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에 영합하지 않고 이조판서를 사양한 朴師洙
세간에 영합하지 않고 이조판서를 사양한 朴師洙
-심재(沈宰 1722-1784)의 ‘송천필담(松泉筆談)’에서-
경술년(1730, 영조 6)에 풍릉군(豊陵君) 조공(趙公:趙文命)이 이조판서에서 우의정에 제수되자 좌의정 이집(李㙫)공이 장차 이조판서를 의망(擬望)하려 하였다. 하루는 상서(尙書) 박사수(朴師洙)가 상주목사(尙州牧使) 이협(李埉)을 불러 물었다.
“그대의 증조 미강(眉江) 이경증(李景曾)공은 일찍이 당상관 가선대부(嘉善大夫)로서 전직(銓職)을 통하지 아니하고 곧바로 이조판서를 추천하였다고 하는데 그런 적이 있었느냐?”
이협이 답하였다.
“저희 증조부께서는 당상관으로 1년 계시면서 단지 승지만 지냈고, 가선대부로 2년을 계시면서 단지 병조참판을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양전(兩銓)의 장(長)을 추천한 적이 있는데, 무슨 까닭으로 묻는 것입니까?”
박사수가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와서 전하기를 좌상이 종증조(從曾祖)되는 모공(某公)이 현직(顯職)을 지낸 적이 없다고 여겨 곧바로 이조판서로 추천하려고 한다 하는데, 나는 장차 박모(朴某)를 후보로 추천하겠다고 했다고 하더군. 소문이 들려 놀라고 의아함을 이기지 못해 물어보는 거네.”
이협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공이 장차 이조판서가 되시겠습니다.”
박사수가 말하길
“이 무슨 말인가? 나는 품성이 너무 편협하고 일을 앞에 두고는 참지를 못하는데 내가 어찌 전형에 자리에 있으면서 세도(世道)를 행할 수 있겠는가? 송성빈(宋聖賓)의 기량과 재지(才智)라면 전형의 직책을 맡을 만하니, 내 마땅히 성빈을 대신 추천할까 하네.”
라고 하고는, 즉시 좌의정의 집으로 갔다. 얼마 안 있어 송상(宋相)이 전 참판(參判)으로서 추천되어 이조판서에 제수되었다.
요즘 사대부를 보면 한 등급 가자(加資)되는 것과 조그마한 통함과 막힘에도 반드시 동년배의 친구를 함정에 밀어 넣으려고 밤낮으로 분경(奔競)하는 이들이 많다. 박공과 같은 이는 아마 둘도 없을 것이다.
※ 박사수(朴師洙, 1686-1739 諡 文憲)는 南逸公 朴應男의 6世孫.
이협(李埉, 1696-1769)은 박사수의 고모(姑母)의 아들.
성빈(聖賓)은 宋寅明(1689-1746, 諡 忠憲)의 자(字)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