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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박대서
ㆍ작성일 2019-01-10 (목)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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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뭐라고 하셨길래...찾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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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서] ㉓박세당 '서계집' (2019-01-09 07:13)
모바일 전용 고전의 향연 - 옛 선비들의 블로그 ㉓박세당 '서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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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2019년 1월 9일 (수)
한국고전번역원-서울신문 공동기획
고전의 향연 - 옛 선비들의 블로그
㉓박세당 '서계집'
#우암의 학문 권력이 사문난적 굴레를 씌우다
1700년 4월 12일, 성균관 유생 홍계적 등 180명이 숙종에게 상소해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1629∼1703)이 지은 ‘사변록’(思辨錄)과 ‘이경석신도비명’(李景奭神道碑銘)을 불태워버리기를 청하면서 말한다.
 


온 세상으로 하여금 주자(朱子)의 말은 헐뜯을 수 없고 송시열의 어짊은 모함할 수 없으며, 성인을 업신여기고 정인(正人)을 욕하는 죄는 징계하지 않을 수 없음을 분명히 알도록 하소서.

 


▲박세당의 초상. 서계문화재단 제공

 

성인에 버금가는 주자를 헐뜯고 바른 사람인 우암 송시열을 모욕한 서계를 단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 상소로 서계는 일흔다섯의 나이에 삭탈관작과 문외출송의 명을 받고 이어 전라도 옥과로 유배되는 처분을 받는다.
 

이 상소가 나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서계 생전에 마지막으로 지은 ‘이경석신도비명’ 때문이다. 이에 앞서 이경석은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한 뒤 “문자를 배운 것을 후회한다”면서 청 태종의 공덕을 찬양하는 ‘삼전도비문’을 지은 바 있다. 서계는 이경석의 신도비명에서 그의 ‘삼전도비문’ 찬술이 불가피한 일이었음을 피력한다. 그리고 송시열과 이경석을 올빼미와 봉황에 견주면서 “불선한 자는 미워할 뿐, 군자가 어찌 이를 상관하랴”라고 해 송시열을 불선한 소인배로 깎아내린다.
 

성균관 유생이 서계를 단죄할 빌미로 삼은 것은 이경석의 신도비명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사변록’에 대한 노론의 의구심과 분노가 깔려 있었다. ‘사변록’은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을 주석한 주자의 ‘사서집주’를 서계가 비판적 시각에서 새로운 해석을 가한 책이다.
 


▲박세당이 벼슬을 버리고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쓰던 의정부시 장암동 소재 박세당의 사랑채. 현재는 바깥사랑채만 남아 있다. 서계문화재단 제공

 

#현실에 끝내 고개 숙이지 않다
송시열을 모욕하고 주자에게 반기를 들었으니 주자를 성인시하고 송시열을 ‘조선의 주자’로 여기는 노론의 분노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노론은 서계를 이단으로 몰아 ‘사문난적’(斯文亂賊) 굴레를 씌웠다. 이때 송시열은 이미 죽고 없었지만 그의 학문 권력은 이토록 강고했다.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서계는 ‘사변록’을 완성하고 나서 ‘좀’이란 시에서 자신의 운명을 이렇게 자조한다.
 

좀이라는 놈 평생 책 속에서 살면서
다년간 글자를 먹더니 눈이 문득 밝아졌네
뉘에게 인정받으랴 그래 봐야 미물인 걸
경전 망쳤단 오명만 영원히 뒤집어쓰겠지

  그러나 시는 시일 뿐이다. 서계의 진짜 생각은 달랐다. 서계는 ‘사변록’ 서문에서 “육경(六經)의 귀결처는 하나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이므로 다양한 견해가 수용되어야 육경의 대체가 온전해질 수 있다”고 역설한다. 주자만을 맹신하던 당시 학문 풍토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서계는 죽음을 몇 해 남겨 두고 스스로 묘표를 지어 또 이렇게 말한다.
 

