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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계 후손의 초헌과 축문(박한우) 에대한 생각

방계 후손의 초헌과 축문(박한우) 에대한 생각

방계 후손의 초헌과 축문(박한우) 


방계 후손의 초헌과 축문(박한우) 에대한 생각

박한우 종인의 글을 읽고 세일사(歲一祀)와 축문에 대한 소견2가지 의견을 올리면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하오니 좋은 의견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1. <...1년에 한 번 묘전에서 세일사를 올린다. 어떤 이는 이를 혹 시제(時祭)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말로, 보통 1년에 한번 묘전에서 지내는 제사는 세일사(歲一祀)라거나 혹은 시향(時享)이라고 부른다> 에 대한 소견입니다.

우리종중의 반남봉사(奉祀)등을 세일사(歲一祀)라고 호칭하는 종인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어사전의 의미로 보아서는 반남봉사 등 1년에 한번 올리는 제사는 세일사(歲一祀)라고 해야 가장 적합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위에서는 한우종인께서도 <혹은 시향(時享)이라고 부른다.>라고 한다 하셨는데 이도 최선의 명칭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에서도 다른 표현으로 사시제(四時祭), 시사(時祀), 시향(時享), 절사(節祀), 묘제(墓祭) 등을 같은 의미로 사용됨을 볼 때에 말입니다.

시제는 일반적으로 가을에 시행되는 시제를 보통<시제>라고 통용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가을시제> 또는 <시제>로 호칭한다하여 큰 혼란이 없을 것이라면<세일사>든 <시제>든 통일된 공식적인 호칭이 결정시까지는 현재 널리 사용되는 <시제>호칭을 사용하되 우리대종중에서는 이의 명칭을 통일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직계후손이 아닌 방계 후손이 세일사에 참례하여 초헌을 헌작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축문을 올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봉사위의 세일사에서 종손이나 봉사손이 읽어야하는 축문을 방계 후손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그릇된 예의(禮義)이고 잘못된 예의(例義)가 아닌가 생각되어 여러 어르신께 여쭈어 봅니다.>
초헌관은 종중이이라는 집단의 대표자나 임원이 초헌관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축문의 경우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듭니다.

방계후손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에 맞게 고쳐야 할 것이란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적 제도가 바뀌어 상속법 등을 볼 때 우리민법에서도 장자나,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시하는 등을 볼 때에 직계나 방계를 꼭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생각도 됩니다 

그리고 직계가 봉사위 전체에 초헌관으로 참여 할 수가 없는 경우에 방계후손이 직계를 대신해서 초헌관을 한다고 생각을 한다면 별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것으로도 생각됩니다.

방계도 같은 선조의 봉제사를 모시는데 같은 후손으로서 동등한 자격자로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봄도 고려대상일 것입니다

이렇게 다르게 해석되는 문제는 우리 종중이 시급히 한가지로 통일을 시키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2018.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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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헌관 [初獻官] 국어
예전에, 나라의 제사 때에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일을 맡아 하는 임시 벼슬을 이르던 말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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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전용어사전

초헌관[]

종묘(宗廟)나 능에서의 제례()에서 삼헌(三獻)을 할 때 처음으로 술잔을 신위()에 올리는 직임으로 대개 정1품의 관원이 이를 맡았음. [참고어]삼헌(三獻)

용례

  • 이조에서 계하기를, “모든 제사의 의식을 정할 때에, 사직과 종묘의 초헌관은 정1품, 아헌관은 정2품, 종헌관은 종2품, 천조관은 종2품이며, 예차도 2품 이상으로 정하였는데, 지금 각도 감사와 장수들은 모두 경관으로써 겸임했기 때문에, 모든 제사를 아울러 행할 때에는 1, 2품 관원이 혹 부족함이 있으니, 지금부터 섭행하는 큰 제사에는, 초헌관은 1품, 아헌관은 2품, 종헌관•천조관의 직사는 정3품으로 정하고, 중사에는 풍운뢰우•선농•선잠•우사•문선왕석전 등을 제외하고는 초헌관도 정3품으로써 정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吏曹啓 諸祀儀式詳定時 社稷宗廟初獻官正一品 亞獻官正二品 終獻官從二品 薦俎官從二品 預差 亦以二品以上差定 今各道監司將帥 皆以京官兼任 故當諸祀並行之時 則一二品或有不足 自今攝行大祀初獻官差一品 亞獻官二品 終獻官薦俎官職事正三品 中祀除風雲雷雨先農先蠶雩祀文宣王釋奠祭外 初獻官亦以正三品差定 從之 [세종실록 권제30, 10장 뒤쪽, 세종 7년 11월 8일(계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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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헌관 [ 初獻官 ] 제사·시제-지방·축 / 예절과 풍습

2011. 4. 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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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헌관
 
종묘(宗廟)나 능에서의 제례(祭禮)에서 삼헌(三獻)을 할 때 처음으로 술잔을 신위(神位)에 올리는 직임으로 대개 정1품의 관원이 이를 맡았음. ꃫ삼헌(三獻). 
 
