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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송촌옹
ㆍ작성일 2020-06-30 (화)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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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쓴 암행어사 이야기.


 

박지원의 손자, 양반전과 호질을 되새기다


 

조부의 뜻을 이어 양반의 비리를 응징한 박선수(朴瑄壽)

1867(고종 4) 경상도 암행어사 박선수(1821~1899)

 

어사 박선수가 경상도 땅에서 겪은 이야기. 어사 박선수는 백성들을 괴롭히는 경상도 지방 양반들의 악행을 조사하여 죄를 묻고 임금님께 아뢰었다.

 

암행어사 박선수는 [양반전][호질]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의 손자입니다. 할아버지인 연암은 학문이 깊고 문재가 뛰어났지만 벼슬에 뜻이 없어서 높은 관직을 지내지는 않았습니다. 박선수의 아버지 박종채 역시 평생 재야의 선비로 살았습니다. 조상님들이 변변한 벼슬살이를 하지 않아서 박선수의 집안은 양반치고는 가난한 편이었습니다.

그나마 박선수가 7,8세 되던 무렵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이어 돌아가셨습니다. 소년 박선수에게는 14살 손위인 형님 박규수가 있었습니다. 박규수는 학문이 뛰어난 선비였습니다. 15세 경 이미 당대의 뛰어난 선비들과 망년지교(忘年之交)할 만큼 학문적으로 성장하였고, 20세 무렵 효명세자와 교유할 때는 이미 글재주로 이름이 크게 날렸습니다.

할아버지인 박지원의 연암집 燕巖集을 통하여 실학적 학풍에 눈을 떴고, 당대 일류 학자와의 학문적 교유를 통하여 실학적 학문 경향을 한층 심화시켰던 그는 개화사상가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큰 선비였습니다.

형님 박규수를 부모님처럼 의지하며 글공부를 배운 박선수는 1864(고종 1)43살의 나이로 과거시험에 장원 급제를 하였습니다. 사간원의 대사간을 거쳐 1867년에는 경상도 암행어사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박선수가 암행어사로 나아갈 때 고종 임금님은 그에게 경상도 지방의 양반들의 탐학을 조사하라는 특별 명령을 내렸습니다. 박선수는 임금님의 뜻을 익히 잘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임금님이 등극하신 지 4, 수렴청정하는 대원위 대감은 외척과 세도 가문들의 폐해를 바로잡고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중앙 관직에서 세도가문들을 견제하는데 어느정도 성공한 대원위 대감은 이제 지방 사림들의 권력도 해체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했습니다. 게다가 경상도는 당파싸움에 몰입한 사림들의 뿌리가 깊은 곳이어서 양반들의 못된 짓을 응징하는 시범을 보이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이 일에 적임자가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박선수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박지원이 쓴 [양반전][호질]은 바로 양반님네들의 못된 짓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내용의 소설이거든요. 박선수가 지방관리들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틈틈이 양반들의 횡포에도 귀를 기울이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폐단이 들려왔습니다.

박선수가 단성 땅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말을 타고 꽤 큰 여울을 건너가는데 냇가에 제방을 쌓고 있는 한 무리의 백성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큰돌을 져 나르고 냇가 옆 빈 땅에서 잡풀을 베어 내고 돌을 고르고 쟁기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농토를 만드는 모양이구나',하면서 다리를 건너는데, 갑자기 일꾼들 사이에서 소요가 일었습니다.

"더 이상은 못 하겠수! 나랏님의 일도 아니고 관아의 일도 아닌데, 우리가 왜 김 정언(正言)의 논까지 개간해야 한단 말이요?"

"! 정언이면 단가? 나랏님을 가까이 모셨으면 그 은혜를 만방에 베풀지는 못할망정, 그 위세로 우리를 이토록 괴롭히니, 이게 나랏님을 욕보이는 일이 아니고 뭔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열흘이 넘게 여기에 붙들려 있으니, 한 여름 농번기에 우리 논은 피가 가득하고 밭에는 잡풀이 우묵하네."

"우리말만 할게 아니라 아예 이 일을 작파해버리세!"

중년 농부의 말에 모두들 곡괭이며 삽을 놓고 돌아갈 태세였습니다.

"네 이놈들! 누구 맘대로 일을 작파한단 말이냐?"

벼락같이 소리를 질러서 보니 등치가 우람하고 험악하게 생긴 사내가 눈을 부라리며 일꾼들을 몰아세웠습니다. 그가 나타나자 불뚱거리던 일꾼들이 고양이 앞에 쥐가 된 듯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슬금슬금 일어나서 다시 연장을 잡고 흙을 파고 져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의기양양하게 굽어보는 사내의 얼굴은 소름끼치게 잔혹했습니다.

"대단한 위세입니다요. 흡사 표정이 악귀 같습니다요."