맹자의 말씀을 매우 좋아한다. 차라리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며 남과 합치되는 바가 없이 살다 죽을지언정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이 세상에 맞춰 살면서 남들이 선하다고 해 주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자에게 끝내 고개 숙이거나 뜻을 굽히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여기서 “세상에 맞춰 살면서 남들이 선하다고 해 주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자”는 공자가 말한 ‘향원’(鄕原, 사이비 군자)에 대해 맹자가 그 의미를 부연한 말이다. 맹자는 또 향원을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면서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만 요순의 도에는 들어갈 수 없는 자’로 묘사한다. 서계의 짧은 말 속에는 이런 의미맥락이 숨어 있다. 무덤에 들어가서도 향원에 불과한 자에게 고개 숙이거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미완의 꿈-석천동 은거
세상 사람치고 은거를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서계도 그런 꿈을 꾸었다. 서계는 마흔이 되던 1668년, 벼슬에서 물러나 양주 석천동에 은거한다. 지금의 경기 의정부시 장암동 수락산 골짜기다. 서계는 30년을 넘게 이곳에서 살다가 이곳 언덕에 묻혔다.
  스스로 보기에도 재주와 역량이 보잘것없어 큰일을 하기에 부족한 데다 세상도 날로 도가 쇠해져 바로잡을 수 없다고 여겼다.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 도성에서 30리 떨어진 동문 밖 수락산(水落山) 서쪽 계곡에 은거하였다. 그 계곡을 ‘석천동’(石泉洞)이라 이름하고, 이로 인해 스스로 ‘서계초수’(西溪樵)라 일컬었다.
-서계초수묘표(西溪樵墓表)

  하지만 은거한다고 세상과 오롯이 멀어지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깊은 곳이라도 속세로 통하는 길은 나 있게 마련이다. 그 길 너머에는 가까운 피붙이가 있고 그리운 벗도 있으며, 학문적 동지도 있고 적도 있다. 서계는 소론의 거두인 윤증을 비롯해 8촌 아우 박세채, 처남 남구만 등과 교류했다. 우참찬 이덕수, 함경 감사 이탄, 좌의정 조태억 등은 서계의 문하로서 정계에서 활약했다. 이래저래 세상과 얽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서계의 은거는 미완의 꿈이었다. 사문난적으로 몰린 게 그 반증이다.
 
▲경기 의정부시 장암동 석천동 북쪽 언덕에 있는 박세당의 묘소와 묘표. 묘표는 최근에 조성됐다. 문화재청 제공

 

#두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의 슬픔
게다가 서계의 만년은 그야말로 기구했다. 환갑을 전후해서 4년 사이에 큰아들 박태유를 병으로 잃었고, 촉망받던 작은아들 박태보마저 잃었다. 박태보는 인현왕후 폐비를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노여움을 사 국문 끝에 죽었다. 박태보를 미워했던 송시열조차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박태보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도록 자손에게 경계하였다는 기록이 숙종실록에 보인다.
  자식을 둘씩이나 앞세워 보낸 아비의 슬픔이 어떠했겠는가. 박태보를 잃은 이듬해 섣달에 서계는 ‘달자(達者)가 어리석다고 욕할까 봐 함부로 슬퍼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울음을 삼킨다.
  일 년이 다하도록 아무런 의욕이 없고
종일토록 내내 기쁜 일 드물구나
자식이 죽으면 그래도 아비가 묻지만
아비가 늙으면 다시 누가 보살피랴
-섣달그믐에 소회를 털어놓다

  #시인이기를 거부했던 서계
서계의 시와 문은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얼핏 보면 깡마른 고목 같다. 그러나 그 속에는 생명이 꿈틀댄다. 그렇지만 서계 자신은 시인이 되기를 거부한다.
    시인이 되느니 차라리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게 낫다. 시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자그마한 명성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명성은 남이 주는 것이고 쓸모없음은 내가 하기 나름인 것이니, 남이 주는 명성에 얽매여 살까 보냐.
-한인(閑人)시의 시서(詩序)

 
서계는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학문을 했다. 그래서 그는 시인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쓸모없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서계가 현실에 고개 숙이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힘은 일견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완고함에서 나온 것이고, 그 문학적 성취와 학문적 결실은 문집인 ‘서계집’을 비롯해 ‘사변록’, ‘신주도덕경’, ‘남화경주해산보’, ‘색경’으로 남아 있다.
   