용 례
 
이조에서 계하기를, “모든 제사의 의식을 정할 때에, 사직과 종묘의 초헌관은 정1품, 아헌관은 정2품, 종헌관은 종2품, 천조관은 종2품이며, 예차도 2품 이상으로 정하였는데, 지금 각도 감사와 장수들은 모두 경관으로써 겸임했기 때문에, 모든 제사를 아울러 행할 때에는 1, 2품 관원이 혹 부족함이 있으니, 지금부터 섭행하는 큰 제사에는, 초헌관은 1품, 아헌관은 2품, 종헌관•천조관의 직사는 정3품으로 정하고, 중사에는 풍운뢰우•선농•선잠•우사•문선왕석전 등을 제외하고는 초헌관도 정3품으로써 정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吏曹啓 諸祀儀式詳定時 社稷宗廟初獻官正一品 亞獻官正二品 終獻官從二品 薦俎官從二品 預差 亦以二品以上差定 今各道監司將帥 皆以京官兼任 故當諸祀並行之時 則一二品或有不足 自今攝行大祀初獻官差一品 亞獻官二品 終獻官薦俎官職事正三品 中祀除風雲雷雨先農先蠶雩祀文宣王釋奠祭外 初獻官亦以正三品差定 從之 [세종실록 권제30, 10장 뒤쪽, 세종 7년 11월 8일(계묘)]
 

종중주관 묘제(세일사.시제)시 초헌관은?  
 
문:  1, 종중 주관으로 시제를 지낼때 초헌관은  종회 회장이 하는가 종손이 하는가에 대하여 자문을 구합니다
2, 한분이 아니고 여러 위를 지낼때 회장이 또는 종손이 초헌을 모두하는것 보다 골고루 참여 시키는것은 어떻습니까
 
답: 아래와 같이 살펴보건대 親盡祖 墓祭(歲一祭)에서의 初獻者는 모인 宗人中 行列 最尊者가 행하는 것 같습니다.
 四時祭및 親未盡祖의 墓祭 初獻은 宗子(主人) 이외는 初獻을 할 수 없듯이 親盡 墓祭에서도 墓가 아무리 많다하여도 모인 宗人中 行列 最尊者 이외는 예법상 초헌관이 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遂菴曰親盡墓祭三獻可也祝文臨時製用以行列最尊者爲之可矣
●葛菴曰若非百世不遷之大宗則當以會中長幼爲主辦祭者不可越尊長爲主初獻之後使之一獻亦合人情
●大山曰家禮大宗親盡則藏主於墓所而宗子主之歲率宗人一祭之第二祖以下親盡則埋主於墓所而諸位迭掌歲率子孫一祭之據此則除大宗墓外皆當以昭穆最尊者爲主恐或得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예사랑 (2009-10-11 22:10:32)
 
답: [원장님께, 愚見을 드립니다.]
<1>. 세일사의 대상은 세대가 멀고 자손이 많으므로, 후손들이 문중으로 묶이고 조상의 세일사를 위해 전답 등 位土가 마련됩니다. 따라서 세일사의 봉사자는 (대체로) 문중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그러므로 세일사의 초헌관은 (반드시) 종손이 되는 것이 아니고, 貴見처럼 문중대표나 종회가 결정한 유사가 할 수도 있습니다.
 
<3>. 貴見의 “여러 位의 경우, (회장이나 종손이외) 초헌의 분담여부” 는 (종회의 결정으로) ‘그렇게 해도 무방할 것’ 이란 소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일사를 받드는 조상은 직계 후손만이 아닌, 모든 후손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4>. 참고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제가 아는) 數 世代의 세일사를 모시는 某 門中은 제의대상과 후손의 관계를 고려, 초헌관을 분담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이 경우 세일사의 참여 및 문중의 화합 등 장점이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리효재 (2009-10-12 01:41:43)
 
답: 효경외전(孝經外傳) 下편에 大宗과 小宗의 구분에 대한 기록입니다
[[종(宗)이란 무엇인가? 종은 높다는 뜻이다. 선조(先祖)를 맡고 있기에 종인(宗人)의 존경을 받는 것이다. 
대종(大宗)은 소종(小宗)을 거느리고 소종(小宗)은 군제(群弟)를 거느려, 가산의 유무를 서로 통용하니, 이것이 종인들을 다스리고 거느리는 길이다. 
 
시조(始祖) 이후를 맡고 있는 자가 대종이니 이는 백세(百世)의 종이고, 
고조(高祖) 이후를 맡고 있는 자는 5세(世)가 되면 옮겨지는데, 위에서 조(祖)가 체천되면 종(宗)도 아래서 바뀌게 된다. 
증조 이후를 맡고 있는 자는 증조종(曾祖宗), 조부 이후를 맡고 있는 자는 조종(祖宗), 아버지 이후만 맡고 있으면 부종(父宗)인데, 이를 다 소종(小宗)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소종이 넷, 대종이 하나로 모두 다섯 종(宗)이 있는 것이다. 
제후(諸侯)가 되면 탈종(奪宗)할 수 있고, 대부(大夫)는 탈종할 수 없으며 소종은 중간에 끊길 수 있어도 대종은 끊길 수가 없다.]]
 
이 문헌을 근거로 한다면 
 
<1> 대종은 백세의 종으로 시조 또는 파시조로 부터 5대조 까지를 대종으로 구분하여 대종회(大宗會)가 구성되어 모든 종중의 운영 의사결정은 대종회 종회장이 하므로 종회장이 초헌관이 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되며, 물론 종손이 건재한다면 종손이 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아마도 대다수의 문중에서 적종손이 20대 이상 이어져 내려오기는 힘들것으로 봅니다.
 