말고삐를 잡은 종이 목을 으쓱, 하면서 혀를 찼다. 어사는 말없이 사내의 얼굴을 눈여겨보며 다리를 건넜습니다.

그 험상궂은 사내가 정언 벼슬을 했던 김인섭의 부하인 권인하라는 것을 어사가 알게 된 것은 단성 읍내에 들어서서였습니다.

"권인하 그놈은 못되고 잔혹하기가 뱀과 지네 같은 놈이야. 백성들을 잡아들여 위협하여 재물을 빼앗고, 조금이라도 제 뜻을 어기면 악형을 가하니 우리 고을은 형방이 둘이요."

"어디 형방만 둘인가, 사또도 둘이고, 감방도 둘이지!"

가만히 듣자하니 전 정언 김인섭의 횡포는 그 부하보다 더 심했습니다.

"조정에서 벼슬한 권세를 믿고 불법을 자행하여 읍을 병들게 하고 백성을 괴롭힌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남몰래 해치고 맹수처럼 사나우니 인심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어사가 한두 마디 운을 떼자 백성들이 너도나도 말을 보탰습니다. 그가 저지른 악행 중에 가장 지독한 것은, 자기 아들의 과거급제를 축하하는 잔치에 돈을 적게 낸 사람의 얼굴을 불로 지진 것이었습니다.

"읍에 거주하는 주씨 성을 가진 노인을 유가에 필요한 돈을 적게 냈다는 이유로 잡아가서 결박하고 기와 위에 꿇어앉혀 얼굴을 지져서 거의 죽게 만들었습니다."

실로 엽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을 괴롭히는 양반들은 한 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고을마다 마을마다 제 철 만난 모기떼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대구에 사는 양반 박해수는, 넉넉한 백성을 꼬드겨 괴롭히는 것이 교활한 아전보다 심하였고 마음대로 주리를 트는 형벌을 가하는 것이 관청에서 행하는 것보다 더 심하였습니다. 빚진 돈을 강제로 갚게 하고, 갚지 못할 때에는 친척이 대신 내게 한 것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강제로 논과 밭을 빼앗아 외로운 과부가 원통함을 하소연함이 낭자하였습니다. 국법을 어기고 개인적으로 도살장을 설치하여 고기를 사사로이 처분하고 이익을 얻었습니다. 또 거창의 전 현감 이유겸은, 마을 사람들을 호시탐탐 노려 위력으로 억압하였습니다. 몇 년 전 백성들의 소요가 있었을 때 형제의 집이 모두 불에 타서 새로 집을 짓는데 근처의 백성들을 잡아들여 나무를 지고 흙을 나르게 하고는 품삯을 지불하지 않았으며 채찍으로 때리고 위협하는 것이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인심을 잃은 것이 오래도록 쌓여 원망하는 소리가 길에 가득하였습니다. 또 인동에 사는 양반 장문법은, 피폐한 백성을 함정에 몰아 넣고는 속전(贖錢)을 빼앗았으며, 산에 사는 중을 위협하여 강제로 논과 밭을 빼앗았습니다. 집안의 종이 잘못을 하면 문에 주리를 설치하여 고문을 해서, 고을 사람들이 '흰옷 입은 영장(營將)'이라 두려워 할 정도였습니다.

박선수는 이들 나쁜 양반들을 찾아내어 벌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강경하게 죄를 인정하지 않는 양반들이나 조정에서 벼슬을 한 대신들에게는 직접 죄를 물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잘 기록해 두었다가 한양에 돌아온 후에 임금님께 아뢰었습니다. 박선수의 보고를 받은 임금님은 다음과 같이 명하였습니다.

"단성 전 정언 김인섭은, 감영의 뜰에 잡아들여 한 차례 엄중하게 형신 한 후에 먼 곳으로 유배 보내라. 토지를 개간하여 전답을 만들었다면 반드시 조세 대장에 누락되었을 것이다. 지방관으로 하여금 빠짐없이 조사하여 조세를 내게 하라. 또한 그 부하 권인하는 감영의 뜰에 잡아들여 곤장 30대를 죽지 않을 만큼 호되게 친 후에 멀고 험악한 곳으로 유배 보내라."

그리고 다른 양반들도 그 행위대로 죄 값을 치르게 하였습니다.

 

박선수는 이조참의와 예방승지를 거쳐서 1883년에는 성균관 대사성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갑신정변 직후에는 공조판서로 특별히 발탁되었으며, 1894년 동학 농민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형조판서를 지냈습니다. 또한 학문에도 전념하여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누락된 내용을 보충하기 위하여 고대 종정(鍾鼎)의 유문(遺文)을 연구하고 문자의 원리와 본뜻을 고증하여 밝힌 설문해자익징 說文解字翼徵이라는 저서를 남겼습니다. 18997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암행어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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