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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박창서
ㆍ작성일 2019-04-16 (화)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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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모바일 작성글 세양공의 출생년도를 추산할 수 있는 조선왕조 실록
모바일 작성글 세양공의 출생년도를 추산할 수 있는 조선왕조 실록


이글은 2019.04.14. 08:07에 박대서 종인이 반남박씨족보 카페에 올린글로서 세양공 출생과 관련하여 연구함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에서  이곳에 올리오니 대종중에서 검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 입니다만 근거가 있으니 보아주시고 허물치 말아주세요.

세조는 왕자지만 왕위에 오를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에 술과 사냥과 여흥을 즐기면서 사람들과 폭넓게 사귀었다.
그 중에 말타기와 활쏘기로 하면 막상막하인 박강을 좋아하였다.
세조의 잠저 시절 구체적으로 내용이 없어 어떤 관계인지는 몰라도 세조가 임금에 오른 뒤에 지나칠 정도로 가까이 두고 총애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는 조카며느리(동생 훤의 큰아들)가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와 한집안이었다는 것이다.

박강 역시 호탕한 성격으로 대군과 친구로 함께 여러곳을 다니며 즐겼다고 보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강의 친구이자 사돈인 구치관에게는 과거를 보아 구제를 하였지만, 박강은 그에 못지 않은 학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보지 않았다.
세조가 박강을 챙겼다면 박강은 늘 동갑내기 구치관을 챙겨 함께 다녀기를 좋아했다.
그러다가 구씨 집안의 딸을 동생 박훤에게 연결시켜 혼인까지하게 합니다. 동생 훤은 대략 4살정도 아래로 추측합니다.
구치관은 또 제부인 박훤을 챙기고, 어세겸 어세공 형제와 박숭질을 챙겼다. 박훤이 중매하여 어세겸 역시 능성구씨 아내로 맞았다.

박강은 세조가 늘 술자리를 만들거나 사냥가자고 불러내니 따로 공부할 경황이 없었다.
세조는 술을 즐겨마셨다. 그렇지만 만취하지는 않을 정도였다.
당시 주법을 소개하면 고려시대로 부터 전해오는 주법인데 고려 사람들은 보통 술 마실 때 평상 위에 작은 소반을 놓고 구리 그릇에 어포와 육포 또는 생선과 채소를 섞어 내오되 상은 매우 소박하며, 술잔을 돌리는데 절도가 없고 많이 돌린다고 했다.

또 고려 사람들은 목욕을 매우 좋아했다.『고려도경』을 보면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부터 하고 문을 나서며, 여름에는 날마다 두 번씩 목욕을 하는데 시냇가에서 주로 했다.
남녀 구별 없이 의관을 언덕에 벗어 놓고 물굽이를 따라 벌거벗는데, 이를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자를 멀리한다는 것이 맞는 이치이다.
술이 취하면 될 일도 안되기 때문이다.
박강의 어머니는 늘 아버지가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말씀하시면서 술을 멀리하라고 하였다.
큰아들은 관찰사 등으로 외지로 자주 나가 역시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여하튼 일찍 돌아가신 편이다.
막내아들 박훤은 술을 마시긴 했지만 한번 혼나고 그뒤로 술을 조금씩 드신 듯 하다.

그리고 세조는 불교에 심취해 있어서 그런지 여색을 멀리한 경향도 있다.
백부인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되었다는 것도 여러번 들어온 터라 여색을 멀리게하게끔 되었다고 보여진다.
세종은 6명의 아내를 두었고 54세까지 살았다. 31년 6개월 재위기간 동안 집현전에서 밤을 새웠다고도 하니 잠자리는 시원치 않았을 것이다.
문종은 궁인 3명을 포함 11명의 여인을 두어 2년3개월 재위하고 39세에 죽었다.
세조는 3명을 두었다가 1명은 폐출하였다. 정희왕후가 똑똑하여 아마도 선왕처럼 "일찍 죽을래 나랑 오래 살래" 하여 후궁을 못들이지 않았나 싶다.