<2> 번의 질문 경우에는 딱히 전거는 없으나 예를 들어 동원강(同原岡)에 15대조가 함께 모셔져 있다고 가정한다면, 
 - 합제로 묘셔서 대종회장이 초헌을 맡으면 될 것이고,
 - 각기 따로 모신다면 제일 윗대는 참사원 모두가 참여하여 대종회장이 초헌을 맡고,
 - 이하 子派 또는 支孫派는 해당 자파 종회장(대종회 아래의 子派별 종중구성의 경우)이 초헌을 맡으면 될 것입니다.
 - 소종은 고조부 이하의 종중이니 만큼 시제의 대상에서 제외되니 논란의 소지가 없을듯하나 그래도 종손이 섭섭하다면 가까운 선대의 초헌관으로 봉무한다면 크게 예에 벗어나지 않을것으로 사료됩니다. 
草庵 (2009-10-12 06:40:20)
 
답: 添言; 祭의 主人은 親未盡에서는 적자손(宗子)이 되고 親盡 歲一祭 墓祭에서는 行列 最尊者이니 만약 一山內 旁系 墓가 혼재하여 있다면 그 역시 그 자손 중 行列 最尊者가 초헌자가 됨은 당연한 것임.
 
●南塘曰旁位同在一山者惟在本孫所處不必以此爲拘也若在祖先位則宗孫不能行之代備行祭可也祖位不祭而獨祭下位非所可論也
●老洲曰見詢墓祭若旁親之尊雖在同岡之內各自成宗祭主各異則似不可以旁尊之有故不祭從以遽廢也尤翁所謂尊位不祭卑者從而不得祭者盖指祖先子孫而言恐非謂旁親也
●梅山曰祭祀須用宗子法而宗家歲事不能備禮則支子之祔葬者當爲之助祭用薦殷奠若不並擧於曾高以上諸位則恐難差殊用犯豐昵之戒也諸墓雖在他所恐不宜異同也支子若別占塋域恐不必視宗子爲禮耳
●家禮祠堂篇旁親無後者以其班祔條本註伯叔祖父母祔于高祖伯叔父母祔于曾祖妻若兄弟之妻祔于祖子姪祔于父姪之父自立祠堂則遷而從之
●小記庶子不祭殤與無後者從祖祔食也註不祭殤者父之庶也不祭無後者祖之庶也此二者從祖祔食共其牲物而宗子主其禮焉宗子之諸父無後者爲墠祭之疏祖廟在宗子之家故殤者之親共其牲物而宗子直掌其禮諸父無後爲墠祭之者宗子是士帷有祖禰二廟故爲墠祭之若宗子爲大夫得立曾祖廟者祭之於曾祖廟不於墠也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예사랑 (2009-10-12 08:41:17)
 
답: [ 이 글을 읽으시는 제현께, 다음의 所見을 드립니다.]
 
<1>. 조상을 기리는 제사는 그 명칭, 형태, 장소 등의 여러 구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縮約하면 ‘未親盡祖(四代奉祀)’ 께 드리는 제사(기제, 차례, 묘제 등)와, ‘親盡祖’ 께 드리는 세일사(대체로 묘제)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친진조라도 불천지위는 기제로 모십니다.] 
 
<2>. 고조부모까지의 모든 제사는 장자손이 주인입니다. 그러나 5대조 이상의 조상은 세일사로 모시는데 (반드시) 종손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문중 대표가 주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3>. 과거의 예서는 당시의 역사(제도)이며, 그것은 민족의 소중한 전통입니다. 그러나 고례도 수많은 변천을 거쳤듯이 예법이란 시의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국가의 제도를 지키려면 가정의례가 있으나, 우리의 정서로는 (그래도) 성균관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입니다.
 
<4>. 아래는 세일사에 관한 성균관의 견해입니다.
◈ 세일사[세일사 총설]; 성균관 발행 ‘우리의 생활예절’ P. 370
 
1. 세일사 명칭; 세일사란 1년에 한 번만 지내는 제사란 뜻이다. 기제를 지내는 조상은 기제. 차례 등 1년에도 여러 차례 지내지만 세일사를 지내는 조상은 1년에 한 번만 지낸다. 어떤 이는 세일사를 時祭라 하는데 시제란 매 계절의 중간 달에 지내는 제사를 四時祭라 하는 것이다. 또 墓祭라고도 하는데 명절 차례 등 묘지 앞에서 지내는 제사는 모두 묘제이다.
 
2. 세일사 대상; 고조까지는 기제를 지내므로,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 지낸다. 다만 不祧廟는 세일사를 지내지 않는다.
 
3. 봉사자손; 세일사는 대개 자손이 많기 때문에 자손들이 문중을 형성하여 전답 등 위토가 마련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세일사의 봉사자는 그 문중이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주인도 꼭 장자손이 되는 것이 아니고 문중 대표가 되기도 한다.
 
4. 배우자 합사; 해당 조상의 배우자를 합장했으면 당연히 내외분을 합사하나 만일 묘지가 따로 있으면 따로 지내기도 한다.
 
5. 세일사 일시; 대개 추수가 끝난 음력 10월 중의 하루를 지정해 지낸다. 같은 10월이라도 윗대 조상을 먼저 지내고 아랫대 조상을 뒤에 지낸다. 그러나 묘지가 윗대 조상의 묘지 근처에 있는 아랫대 조상은 그 윗대 조상보다 먼저 지내게 되기도 한다. 즉 교통편의 등을 참작해 순서를 바꿀 수도 있다.
 
