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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수락산
ㆍ작성일 2018-10-13 (토)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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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가치와 공존
(제1화)
생명과 죽음의 유교의 사생활
 유교의례에서 상례와 제례는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조상을 위한 의례이니, 상례와 제례의 이해를 위해서는 유교에서 생명과 죽음의 의미를 인식하는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공자는 제자 계로(季路)가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서 물었을 때, "아직 사람을  섬길 수 없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 라 하고, 죽음에 대해서 물었을 때, "아직 삶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고 대답 하였다. 
그것은 공자가 귀신의 존재나 죽음에 대한 대답을 회피 하거나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의 입장을 보여준 것이 아니다. 
 공자의 말씀에 대해 정자(程子)는 "낮과 밤은 죽음과 삶의 도리이다. 삶의 도리를 알면 죽음의 도리를 알게되고, 사람을 섬기는 도리를 다하면 귀신을 섬기는 도리를 다하게 된다. 죽음과 삶이나 인간과 귀신은 하나이면서도 둘이요. 둘이 이면서도 하나인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공자가 자로(子路;季路)에게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하는 데, 이것은 바로 깊이 알려주신 것임을 모르는 소리이다.라고 하여, 삶과 죽음이나 인간과 귀신을 마치 밤과 낮의 관계처럼 서로 떠날 수 없는 일체의 양면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것은 삶의 의미 속에 죽음의 의미를 삶의 의미속에 찾아야 할 것임을 제시 한것이다.
 곧 실행의 순서에서 보면, 먼저 사람을 섬길 수 있어야 귀신을 섬길 수 있고, 먼저 삶을 알아야 죽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조의 실상에서 보면, 귀신을 섬기는 일에는 사람을 섬기는 방법이 전재 되어있고, 죽음의 인식은 삶의 인식을 내포하고 있음을 말한다. 
귀신을 올바르게 섬기는 것이 바로 사람을 섬기는 방법이요. 죽음을 절실하게 아는것이 삶을 아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뒤집어 말해, "귀신을 제대로 섬길 수 없는데, 어찌사람을 섬길 수  있다고  하겠으며, 죽음을 올바로 모르는데 어찌 삶을 알았다고 하겠는가. 라는 발언도 성립될 수있을 것이다.
(다음은 제2화에서)
 #제사는 우리의 삶과 너무나 가까운 곳에 조상을 모시는대 있소이다)  
(다음 2화에서)                                
              서포공후 박  승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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