보게 하였는데 사실이어서 이때 태종은 감탄하며 특별히 명하여 동대문 밖의 북바위 부근의 논, 밭 몇 마지기를 주게 하였다고 한다. 鼓岩田은 현재 안암동 1번지 부근에 있다. --성북구청 홈페이지에서--

 

 

 

평도공의 집터

이규태 코너 풍류마당사적고(事蹟考) 중에서

 

풍류의 마당으로 개방된 겨우 1km의 동숭동거리는 지금 흔적을 찾아 볼수없는 사적이 촘촘 하게 밀집된 역사의 거리이기도 하다 굵직한것부터 가려보자.

서울대 의과대학의 남쪽 경계즈음이 태종의 외손자요, 간신 유자광의 모함으로 젊어서 죽은 남이 장군이태어나 자라던 집터이다. 이집터에는 장군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한 남이탑이 서 있었다던데, 이미 복원돼야 했을 사적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다. 남이탑의 바로 그 이웃에는 세조때 정승이며 풍류로 우상처럼받았던 이석형(李石亨)의 초가집 계일정(戒溢亭)이 있었다.

문헌에 보면 연못을 파 물이 넘치지도 또 마르지도 않게 자연조절하여 그의 자손이나 찾아 오는 손님에게 매사를 분에 넘치지 않게 하라는 훈계를 이 계일(戒溢)로 했다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연못의 연꽃이 너무 아름다워 연지동이라는 동네 이름까지 남아 있게된 것이다. 그 초정(草亭)과 연못이 복원된다면 얼마나 좋은까 하는 생각이다.

그 연못 맞바래기에 북벌 계획을 세웠던 용기있던 반사대주의자 효종과 그의 아우 인평대군이 태어나 자라던 조양루(朝陽樓)가 우애를 상징하며 맞바라보고 있었다. 성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락으로 소문난 옛시에 자주 오르고 있는 다락들이다.

태종때 청빈하기로 소문난 박은(朴訔)의 집도 바로 그 길가에 있었다.

높은 정승이면서 못사는 사람에게 녹을 나누어주고 가난한 초가에서 조밥을먹고 사는 것을 직접 숨어보던 태종을 놀라게 했다는 바로 청빈의 집인것이다. (下略)

 


 

<동소문도: 정선 동소문도’(비단에 수묵담채/18.6 ×17.4cm). 정선이 옛 성북동 계곡을 바라보고 그린 그림. 본래 혜화문(동소문)은 문루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한동안 문루가 없는 암문(暗門) 형태의 무지개문으로 남아 있었다. 이 그림에서도 무지개문만 보인다.

 

동소문도 그림 아래 부분 기와집 그림은 평도공의 쌍백정 근처로 추정된다

 

 

 

특사고암전(特賜鼓巖田)(太宗16)

上幸公第特賜鼓巖田    
公雖出入中外位極人臣然儉約敦睦俸祿皆分濟親黨故家甚貧一日太宗微行訪公
立門前稍久公食粟飯而嚔不則迎拜上怪問之對曰臣適飯粟入口數嚔不下故所遲死罪惶恐 上曰卿爲宰相乃食粟飯耶使人入視之果然上深加嗟歎仍特賜靑門外鼓巖
田若千畝子孫世守 公第在東部雙柏亭云
潘南記. 燃藜室記述. 潘陽三世顯彰錄

 

 

<번역문>

 

특사고암전(特賜鼓巖田) 太宗16(丙申1416)

임금이 은()의 집을 행차하시어 특별히 고암전(鼓巖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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