6. 세일사 장소; 원칙적으로 해당 조상의 묘지에서 지낸다. 만일 묘지가 없어 제단을 모았으면 제단에서 지낸다. 더러는 묘지도 없고 제단도 없으면 위패를 祠宇에 모시고 지내며, 사우도 없으면 편리한 곳에 지방을 모시고 지내기도 한다.
 
[덧붙임]; 세일사의 절차 중 2항.
2. 주인. 주부; 제주는 반드시 구태여 장자 손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문중 대표자가 되기도 하며, 세일사에는 부녀자들의 참사가 어려우므로 꼭 주인의 아내인 주부가 아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출처] 종중주관 묘제(세일사.시제)시 초헌관은 누구인지 (호원 이강욱) |작성자 이강욱

 가족묘원 묘제 축문을 어떻게 쓸까요                         
프로필이미지baks****


7대조및 그 자손들의 가족묘원에 초헌관인 종손의 직계 뿐만 아니라 방계선조 여러분도 함께 모셨고 묘제는 자손들이 모여서 합동으로 지내고자 큼지막하게 제단도 만들었습니다.
이럴때 1. 강신과 참신은 한번만해도 될까요. 2. 묘제와 산신축문은 어떻게 쓸까요. 2-1 종손의 직계뿐이라면 7,6,5대조등으로 나열할 수도 있겠는데, 6대조 이하는 형제들과 그 자손도 함께 모셨으니 어떻게 호칭할지 난감합니다. 2-2 "7대조고 OO부군, 7대조비 OO김씨 이하 후예열위"라고 해도 될까요. 2-3 산신축문에는 7대조만 적어도 될까요.
전례에 밝으신 여러 문중의 사례를 알려주시면 큰 도움되겠습니다. 
질문자채택
*  [가족묘원]을 조성한 동기는 조상의 산소를 일관되게 관리하고 시제 및 묘제등의 봉행편의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고유한 우리네 관습이 있기는 하나, 세속의 변화에 맞추려는 후손들의 편의성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모든 절차는 산소 한분씩 모시던 경우와는 다르게 진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제나 묘제의 절차는 각 가문마다 달리 하는 것이므로 제3자가 여차여차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이나, 유사한 예를 들어 드리오니 참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문 1]  강신과 참신은 한번만해도 될까요.
[예 1]  [가족묘원] 한 곳에 조상님들을 모셨으므로 [분향 강신] 및 [참신]은 한 번만 해야 되겠습니다. 
       후속 절차인 초헌 및 독축, 아헌, 종헌, [유식], 사신 ..등도 한번씩만 시행합니다.
   (다만  초헌-아헌-종헌의 절차내에서 술잔은 해당되는 조상분께 따로따로 모두 올려야 함.)
 
[문 2]  묘제와 산신축문은 어떻게 쓸까요.
[예 2]  ( 종합하여 설명 )
           1. 산신제의 축문에서는 조상의 어느 한 분만을 표기하지 않고 [선조지묘]라는 표현을 쓰면 편리 합니다.        
               예 :     維歲次 云云 ...........  幼學 ○○○ 敢昭告于
                     土地之神 今以吉日 恭修歲事于 先祖之墓  .............
           2. 묘제축문에서는 모시는 제일 윗 조상에 대한 초헌관의 대(代)수와 이름을 명기하고 축문 내에는 모시는 모든 조상님들을 열거합니다.
               예 :     維歲次 云云 ...........  七代孫 ○○ 敢昭告于
                 顯七代祖考 [學生] ......
                 顯七代祖妣 [孺人] ......  之墓
                 顯六代祖考 [學生] ......
                 顯六代祖妣 [孺人] ......  之墓
                 顯五代祖考 [學生] ......
                 顯五代祖妣 [孺人] ......  之墓
                      ...............................................................................
                만일 초헌관이 ' 七代孫'이 아닐 경우에는  해당되는 "□□代孫"과 "顯□□代祖"를 바꾸어 쓰면 될 것입니다.
 
* 나이든 후손들은 점점 타계를 하고, 젊은 후손들은 참여하기가 어려우므로 각 가문마다 기존의 관습을 이어가기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조상 모시는 일을 점점 간소하게 할 수 밖에 없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충분한 답변은 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오나 그저 참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학사전 세일사 [歲一祀] 국어
음력 시월에 5대 이상의 먼 조상 산소에 가서 지내는 제사 더보기

어학사전절사 [節祀] 국어

절기나 명절을 따라 지내는 제사 더보

 한국어사전 주요 검색어 시제1 時祭 단어장 저장
 시향2 時享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

시제=

동의어 사시제(四時祭), 시사(時祀), 시향(時享), 절사(節祀), 묘제(墓祭) 다른 표기 언어 時祭

요약 테이블
성격 제사
유형 의식행사
분야 사회/가족

요약 춘하추동의 길일이나 절일에 받드는 제사.

시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춘하추동의 길일이나 절일에 조상에게 받드는 제사인 시제는 크게 사시제와 묘제를 행한다. 김수남 사진.