■서계집(西溪集)
조선 후기 소론계 학자이자 문인인 서계 박세당의 시문집이다. 1권에서 4권까지는 800여편의 시(詩)가, 5권에서 16권까지는 소차(疏箚), 서(書), 서(序), 기(記), 제문(祭文) 등이 실려 있다. 17권에서 22권은 2차에 걸쳐 추각된 것으로, 간독(簡牘), 시장(諡狀), 연보(年譜)가 실려 있다. ‘한국문집총간’ 134집은 추각본이 모두 포함된 22권본으로 정리됐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이를 저본으로 해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에 걸쳐 4권의 번역서를 완간한 바 있다.
글쓴이김낙철
한국고전번역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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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일인지 그리고 뭐라고 하셨길래..찾아봤습니다.

삼전도비문과 이경석비문

 1636년 병자호란에 인조가 항복하고 청 태종이 나의 승전비문을 조선에서 써서 세우라고 하니 굴욕이 말이아니었지요.

지들이 세우면 될 것을 그것도 비문을 써오라니...

그해 11월 인조가 장유ㆍ이경전ㆍ조희일ㆍ이경석에게 삼전도비문(三田渡碑文)을 짓게 하였는데, 청 나라 범문정 등이 이경석의 글을 택하였다.

몇차례 퇴짜를 맞고 이렇게 수정하라 저렇게 수정하라 해서 나온 비문 글로 1639년 세웠다 합니다.






그리고 나서, 장유(1587(선조 20)∼1638(인조 16)), 이경석 (1595~1671 ), 송시열(1607~1689) 셋이 잘어어울리다가, 송시열이

 "야 이경석. 니가 쓴 삼전도비문 말인데..나 같으면 안쓴다 안써."

이래 버린거라예.



前判書朴世堂所撰故相臣李景奭碑文中。誣謂臣先祖父臣植於三田立碑時。與新豐府院君張維。先承命撰文。不滿彼意。上面命景奭改撰。又謂於庚辰冬。景奭與臣祖議撰國書

같이 삼전도비문을 썼는데 ...




그런데 넷이 써냈는데 ...

거기서 탈락한 장유는,

[다음해 2월,  삼전도비문을 지었는데 지나치게 굴욕적이라 하여 이경석의 것을 고쳐서 쓰다.] > 같이 썼는데 장유가 쓴 글이 너무 굴욕적이라 이경석 글을 채택했다고 하네요.

물론 이 글도 청나라 한테 퇴짜를 맞고 몇 차례 수정해서 비문을 썼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송시열이 이경석한테 뭐 그따위 비문을 썼느냐고 한 것이지요.



장유는 3월, 포로로 잡혀갔던 며느리의 이혼 허락을 예조에 청하였다.

며느리를 포로로...그렇다구 이혼...

며느리는 ?...이런 일도 있었군요.



장유의 딸은 효종의 비 인선왕후이구요.


장유가 죽고 이경석이 시호를 청하는 글을 썼구요.  송시열은 신도비명을 썼네요.


이경석이 "난들 쓰고 싶어 쓴거 아니거든. 그럼 같이 삼전도비문을 쓴 장유의 신도비명은 니가 왜 쓰는데?"


송시열이 신도비문을 쓴 네사람 모두 나가 죽어라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경석 한 사람만 잡고 늘어지니...




이경석이 죽고 세당은 그 후손이 비문을 써달라기에 평소 소신도 있고 해서 썼는데,

"야 장유의 글보다 이경석이 쓴게 낫다고 임금이 바꿨는데 뭘 그러냐?" 한 것이지요.



이경석은 호가 계곡이고 세당은 서계(서쪽계곡)이네요. 뭔가...




그래서 이경석 비문 중에 송시열을 공격한 문구가 들어있다 하여 사변록 문제와 함께 반대파(노론측)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답니다.



