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ㆍ작성자 한가람
ㆍ작성일 2022-07-06 (수) 16:07
ㆍ추천: 0  ㆍ조회: 142       
ㆍIP: 114.xxx.152
박엽(약창공)을 살리려 했던 崔鳴吉 선생

인조 반정후  서인세력들이  액창공 박엽을 제게하려고 할때  崔鳴吉 선생이 이를 반대 하였다.

장수의 지략을 지닌 사람은
살려야 합니다
이사람을 주긴다면
우리나라의 장성을 허무는 것이니
만일 훗날 북쪽 오랑캐가
달려 내려온다면
누가 그것을 막겠습니까?
          <지천집 속집> 3 <상북저김상국류서> 3
           지천: 崔鳴吉

  박엽이 만약 있었으면  우리가 조선에 들어올 수 없었을 것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사람의 발언-
                                  <출처: 여호선생문집 권2>

  박엽은 광해군 때의 문신으로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서북변의 방비를 매우 튼튼히 했습니다. 그가 있어 청나라는 감히 국경을 침범하지 못했습니다. 인조반정 후 처가가 광해군의 인척이었다는 이유로 그가 두려운 나머지 훈신들에 의해 사형당했습니다.

괴여만리장성(壞汝萬里長城’)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만리장성을 허물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송나라와 위나라가 대치하고 있을 때, 송나라의 중신 단도제의 위세가 너무 당당하여 아무도 그를 넘보지 못했습니다. 이를 시기한 권신과 왕족들이 그를 궁중으로 불러들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는 너의 만리장성을 스스로 허문단 말이냐!” 하고 외쳤습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위나라 사람들은 이제 두려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며 계속 남쪽을 침범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국경을 철통같이 지키던 평안감사 박엽을 인조가 죽였습니다.

청나라가 처들어올 것은 뻔한 것이 아닌가?”

괴여만리장성이라고 통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박엽이 있는 동안은 감히 압록강을 건너오지 못하던 청나라가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자주 압록강을 넘어왔습니다.

드이어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인조는 청나라의 용골대 앞에 무릎을 꿇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이때 용골대가 이제 박엽을 죽인 것이 후회되겠지?” 하고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박엽은 권신 이이첨을 모욕하고도 무사하리 만큼 명성을 조야에 떨쳤던 담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최남선의 수필 평안감사 박엽입니다.

 

하루는 부하를 불러 주효를 장만하여 내어 주어 말했다. 중화의 구현 밑에 가서 기다 리면 필시 건장한 마부 두 사람이 지나갈 것이다. 그러면 이것을 주면서 내 말을 전하 라.

너희들이 우리 나라로 내왕한 지 몇 달인데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마는 나는 다 알고 있다. 돌아다니다 수고스러울 듯해 주효를 보내는 것이니, 한번 잔뜩 먹고 취해 속히 돌 아감이 가하니라

과연 그런 두 사람이 지나가므로 하라는 대로 말을 전했다. 그 두 사람은 안색이 핼 쓱해지며 말했다.

장군이 세상에 계실 동안은 다시는 들어올 마음을 먹지 않으오리다

두 사람은 용골대와 마부인이었다., 그 둘은 우리 나라에 와서 허실을 탐지하고 다 녔다. 조선인의 모양으로 승정원에 사령을 다녔건마는, 사람들이 다 모르고 박엽만이 알았다고 한다.

 

 

   
이름아이콘 범석
2022-07-11 18:16
  약창공 휘 박엽 선조님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올리신 글 몇 번씩
읽고 이렇게나마 고마움의 인사 드립니다.

 저 역시 인조반정이란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광해군의 후금과 명과의 어려운 북방외교를 최전선에서 평안도 관찰사등을 10년간이나 수행하며 평화를 유지하였으나 그 치적을 자리매김하기는커녕 반정의 걸림돌이라고 폭정의 프레임을 씌워 제거한 억울함을 안타갑게 여기고 있는바, 약창공파 후손들은 이 글을 읽고 다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정묘·병자호란을 전후하여 나라를 구한 주화파 “지천 최명길”선생을 조명한 한명기교수의 “최명길평전”을 읽고 부연 설명하고자 합니다.
<<최명길이 쓴 항복문서를 명분을 중시한 척화파 김상헌이 찢어서 버리니 다시 주워서 붙여 임금에게 올렸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건 그 시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게 아닙니까?>>

 1. “지천집 속집”에서 언급한 7줄에 숨은 뜻이 “최명길평전”에서는 무려        
      12면에 걸쳐 기술되어 있기에 발춰하여 봤습니다.
     (출처 : 최명길 평전 · 한명기 글 ·펴낸 곳 (주)도서출판 보리·
      목차 4장 반정 직후의 활약 -> 박엽을 구명하려 애쓰다 146 ~ 157        
     면(12면))

     가. 반정직후 살벌한 분위기에서 원훈 김류에게 지략이 뛰어난 장성인            
          박엽을 죽이지 말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오랑캐의 병란을 바로  목
          전에 두고 대감의 손으로 박엽을 처단하면 반드시 후회한다고  하였
          으며
     나. 반혁명의 염려도 혁명직후 조정의 명령에 순종한 것을 보면 기우            
          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으며.
     다. 평안감사 4년 6개월 의주부윤 성천부사를 합하면 10년 가까이 평            
          안도에 머물면서 보여준 후금과의 교섭능력과 경험, 그리고 그가            
          확보했던 후금과의 외교통로들을  매우 중시하였던 바.

      이와같이 최명길이 인조반정의 주도자이면서도 그를 구명하려 한 것        
      은 박엽의 외교관이자 군사전략가로서의 능력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2. 후금과 모문룡의 사이에서 조선은 샌드위치의 처지였는데 이를 무난히      
      처리하였던바 “광해군일기 중초본”에는 비변사에서 “평안감사 박엽이        
      모문룡의 마음을 깊이 얻었다.”는 기록이 “정초본인 정족산본 광해군        
      일기”에서는 이 대목이 삭제되었음은 반정의 명분에 반하기 때문이다.  
 
  3. 광해군일기 등 공식적인 사서에는 가혹하고 교활한 관리로 기록되고        
      있으나 기문총화 등 야담이나 시문들에 언급된 박엽의 모습은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인재이자 異人으로 전해지고 있다.  
      <<백성에게 폭정으로 원한이 있다면 약창공 선조님이 쓴 대동문 현판          
           이 지금까지 남아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4. 처형된 이후에도 박엽의 억울한 죽음을 안타갑게 여기고 그를 외교와        
      국방을 맡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인물로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인데

     가. 조태억(1707년 숙종33년)은 경연자리에서 박엽이 억울하게 죽었            
          다고 호소하였다가 숙종에게 추고 당하고
     나. 여호 박필주 선조님은 박엽이 이이첨과는 전혀 노선이 달리했음에            
          도 그 부하였던 이서와 구인후에게 곤장을 쳐서 원한을 산 것이            
          죽음을 피하지 못한 원인일수 있다고 진단하였다.

  이만 발췌의 한계를 느끼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조선 중기 역사를 더 깊이 아시고 싶으시면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최명길 평전”을 접하시고 약창공 선조님의 부분만 알고 싶으시면 약창공파 소종중으로 연락주시면 복사하여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한가람 종원님게 감사드립니다.  

        반남박씨 약창공파 소종중 도유사 찬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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