ⓒ 김수남 | 한국학중앙연구원

내용

사시제(四時祭)·시사(時祀)·시향(時享)·절사(節祀)·묘제(墓祭)라고도 하는데, 크게 보아 사시제와 묘제로 나눌 수 있다. 사시제는 사중시제(四仲時祭)라고도 하는데 춘하추동의 중월(仲月)인 음력 2·5·8·11월에 길일을 골라 부모로부터 고조부모까지의 제사를 받드는 것으로 모든 제사 중에서 가장 중한 정제(正祭)이며 제사의식도 가장 완비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의 사시제는 고려 공양왕 2년(1390) 8월에 「사대부가제의(士大夫家祭儀)」를 제정하여 사시제의 절차와 내용을 정하였고, 조선시대에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규정하고 있는데, 대체로 주자(朱子)의 『가례』 의식을 본떴다.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대부·사·서인 사중월시 향의(大夫士庶人四仲月時享儀)’라고 하여 2품 이상은 상순에, 6품 이상은 중순에, 7품 이하는 하순에 길일을 점쳐서 받들도록 하였다.

그 절차는 재계(齋戒)·설위진기(設位陳器)·봉주(奉主)·참신(參神)·강신(降神)·진찬(進饌)·초헌(初獻)·독축(讀祝)·아헌(亞獻)·종헌(終獻)·음복(飮福)·사신(辭神)·납주(納主)·철찬(徹饌)·준(餕)의 순서로 되어 있다. 참고로 주자의 『가례』의 절차를 알아보면, 전기삼일재계(前期三日齋戒)·전일일설위(前一日設位)·진기(陳器)·성생(省牲)·척기(滌器)·구찬(具饌)·봉주·취위(就位)·참신·강신·진찬·초헌·아헌·종헌·유식(侑食)·합문(闔門)·계문(啓門)·수조(受胙)·사신·납주·철(徹)·준의 순으로 되어 있다.

이 사시제의 절차가 제사의 가장 완비된 절차이므로 기제를 비롯한 나머지 제사에도 그 경중에 따라 덜거나 더하여 사용하였다.

묘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며, 오늘날 음력 3·10월 중에 날을 택하여 대진(代盡)된 5대조 이상의 조상을 해마다 한번 그 묘소에서 받드는 제사로서, 관습상 이 제사를 시향·시사·시제라고 일컫고 있다. 묘제는 고례(古禮)에는 없는 제사인데 주자가 시속에 따라 만든 것이다.

주자의 『가례』의 묘제는 음력 3월 상순에 택일하여 받들며, 그 절차는 가제(家祭)의 의식과 같이 전일일재계(前一日齋戒)·구찬·궐명쇄소(厥明灑掃)·포석진찬(布席陳饌)·참신·강신·초헌·아헌·종헌·사신·철의 순으로 지낸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중기까지는 이 묘제를 매년 사절일(四節日)인 한식·단오·추석·중양(重陽)에 하였고, 뒤에는 지방에 따라 한식과 추석에 두 차례, 혹은 추석이나 중양에 한번 행하는데, 먼저 집에서 절사(節祀)를 행하고 다음날 성묘를 하였다.

이이(李珥)는 절사를 정월 15일, 3월 3일, 5월 5일, 5월 15일, 7월 7일, 8월 15일, 9월 9일의 7번으로 하였는데 『사례편람(四禮便覽)』의 저자인 이재(李縡)는 이를 너무 과중하다 하여 주자의 『가례』의 3월1제(三月一祭)를 찬성하고, 사시제를 행하고 묘제는 1년에 한번 하도록 제창하였다.

묘제를 위한 비용은 문중에 따라 다르나 일반적으로는 매 신위마다 제위토를 마련하여 그 수익으로서 비용에 충당하며, 자손들이 묘소에 가서 벌초를 하고 묘의 주위를 청소한 다음 위의 절차에 따라 분향하고 제사를 받들며, 아울러 산신(山神) 또는 토신(土神)에게도 제사를 지낸다. 사시제나 묘제와 비슷하면서도 구별해야 할 것으로는 천신제(薦神祭)가 있다.

이는 정월 초하루·정월보름·한식·삼진(三辰)·단오·유두·추석·중양·동지 등에 지내는 것이며, 속절제(俗節祭) 또는 절사라고도 한다. 짐승[牲]없이 여러 가지 온갖 음식[庶羞]만으로 하며, 고조부모 이하의 신위에 대해서는 독축하지 않고 술도 일헌(一獻)만으로 한다.

이것은 차례(茶禮) 또는 차사(茶祀)라고 흔히 불리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기제를 제외하면 묘제와 함께 가장 잘 지켜지고 있는 제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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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가례원류(家禮源流)』
  • 『사례편람(四禮便覽)』
  • 『주자가례(朱子家禮)』
  • 『朝鮮祭祀相續法論序說』(朝鮮總督府中樞院, 1939)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체항목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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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세시풍속사전

시제[]

분정-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퇴계종택-국립민속박물관

분정-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퇴계종택-국립민속박물관

분야 의례
계절 겨울(음력 10월)
다른이름 시사(), 시향(時享), 시제(3월)()
관련정일 한식(寒食)

정의

한식 또는 10월에 5대조 이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관행적으로 일컫는 말. 한식 또는 10월에 정기적으로 묘제를 지낸다고 하여 시사(), 시향()이라고도 한다. 이는 5대 이상의 조상을 모시는 묘제()를 가리키며, 4대친()에 대한 묘제를 사산제()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그래서 묘사(), 묘전제사()라고 하며, 일년에 한 번 제사를 모신다고 하여 세일제(), 세일사()라고도 한다.