홍계적(洪啓迪, 1680~1722) 남양(南陽) 1702년(숙종28) 태학생의 신분으로 박세당의 《사변록(思辨錄)》과 이경석(李景奭)의 비문을 태워 없애도록 상소하였다. 남양....






사변록

서계의 저술 중에는 당시에 이단시하던 것으로 노자의 《도덕경주(道德經註)》와 장자의 《남화경주(南華經註)》가 있고, 또 농서(農書)의 일종인 《색경(穡經)》도 있지만 가장 물의를 일으키던 것이 《사변록》이었다.



이리저리 욕을 해대니 숙종도《사변록》과 비문을 보고 노하여, 서계의 관직을 삭탈하고 유배를 명하였다가, 그의 연로와 질병과 또 그 아들 태보의 순절(殉節) 등을 고려하여 특히 유배를 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아니하여 그는 병졸하고 말았다. 고 어딘가 쓰여 있길래 퍼왔습니다.




서계(西溪)는 퍽 대담하고 자유로운 입장에서, 주자의 사서주해(四書註解)를 보고 대학 중용 예기가 완벽한 책이 아니라고 한거지요.

사실  잘못된 부분이나 앞뒤로 바뀌어야 할 것도 있고 빠진 글도 있고 그래서 그 예전 사람들도 고쳐읽고 쓰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사변록..'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쓴 글이니 내맘대로 쓴 글을 다른 사람의 눈에는 궤변록으로 보인거지요.




사서삼경을 주자가 해석해 놨는데, 서계선생이 그렇지만 '나는 요렇게 생각한다' 하니 열이 받은거지요.




요즘말로 획일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니 자유로운 사상을 이단이라고 하는거지요.






자의 반열에 오르셨으니 세당이 아니라 세자가 되어야지요.

공자 맹자 주자 노자 장자...그리고 세자

당시 사람들이 "공자 맹자 주자를 깔 정도면 세당이 아니고 세자로 불러야 하지않겠어요?"

그래서 더욱 이름있는 분이 되신거지요.




더욱 존경합니다.






선조의 뜻을 이어 자유로운 생각을 받아들여야겠지요.


고집불통☞만사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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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아이콘 4kraphs8
2019-01-10 20:04
<선조의 뜻을 이어 자유로운 생각을 받아들여야겠지요.>
아주 멋진 말씀입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그런데
<세자>(世子?)가 아니라
<박자(朴子)>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아 참,
우암 송시열의 문집 제목을 <宋子大全(송자대전)>이라고 했지요.
<朱子大全(주자대전)>을 모방해서 말이죠.

그럼
우리도 이참에 서계 할아버님 문집 제목을 아예
<朴子大全(박자대전)>으로 바꿔 버릴까요?
   
이름아이콘 박대서
2019-01-10 20:39
미쳐몰랐습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이름아이콘 박창서
2019-01-11 06:35
내생각과 다르면 궤변이고 이단일까요?
그래서 얼마 전에 올려졌던 글들이 아무런 해명도 없이 삭제된 것일까요?
글 한자 말 한마디가 엄격해야했던 조선시대에도 당당했던 선조님들은 실학사상을 가지고 사셨는데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로 사는 우리의 생각이 한심한 것이 현실인데?
<고집불통☞만사형통> 변화가 가능할까요?
이글을 펌 합니다. 양해바랍니다.
좋은 글들을 올려주시는 대서종인님 감사합니다.
   
이름아이콘 박대서
2019-01-11 09:52
누가보면 제가 글을 올렸다가 삭제한 줄 아시겠네요. 저 아닙니다.
   
이름아이콘 박창서
2019-01-11 10:49
《Re》박대서 님 ,
예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분명 대서 종인의 글은 아닙니다.
다른 종인 두 분의 글이 동시에 삭제된 것을 염두에 두고 쓴 내용입니다.
대서 종인의 글은 삭제될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연구노력이 돋보이는 객관적 글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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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9 세양공(世襄公) 불천위 기제사 봉행 관리자 2018-12-19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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