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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송촌옹
ㆍ작성일 2020-07-01 (수)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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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재(溫齋) 박선수(朴瑄壽)

온재() 박선수(朴瑄壽) 1821(순조 21)1899(고종 35)

자는 온경(溫卿), 호는 온재(溫齋)이다.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손자이며 우의정 박규수의 아우이다.

44세 되던, 1864(고종 1)에 증광별시문과에서 장원급제 하였다.

45세인, 1865년 사간원 대사간에 오르고,

47세 때인, 1867년 경상도 암행어사로 파견되었다.

일성록(日省錄)에 실린, 공식 보고서인 서계(書啓)와 첨부 보고서인 별단(別單)은 다른 암행어사들이 올린 보고서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계의 분량과 내용이 다른 사람의 것에 비하여 두 배나 많고 자세하다. 그만큼 세세하고 꼼꼼하게 민정을 염탐하여 살펴보았다는 증좌이다.

서계의 번역본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경상도(慶尙道) 암행어사(暗行御史) 박선수(朴瑄壽)가 서계(書啓)ㆍ별단(別單)을 올렸다.

각 추생(鯫生)지역의 전현직 수령들에 대하여 상세한 보고를 올리고 있다.

서계(書啓)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계(書啓)

(경상) 감사(監司2) 이삼현(李參鉉)입니다.

진휼하는 데 적절한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흉년을 만난 궁부(窮夫)가 믿고 의지했으며, 조처가 적당했기 때문에 열군(列郡)의 고질적인 폐단들이 점차 제거되었습니다. 군기를 수리하는 부역에 대해서는 넉넉하게 도왔으며, 민소(民訴)의 첩()에 대해서는 손수 판결문을 달았습니다. 연름전(捐凛錢녹봉을 털어 구휼하기 위해 내어놓은 돈)30,000여 냥이나 되었습니다.

(경상) 전 감사(前監司) 서헌순(徐憲淳)입니다.

판결을 내릴 때는 가끔 지연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그가 반복적으로 고려하는 과정에서 너무 신중을 기했기 때문이며, 고질적인 포흠에 대해서는 낱낱이 조사했는데 이것은 그의 주찰(周察)이 엄명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온 경내를 두루 살피자 이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열읍은 감히 느슨해지지 못했습니다[全省以之畏憚 列邑無敢解弛].

(경상) 전 전 감사(前前監司) 이돈영(李敦榮)입니다.

방백(方伯)은 사물을 진정시키고 많은 사람을 수용하는 것이 본래 그 본체이며, 군자는 덕으로써 남을 사랑한다는 것이 옛날부터 내려오던 말입니다[方伯之鎭物容衆 固得其? 君子之以德愛人 昔聞斯語]. 교활하고 완악한 자들이 스스로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되자, 일로(一路)는 이로 인해 맑게 정화되어 갔습니다.

이하 생략.

(문화원형백과 암행어사), 한국콘텐츠진흥원)

 

이같이 암행하여 탐문한 전 도내(道內)의 벼슬아치는 현임(現任)은 물론, 전임(前任)과 전전임(前前任)들의 정치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음은 물론. 지나가는 노정(路程)의 고을의 수령들까지 논평하고 있다. 이 서계와 별단을 미루어 읽어보면 당시의 시대상(時代相)이 눈앞에 그려진다.

온재공(溫齋公)은 형님인 환재굥(環齋公)과 더불어 형제 암행어사가 되어 활약하셨으니, 연암선생(燕巖先生)의 사상과 애민정신이 내면에 잠재되어 별단의 기저(基底)에 흐르고 있었다.

 

고종 31년 갑오(1894)411(정사) 맑음

정사가 있었다. 이비에,

박선수(朴瑄壽)를 형조 판서로,

 

이상이 공에게 내려진 마지막 현직이며, 말년에는 수직(壽職)인 호군(護軍)의 월름(月廩)의 은전(恩典)이 있었다.

 

끝으로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의 문집인 운양집(雲養集)에 실린

상서에게 보내는 편지與朴溫齋 瑄壽 尙書書〕》의 전문을 싣는다.

지난해 가을에 한 번 뵙고는 10년 동안의 적조함을 위로하기에 부족했습니다. 어둑한 저녁 빛이 사람을 재촉하므로 너무 총총히 고별하느라 일상의 안부를 자세히 여쭈어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나눌 때 우러러 뵈오니 정신과 기운이 이전과 같으셨으므로 저의 마음이 기쁘고 다행스러움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잠깐 사이에 가을과 겨울이 이미 지났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대감의 체절(體節)이 아주 건강하시고 맡고 계신 관청에 경사가 있다고 하니, 마음속으로 기원하던 바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저는 변방 바닷가로 귀양 와서 올해 8년이 되었고, 나이가 어느덧 만 60이 되었습니다. 가족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런 날이 없을까 염려됩니다. 대군(代郡)의 말과 월()나라 새의 뜻이 어느 때에라도 마음속에 간절하지 않은 적이 있겠습니까?

돌아가신 백씨 환재(瓛齋) 선생의 가장(家狀)을 손을 깨끗이 씻고 펼쳐서 소리 높여 읽어 보니, 황홀하여 마치 봄바람 부는 자리에 앉은 듯하여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건대, 선생의 충효와 큰 절개와 박문약례(博文約禮)의 참된 공부, 원대한 계책은 비록 300년 전에 사셨더라도 또한 당대의 위대한 인물이 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 세상에서는 존경할 줄 모르고 어찌하여 자운(子雲)을 직접 본 듯이 여깁니까? 그렇지 않다면 시비(是非)가 밝지 못해서 그렇습니까?

각하께서 형제이자 지기로서 유사(遺事)를 수습하고 이를 떨쳐 드러내셨는데, 제도를 설명한 것은 전아하고 정밀하였으며, 사업을 서술한 것은 성대하면서도 곡진하여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우(師友)와 인척의 어진 자를 모두 기술하여 간략한 전기(傳記)를 넣어 길이 전하여 없어지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 체제가 간결하게 정리되었으면서도 풍부해서, 맹견(孟堅)의 정수(精髓)를 깊이 얻었으니 이는 돈사(惇史)의 증거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선생의 뜻과 사업이 후세에 명백하게 드러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이 같은 다행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선생께서는 옛날에 사람들이 대인(大人)이라고 일컫던 분입니다.

한평생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났던 처신은 남들이 높이고 낮추는 것에 따라 오락가락하지 않고 오직 의리에 따를 뿐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만년이 더욱 고달팠습니다. 지금 이 덕을 기록한 가장은 오히려 그 속에 온축(蘊蓄)한 바를 다하지 못한 점이 있으나, 이는 형편이 그러한 것입니다. 애석합니다!

 

한 본을 베껴 쓰고 원본을 오래 둘수 없어서 마침 귀천리(歸川里) 사람 중에 돌아가는 인편이 있어서 보내 올리니, 받아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의심나는 몇 곳이 있어서 멋대로 책장의 가장자리에 쪽지를 붙여두었으니, 아울러 교감하시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봄바람이 몹시 사나우니 음식을 알맞게 조섭하시면서 더욱 몸을 보중하십시오.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공은 은퇴하여 남계(南溪)에 거처하였다고 하였는데, 귀천리(歸川里) 사람 중에 돌아가는 인편이 있어서 보낸다는 지명인 귀천리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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