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공(박상충)의 출생지
문정공의 출생지는 어디인가
첫번째
문정공의 매제 유백유가 쓴 행장을 보면
행장(行狀)
공의 휘는 상충(尙哀)이요, 자는 성부(誠夫)며 성은 박씨로서 나주 반남인 이다. 증조부의 휘는 의(宜)니 급제(及第)하였고, 조부의 휘는 윤무(允茂)니 진사(進士)며, 선고(先考)의 휘는 수(秀)니 봉익대부 밀직부사·상호군으로 치사(致仕)하였다. 밀직공이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김정(金晶)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3남 2녀를 낳았는데 공이 장남이다. 원조(元朝) 지순(至順) 임신년(1332, 고려 충혜왕 2)에 공이 공암현(孔嚴縣) 마산리(馬山里)에서 출생하니 성품이 박실(樸實)하고 중후하며 도량이 크고 민첩하였다. 그리고 경전과 역사에 정통하고 문장을 잘 지었으며 또 시를 잘 지어 재명(才名)을 크게 떨쳤다.
문정공의 출생지가 공암현 마산리로 되어있다.
공암현 마산리가 현재 어디인가 ?
고려시대에 공암현이라고 하면 조선시대 양천현을 말한다. 현재는 서울 강서구에 속하는 지방이다.
강서구 일대에 마산리로 불리우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700여년이 지난 지금 찾지를 못했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두번째
2세이신 휘 의(宜) 할아버지 사적에 공암현 마산리가 나온다.
<及第公諱宜事蹟>
諱 의(宜) 墓는 失傳이다, 峰峴에서 十里되는 공암현 馬山里에 한 古冢이 있는데 朴氏山이라는 傳說이 있으나 그곳에 사는 徐哥가 그곁에 여러번 葬事를 하였고 또 반남리에는 鄭家의 竹林속에 古冢이 있는데 또한 박씨묘라는 말이있어 英祖 庚辰年에 ‧‧‧‧‧‧
봉현에서 십리 되는 공암현 마산리라고 한다.‧
봉현은 반남면 흥덕리 호장공 묘역에서 200 여m 떨어져 있는 고개 마루턱이다
봉현에서 십여리 떨어져 있는 곳에 왕곡면 화정리 마산 부락이 있다.
그러면 서울 양천인가 반남근처 왕곡면 화정리 마산부락인가.
우선 공암현에 대하여 알아보자
고려사 기록에 의하면
고려사 >卷五十六 志 卷第十 >地理 一 >
공암현
本高句麗齊次巴衣縣, 新羅景德王, 改今名, 爲栗津郡領縣. 顯宗九年, 來屬. 忠宣王二年, 改爲陽川縣, 置令.
본래 고구려의 재차파의현(齊次巴衣縣)으로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쳐 율진군(栗津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현종 9년(1018)에 내속시켰다. 충선왕 2년(1310)에 양천현(陽川縣)이라고 고쳐 영(令)을 두었다.
신라 경덕왕 때 양천현으로 하였다가 고려 충선왕 2년(1310) 양천현으로 고쳤다는 내용이다.
문정공은 고려 충혜왕(忠惠王) 2년(1332년) 출생하였으니 공암현에서 양천현으로 개명한 후 22년이 지난 때 이다
문정공의 행장은 매제인 유백유가 태종 13년 (1413)년에 지었으니 공암현에서 양천현으로 이름이 바뀐지 100년 후 이기에 공암현 대신 양천현 마산리라고 해야 되지 않는가?
이러한 의문을 제기 할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공암현을 검색하면 1건도 안 나오니 조선조에서는 공암현이란 단어는 없고
양천현은 태종실록에 1건 으로 태종 18년에 ‘양천현감 권약’
세종실록에는 7건이 검색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 양천현(陽川縣)
영(令) 1인.
본래 고구려의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인데, 신라가 공암(孔岩)으로 고쳐서 율진군(栗津郡) 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 현종(顯宗) 무오 에 수주(樹州) 임내(任內)에 붙이었다가, 충선왕(忠宣王) 2년 경술에 양천현으로 고쳐서 영(令)을 두었다. 본조(本朝)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양화도(楊花渡)에 이르기 11리, 서쪽으로 김포(金浦)에 이르기 11리, 남쪽으로 금천(衿川)에 이르기 15리, 북쪽으로 한강[大江]에 이르기 1리이다.
고려말에 공암현이 양천현으로 개명되고 문정공은 개명된지 20년 후에 출생하였고
유백유가 조선조 초 태종13(1413년)에 행장을 지을 때는 공암현이란 지명은 존재하지 않으니 행장에 나오는 공암현은 현재의 강서구 양천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크고
2세 급제공 휘 의(宜) 사적에 나오는
봉현에서 십리되는 공암현 마산리에 더욱 많은 신뢰가 간다.
하지만 문정공의 출생지가 강서구 양천이라고 단정을 짓는 것은 많은 의문이 있고
나주 왕곡면 화정리 마산리라고 하기에는 문헌의 자료가 부족하다.
두곳중의 한곳을 문정공 출생지라고 확정을 짓기에는 양쪽 모두에 의문점이 너무 많으니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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