유래

『주자가례()』의 시제()는 2월, 5월, 8월, 11월 중에 사당에 모신 4대친의 신주()를 안채나 사랑채의 대청에 함께 모시고 지내는 제사로 가장 중히 여긴 제사였다. 그래서 『상례비요()』, 『사례편람(便)』에서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예서()에서는 사시제()를 중심으로 기제와 묘제를 설명하였다. 『격몽요결()』이나 『사례집요()』에도 정침 또는 중당에서 사시제를 지내는 내용을 그림으로 설명하였다.
국가제사로서 종묘시향()이 1월, 4월, 7월, 10월 중에 거행한 것에 반해, 사대부가의 사시제는 그 다음달인 2월, 5월, 8월, 11월에 거행하도록 하였다. 『국조오례의()』의 경우에는 사당에서 지내기도 하지만, 『주자가례』 이후의 예서에서는 대부분 안채나 사랑채, 또는 제청에서 사당의 4대친의 신주를 모셔다가 지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묘제를 중시하여 사시마다 묘소에서 절사를 지냈기 때문에 사시제와 중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2월에는 한식, 5월에는 단오, 8월에는 추석, 11월에는 동지와 중복되어, 율곡() 이이()의 경우 설과 단오에는 사당에서 차례를, 한식과 추석에는 절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나아가 시제와 속절 차례 및 절사를 절충하면서, 설, 단오, 추석, 동지에는 사당에서 차례를, 한식 및 10월에는 묘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에 사당에서 지내는 사시제는 점차 설, 한식, 단오, 추석, 동지 같은 4대 명일, 또는 5대 명일에 사당에서 4대친에게 지내는 차례 또는 차사()로 대체되어 갔고, 차례 음식도 주과포()를 중심으로 명절 때마다 시식() 또는 절식()을 올리던 것에서 사시제 또는 기제에 준하도록 마련하게 되었다. 반면에 묘제는 『주자가례』를 따라 일년에 한 번 3월에 묘소에서 4대친을 포함해서 선조까지 제사를 지내거나, 설, 한식, 단오, 추석의 4명일에 4대친에게 절사를 지내고, 5대조 이상의 선조에 대해서는 한식 또는 10월 초하루에 지내기도 하였다.
특히 3월이나 한식 그리고 10월 초하루의 경우에는 4대친을 포함해서 선조까지 모든 조상의 묘제를 지냄으로써 시향 또는 시사()로 인식하게 되었다. 나아가 사시 묘제가 점차 한식과 10월 초하루로 축소됨에 따라 이를 사시 묘제로서 시제라고 하고, 시제 대상도 5대조 이상의 묘제로서 관행적으로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불천위()의 경우, 충청도에서는 불천위를 사당에 모신 것으로 여겨 세일사 대신에 차사와 절사로 모시기도 하며, 경상도에서는 10월 묘제에 함께 모시기도 한다.

내용

『사례집의()』에는 4대친에 대한 묘제의()와 5대 이상의 선조에 대한 선조묘제의()를 구분하였는데, 묘제의는 3월 상순에 날을 가려 일년에 한 번 제사를 지내며, 기일이나 절일에는 사당에서 먼저 차례를 지낸 후에 묘소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반면에 선조묘제의는 10월 1일, 또는 상정() 혹은 다른 날로 편한 날을 따르는데, 일년에 한 번 지냈다고 하였다.

묘제는 원칙적으로 묘에서 지내나, 비가 올 경우에는 재실에서 지방()으로 합동해서 망제()를 지내기도 한다. 퇴계 이황()이 “같은 언덕에 묘가 많아서 각각 제사를 지내는 폐가 많으니, 묘역을 청소한 후에 재실에서 지방으로 합동으로 제사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고 한 것처럼, 재실이나 선조 묘에서 합동으로 묘사를 지내기도 한다. 재실에서 모실 경우에는 강신 후에 참신을 하며, 분축 때 지방을 함께 태운다.

시제의 절차는 『주자가례』의 묘제를 따르고 있는데, 이는 4대친과 5대조 이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사례편람』의 경우, 축문에 4대친을 대상으로 한식 때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고 체천()한 선조에 대한 축문은 10월에 지내는 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① 시제 준비: 하루 전날 주인이 여러 집사자들을 거느리고 묘사(재실)로 나아가 재계한다. 각 묘소마다 제물을 준비하며 토지신에게 지낼 제물도 준비한다. 주인은 심의()를 입고 집사자를 데리고 묘소에 가서 재배하고 묘소 안팎을 돌며 슬프게 살피기를 세 번 한다. 그리고 묘소와 그 주변을 청소한다. 저녁에는 재실에서 주인(또는 도유사, 문중의 연장자)이 중심이 되어 시도기() 또는 시도록()을 가지고 각 묘소마다 헌관 및 축관, 집례, 집사자를 정한다.

② 진설(): 깨끗한 자리를 묘소 앞에 깔고 제물을 차려놓는다. 석상이 있을 경우에는 그 위에 제물을 차린다. 기제에는 과일과 나물 등을 진설하고, 강신한 후에 떡과 국수, 적과 탕, 밥과 국 등을 진찬()하지만 묘제에는 진찬의 절차가 없다. 따라서 묘제에서는 진설 때 모든 제사 음식을 올린다.

③ 참신(): 참사자 모두 참신 재배를 한다. 사계 김장생()이 “신위를 마련하여 신주가 없으면 먼저 강신을 하고, 뒤에 참신을 한다. 묘제 역시 그러한데, 『주자가례』에는 우선 참신을 하고 나중에 강신을 한다고 하니 그 뜻을 알지 못하겠다. 『격몽요결』에 묘제에는 먼저 강신을 한다고 하니 아마 옳을 듯하다.”라고 했다. 그래서 『주자가례』에는 참신 후 강신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격몽요결』과 『상례비요』에 따라 강신을 한 후 참신을 하기도 한다.