세조의 잠저시절을 추측해 본다면 아마도...
"박강 자네는 나하고 사냥하고 풍류를 즐기며 살면 되는거야. 과거는 무슨...골치 아프게. 내가 조선의 미인들은 다 품게 해주겠다."
"그거 좋지요. 대군 말이 맞습니다. 내가 급제한다면 다른 인재 하나는 놓치는 것이 아닌가요? 하하하. 그러나 여색을 너무 밝히다 보면 객사하기 딱 입니다. "
"맞아 맞아. 자넨 욕심이 없어서 좋아. 그게 맘에 들어. 그러고 말이지 하고 싶다면 뭔들 못하겠는가?"
" 그건 그렇고....자넨 활솜씨가 천하무적 아닌가? 화살 하나로 새를, 두마리나 잡고, 한번에 두개의 화살을 쏘아 꿩 두마리를 잡았으니 대단하네. 이건 좀 뻥튀긴 입니다.
자네 동생 훤이의 사돈 윤자 어른께서 중국에 갔을 때 도자기를 하나 구해왔는데 궁궐에 있어.
내일 들어오면 보여주겠네. 자네 구미에 딱 맞는거야?
내가 미쳐 생각을 못했네 이런... 그리고 동생 훤이도 같이 오게."

동렬이란 형제자매의 관계에 있는 항렬, 또는 같은혈족의 직계에서 갈라져 나간 계통에서 대수가 다르지 아니한 행렬을 말한다. 세조는 동렬이라고 하며 반긴 듯도 하다.
세조의 파평윤씨 아내는 윤승례의 손녀이다 숭문 역시 윤승례의 손녀사위로 박강은 조카로 보면 동렬에서 세조보다 한단계가 높다. 구치관은 동생 박훤의 아내가 구치관의 6~8촌 쯤 되는 여동생이니 동렬이 되었다.

본론으로 들어가

세종 27년 3월 30일 1445년의 실록에 의한 기록이다.

요사이 제조(提調)들이 모두 늙어 근력이 쇠잔하여서 필시 부지런히 힘써 일을 처리할 수 없을 것이므로, 정3품이나 종3품 중에서 나이 40세 미만인 자로 한 사람을 구해서 당상관을 삼아 군기감 제조(軍器監提調)로 임명하여 외직으로 내보내지 말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그 자리에 종신(終身)할 것을 알게 하면, 군기감 일을 계획하는 것이 반드시 다른 사람과 같지 않고 크게 유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꼭 그러한 인재를 얻으면 좋을 것이고, 만약 적당한 사람을 얻지 못하면 공연히 벼슬자리만 가볍게 사용함이 될 뿐일 것이다. 공손은 그 조부의 업(業)을 이어서 마음 쓰는 것이 필시 남보다 나을 것이니, 역시 약간 그 벼슬을 올려서 자기로서 여기에 종신할 것을 알게 하면, 반드시 유익함이 될 것이다. 이제 제조가 될 만한 사람을 구하되 얻지 못하였으니, 경들이 문관이나 무관 중에서 네댓 사람을 골라서 아뢰라."

하매, 정부(政府)에서 대호군(大護軍) 박강(朴薑)을 천거하니, 드디어 강으로 군기감 정(軍器監正)을 시키고, 특별히 통훈 대부(通訓大夫)로 한 계급 올렸다.
나이를 추측할 수 있는 자료이다.

제조는 나이가 있어 특히나 거센 군기제조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관리해야 하는 자리로 나이가 있어야 했다. 젊은 사람의 말을 듣지않는 경향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박강의 나이를 계산해 보면 40세미만 이니 39세이다.
1445ㅡ39= 1406 년이라고 추측 가능한 출생년도가 나온다.

