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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한가람
ㆍ작성일 2019-06-01 (토)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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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가족 박찬익 박영준 신순호

가족과 함께한 독립운동, 독립 명문가를 이루다

신건식 오건해


 

♠(위의 글중에서 퍼온 글입니다)♠

 

딸순호는 4세 때 상하이로 가서 아버지를 만나 함께 살았으나, 1932년 윤봉길 의거 직후 임시정부가 유랑의 길을 떠나자 그녀 가족도 함께 고난의 장정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여러 학교를 전전하였다. 그런데 학교 친구들은 그녀가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그녀는 워낙 말이 없기도 하였으나, 만일 망국노란 사실이 알려지면 중국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까봐 일체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811월부터 약 6개월간 류저우(柳州)에 머물렀다. 17세가 된 그녀는 이곳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며 독립운동에 몸담기 시작하였다. 이 공작대는 노태준을 단장으로 하여 중국인을 상대로 선전물 배포 횃불시위 가두행진 연극공연 등을 펼쳐 우의를 다지고 독립운동을 홍보하고자 한 청년 단체였다.

 

청년공작대는 193934일 일본군과 전투 중 부상당한 중국군을 위문하는 공연을 펼쳐 큰 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훗날 남편이 되는 박영준은 상하이 시절부터 알던 사이였으나, 공작대에서 동지가 되어 함께 활동하게 된 것이다. 이후 신순호는 19409월 한국광복군이 창군되자 여군으로 입대하여 총사령부에서 근무하였고, 1942년에는 부친을 도와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에 근무하기도 하였다.

 

청년 박영준은 신순호에게 여러 차례 구애를 하였다. 더구나 박영준의 부친 박찬익이 충칭으로 온 1940년부터 화평로에서 신건식 가족과 함께 거주하였다. 1942년 회수구로 이사하였는데, 이때에도 가족들이 함께 살았다. 그러니 계속해서 순호네 식구와 함께 살며 더욱 사랑을 키워갔던 것이다. 순호는 처음에는 박영준에게 관심이 없었으나, 그가 광복군에 입대하여 충칭을 떠나게 되자 청혼을 받아들였다.

 

신순호와 박영준의 결혼식은 19431212일 임시정부 청사 대례당에서 열렸다. 당시 충칭에 거주하던 한인은 4백여 명 정도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한인끼리의 결혼은 다소 드믄 일이었다. 결혼식장인 임시정부 강당은 백범 김구를 비롯한

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박찬익은 평소 입던 군복을 깨끗이 빨아 입고 입장하였고, 신순호는 중국식 치파오를 새로 맞춰 입고 입장하여 갈채를 받았다. 박영준은 훗날 자서전에서 자신의 결혼식 날을 나라 잃은 설움도 잠시 잊고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어 기뻐하던 순간이라고

회고하였다.


 

 


결혼식은 외무부장 조소앙의 주례로 진행되었다. 결혼증서에는 김구가 주례로 되어 있으나, 김구는 자신의 삶이 순탄치 않다고 하여 주례를 잘 서지 않았다고 한다. 조완구, 김원봉, 김성숙 등 원로 독립운동가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조완구는 비록 성은 다르지만 친자식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하였다.

하객 모두가 같은 심정으로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이어서 박찬익이 단상에 올라 답사를 하였다. 그는 가늘게 떨리는 음성으로 가정을 가져서 다섯이나 되는 자식을 두었지만 자식 놈의 결혼식에 참석해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고 또 마지막이 됩니다.”라고 말하였다. 신랑 박영준은 이 말을 들으며 만주에 두고 온 어머니와 형제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신순호박영준 부부는 동지로서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곧 바로 귀국하지 않았다. 부친 신건식과 시부 박찬익이 한인 동포의 귀국 문제를 중국과 외교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난징에 설치한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의 임무를 맡았고, 남편도 그 업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부모와 시부, 남편과 함께 난징에서 독립운동의 마지막 단계인 교민의 귀국 문제 업무를

담당하다가, 19484월에서야 귀국할 수 있었다.


 

 

  신건식(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박찬익(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신순호(뒷줄 여성)


 

 

귀국 후 박영준은 국군 장교로 입대하여 625 때 정훈감으로 활약하였고, 1960년 육군 제9사단장을 지내고 소장으로 진급한 뒤 전역하였다. 이후 한국전력주식회사 사장을 역임하였고, 광복군동지회 회장과 독립유공자협회장 등을 역임하다가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고, 2000년 별세하였다. 그녀 또한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197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고,

2009년 별세하여 남편과 함께 국립현충원에 영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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