④ 강신(): 주인이 분향하고 잔에 술을 따라 모사기에 붓거나 석상 아래 땅에 붓고서 강신 재배를 한다. 『주자가례』에는 참신을 먼저 하고 강신을 나중에 하나, 『격몽요결』 묘제에는 강신을 먼저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⑤ 초헌(): 주인이 첫 번째 잔을 올린다. 기제와 같이 주인이 침주(), 전작(), 좨주[]를 한다. 이때 육적을 올리고[], 메의 뚜껑을 열며[], 숟가락을 밥에 꽂고[] 젓가락을 바로 놓는다[]. 대축이 주인의 왼쪽에서 축문을 읽으며, 독축이 끝나면 주인이 재배를 한다. 집사자 한 사람이 술을 거두어 퇴주기에 붓는다.

⑥ 아헌(): 두 번째 잔을 올리고 재배를 한다. 아헌과 종헌은 모두 아들 또는 동생이나 친한 벗이 한다. 자제들이 없으면 주인이 스스로 삼헌을 한다.

⑦ 종헌(): 세 번째 잔을 올리고 재배를 한다.

⑧ 유식()과 합문(): 『주자가례』 및 『사례편람』에는 묘제에 유식과 합문의 절차가 없다. 다만 『사례집의』에는 “첨주(첨작)는 없다(한강 정구). 엄숙하게 한 번 밥 먹을 시간을 기다린다(사계 김장생).”라고 하였다. 이에 집안마다 첨작을 하기도 하며 집사자가 밥에 숟가락을 꽂고 숟가락을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는 삽시정저()를 하고, 합문의 의미로 참사자 모두 부복하거나 국궁을 하며 뒤돌아 서 있기도 한다.

⑨ 계문()과 진다(): 『주자가례』와 『사례편람』에는 묘제에 계문과 진다의 절차가 없다. 다만 『사례집의』에는 “주인이 올라가 국을 물리고 숭늉을 올려 차를 대신하며(율곡, 『격몽요결』) 내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주자가례』). 수조()하지 않고, 서서 조금 기다린다(사계 김장생). 집사자 한 사람이 올라가 수저를 접시 안에 내리고 밥뚜껑을 닫고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간다(『격몽요결』).”라고 하였다. 합문 후에 대축이 헛기침을 세 번 하면 계문하듯이, 참사자 모두 몸을 펴거나 일어서며, 집사자가 국을 물리고 숭늉을 올리면 국궁을 한다. 곧 기제와 같이 밥과 국을 올렸을 경우에는 숭늉을 드린다. 하지만 메와 갱을 올리지 않은 때에는 합문 및 진다가 생략되고 바로 사신 재배를 한다. 시제에는 기제와 달리 음복수조하는 예도 있다. 주인이 신위전에 나아가 북향하여 무릎을 꿇으면 축관이 신위전의 술을 내려 주인에게 주면 주인은 술을 조금 마신다. 이어 축관이 신위전의 밥이나 포 등을 내려 주인에게 주면 주인은 이를 맛본다. 그리고 축관이 서쪽 계단 위에 서서 동쪽을 향하여 “이성()”이라고 외친다.

⑩ 사신(): 국궁 후에 집사자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접시 안에 내리고, 밥뚜껑을 닫고 내려오면 참사자 모두 사신 재배를 한다.

⑪ 분축: 대축이 축문을 불사른다. 집사자가 제상의 음식을 물린다.

이어 산신제(후토신)를 지낸다. 만약 같은 산 안이면 여러 묘위에 제사를 마치고 가장 높은 묘위의 묘소 왼쪽에서 지낸다. 시제를 지내기 전에 산신제를 먼저 지내기도 한다.

참고문헌

  • 조선대세시기Ⅰ, 2003년
  •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신문·잡지 편 1876년 ~ 1945년, 2003년
  • 가정의례준칙. 常元出版社, 1969년
  • 한국의 제사, 2003년
  •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조선전기 문집 편, 2004년
  • 家禮增解, 擊蒙要訣, 國朝五禮儀, 東國歲時記, 奉先雜儀, 四禮輯要, 四禮集儀, 四禮便覽, 喪禮備要, 朱子家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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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시제 [時祭]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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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

시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춘하추동의 길일이나 절일에 조상에게 받드는 제사인 시제는 크게 사시제와 묘제를 행한다. 김수남 사진.

이칭별칭 사시제(), 시사(), 시향(), 절사(), 묘제()
유형 의식행사
성격 제사

목차

  1. 정의
  2. 내용

정의

춘하추동의 길일이나 절일에 받드는 제사.

내용

사시제()·시사()·시향()·절사()·묘제()라고도 하는데, 크게 보아 사시제와 묘제로 나눌 수 있다. 사시제는 사중시제()라고도 하는데 춘하추동의 중월()인 음력 2·5·8·11월에 길일을 골라 부모로부터 고조부모까지의 제사를 받드는 것으로 모든 제사 중에서 가장 중한 정제()이며 제사의식도 가장 완비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의 사시제는 고려 공양왕 2년(1390) 8월에 「사대부가제의()」를 제정하여 사시제의 절차와 내용을 정하였고, 조선시대에는 『국조오례의()』에 규정하고 있는데, 대체로 주자()의 『가례』 의식을 본떴다.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대부·사·서인 사중월시 향의()’라고 하여 2품 이상은 상순에, 6품 이상은 중순에, 7품 이하는 하순에 길일을 점쳐서 받들도록 하였다.