40세 이하도 아니고 꼬집어서 40세 미만이라고 하니 박강을 두고 한 말이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다른 하나는 구치관과 꼭 붙어다녔다는 것이다.
박강과 구치관은 동렬이었으면서 또한 동갑내기였다고 본다.
구치관은 동생 박훤의 한 6~8촌쯤 되는 손위처남이다. 후에 박숭질이 파직을 당하였을 때 경기도사로 천거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숙부가 천거할 수는 없지 않은가?

1. 이조 참의(吏曹參議) 박강(朴薑)으로 평안도 도진무를 삼아, 문신(文臣) 이전수(李全粹)·구치관(具致寬)을 예속시켰다. 인하여 경군(京軍)으로 날래고 용맹스런 군사를 선발하여 함길도에 20명, 평안도에 40명을 보내었다.

2. 세조 2년 7월 20일 1456년

충훈부에서 잔치를 베풀고, 박강·구치관·조효문 등을 전송하다
충훈부(忠勳府)에서 잔치를 베풀고, 순찰사(巡察使)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박강(朴薑), 이조 참판 구치관(具致寬), 경상도관찰사 조효문(曹孝門)을 전송하니, 예조 판서 박중손(朴仲孫)에게 명하여 선온(宣醞)을 가지고 가서 그들을 위로하게 하였다.

3. 세조 2년 7월 21일 1456년
하삼도 순찰사 박강과 부사 구치관이 배사하니 인견고 전송하게 하다
경상 전라 충청 삼도 순찰사(慶事全羅忠淸三道巡察使) 지중추원사(知中樞院使) 박강(朴薑)과 부사(副使) 이조 참판 구치관(具致寬) 등이 배사(拜辭)하니,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인견(引見)하고 소작(小酌)을 베풀었다.

이렇 듯 실록에 함께 한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동년배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세조가 박강을 배려하여 나이 많은 사람을 동행하게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다.
구치관은 1406년 생이다. 둘의 차이는 공신의 자제와 과거 급제자라는 것이다.
구치관은 후에 영의정에 오른다.

박강과 구치관은 모두 청백리이다.

도자기의 비밀은 다 아시는 내용이기에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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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람] 세양공 출생년대는 언제 ? (2019-03-29 02:24)

 

세양공댁 창신교위공종회에서 발간된 우리조상 바로알기”25쪽에 7세조 세양공 휘 강()

1406(태종6)년 출생 1460(세조 6)년 별세(향년55)로 기록 되어있다.

 

1642년에 처음 발간된 임오보부터 2012년 발간된 임진보 기록어디에도 세양공 출생연대가 없으며

특히 임오보 발간은 세양공의 6대손 목사공 박대하(1577~1623) 선조님이 기록하신 보첩을 저본(底本)으로 참고하여 발간된 세보로

세양공의 출생연대는 370여년전 목사공께서 모르던 기록이

근세에 어디에서 발견된 것인지?

 

평도공께서는 35녀를 두셨다.

첫째사위 윤구, 두째사위 김윤, 장자 (), 셋째사위 이중, 넷째사위 어효첨, 차자인 강(), 다섯째 사위 윤경신, 삼남인 훤()등 이다


 

반남박씨의 세보에 특징은,

다른 성씨종중의 기록은 남성(아들) 중심으로 먼저 아들을 기록하고 여성(딸)은 후순위로 뒤에 기록하는 방식과는 달리

남(아들) 녀(딸) 구별없이 자녀 출생순으로 기록하였다.

 

평도공의 넷째사위 어효첨의 함종어씨 족보기록에 의하면

어효첨선생의 배위인 증정경부인 반남박씨

() 금천부원군 평도공 은()이며

출생이 1407 725일 생으로 되어있다.

 

세양공의 바로 위 누님께서 1407년 출생인데 동생인 세양공께서 1406년 출생이란 조금 이상한 것이 아닌지

아니면 함종어씨의 족보기록이 잘못된 것인지

갑자기 나타난 세양공의 1406년 생년 출처는 어딘지 궁금하다.

 

     함종어씨 족보

함종어씨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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