그 절차는 재계()·설위진기()·봉주()·참신()·강신()·진찬()·초헌()·독축()·아헌()·종헌()·음복()·사신()·납주()·철찬()·준()의 순서로 되어 있다. 참고로 주자의 『가례』의 절차를 알아보면, 전기삼일재계()·전일일설위()·진기()·성생()·척기()·구찬()·봉주·취위()·참신·강신·진찬·초헌·아헌·종헌·유식()·합문()·계문()·수조()·사신·납주·철()·준의 순으로 되어 있다.

이 사시제의 절차가 제사의 가장 완비된 절차이므로 기제를 비롯한 나머지 제사에도 그 경중에 따라 덜거나 더하여 사용하였다.

묘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며, 오늘날 음력 3·10월 중에 날을 택하여 대진()된 5대조 이상의 조상을 해마다 한번 그 묘소에서 받드는 제사로서, 관습상 이 제사를 시향·시사·시제라고 일컫고 있다. 묘제는 고례()에는 없는 제사인데 주자가 시속에 따라 만든 것이다.

주자의 『가례』의 묘제는 음력 3월 상순에 택일하여 받들며, 그 절차는 가제()의 의식과 같이 전일일재계()·구찬·궐명쇄소()·포석진찬()·참신·강신·초헌·아헌·종헌·사신·철의 순으로 지낸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중기까지는 이 묘제를 매년 사절일()인 한식·단오·추석·중양()에 하였고, 뒤에는 지방에 따라 한식과 추석에 두 차례, 혹은 추석이나 중양에 한번 행하는데, 먼저 집에서 절사()를 행하고 다음날 성묘를 하였다.

이이()는 절사를 정월 15일, 3월 3일, 5월 5일, 5월 15일, 7월 7일, 8월 15일, 9월 9일의 7번으로 하였는데 『사례편람(便)』의 저자인 이재()는 이를 너무 과중하다 하여 주자의 『가례』의 3월1제()를 찬성하고, 사시제를 행하고 묘제는 1년에 한번 하도록 제창하였다.

묘제를 위한 비용은 문중에 따라 다르나 일반적으로는 매 신위마다 제위토를 마련하여 그 수익으로서 비용에 충당하며, 자손들이 묘소에 가서 벌초를 하고 묘의 주위를 청소한 다음 위의 절차에 따라 분향하고 제사를 받들며, 아울러 산신() 또는 토신()에게도 제사를 지낸다. 사시제나 묘제와 비슷하면서도 구별해야 할 것으로는 천신제()가 있다.

이는 정월 초하루·정월보름·한식·삼진()·단오·유두·추석·중양·동지 등에 지내는 것이며, 속절제() 또는 절사라고도 한다. 짐승[]없이 여러 가지 온갖 음식[]만으로 하며, 고조부모 이하의 신위에 대해서는 독축하지 않고 술도 일헌()만으로 한다.

이것은 차례() 또는 차사()라고 흔히 불리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기제를 제외하면 묘제와 함께 가장 잘 지켜지고 있는 제사이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가례원류(家禮源流)』
  • 『사례편람(四禮便覽)』
  • 『주자가례(朱子家禮)』
  • 『朝鮮祭祀相續法論序說』(朝鮮總督府中樞院,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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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
 


 
ㆍ작성자 관리자
ㆍ작성일 2018-08-24 (금)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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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종사유사 滿春입니다.

종사유사 滿春입니다.

영조 31년 조선왕조실록기사에 신주의 제주(題主)를 고치는 사항을 보면 傍孫도 奉祀孫이 될 수 있으므로 방손도 初獻을 할 수 있고 祝文에 顯 00代旁祖考 00代傍孫 00 敢昭告于라고 써야 되겠으나 그런 전거(典據)를 찿지 못하였으니 앞으로 대종중 종사전례자문위원회의 검토와 협의를 거친 후 게재해 드리겠습니다.



 
   
이름아이콘 수락산
2018-08-26 21:37
창서종친께서 좋은 글 올려주어서 잘보았습니다 .
종종 자료가 있으면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글이 자주 계시되므로 궁금한 점을 이해하게 됩니다.
축문에 초헌관의 선대의 인적사항을 기재 하는 것은( 초헌관 위에 기재하는것은 )
아니것으로 생각됩니다. 대 손만 기재하면 되는것으로 생각되는데.
5대가 되면 사당에서 나갈때 신주를 매안하고 묘지로 가면 다시는 사당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우리 예절이듯이 이때부터는 길사라하여 초헌관이 종자가 아니라도 종중대표나 연세가 많은 분이나 협의 하여 초헌을 하는 것이지 예의상. 종자에게 물어서 초헌은 대신 할 수있는 것으로 압니다.
자세한 것은 좀더 알아보고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승  석  드림
   
이름아이콘 박창서
2018-08-27 03:46
《Re》수락산 님 ,
승석 아저씨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무엇을 알아서 글을 올린 것은 아닙니다.
아저씨의 말씀 같은 여러 생각들의 토론을 유도하자는 의미일 뿐입니다.
이제는 대종중 종사전례위원회에서 좋은 결론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2018.8.27
박창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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