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부인 거창신씨 비문
居昌 愼氏 碑文
維我五代祖考贈贊成公有元配曰居昌愼氏司直汝修之女葬在三嘉之揄谷坤坐原玄孫奉化守泰迪捐俸托諸 夫人親族之居山下者愼君命翊俾伐石表墓嗚呼孤墳荒阡邈在遐鄕子孫不得以時展省且將二百年幾何不至於堙廢而無徵今泰迪氏乃能爲此事泰先之孝斯己至矣愼君又能盡心經紀功且告僝以弼明亦在後孫之列遠來相故追遠興感不覺涕泗之集遂出官帛以相刻侵仍敢自書其面而記其陰如此云
上之三十四年戊子十月壬申五世孫通政大夫守全羅都觀察使弼明謹書
거창 신씨 비문
우리 오대 할아버지 증 찬성공께 원 배필이 계셨으니 곧 거창 신씨 사직 여수의 따님이다.
장지가 삼가(三嘉: 합천이 옛지명인 듯)의 유곡(楡谷) 곤좌의 언덕에 계셨는데 현손 봉화군수 태적(泰廸)께서 녹봉을 희사하여 부인의 친족이 사는 산 아래 사람들에게 맡기니 愼君 命翊이 돌을 다듬어 묘표를 하였다.
오호라!
외로운 무덤이 수풀에 묻혀있는데 아득한 시골이 되어서 자손들이 때에 성묘하지 못하여, 또 장차 이백년이 되어가니 어찌 황페 하여 징험할 곳이 없어 지지 않으리오
금번 태적께서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선대를 받드는 효성의 지극함에서 이다.
신군 또 한 마음을 다하여 일을 경영하여 일이 이루어졌음을 알려오니 필명(弼明)도 후손의 한 사람으로 멀리서와 도운 까닭에 추원하는 감회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눈물이 흐른다. 마침내 관에서도 면포를 내어 刻石을 도왔다. 이에 감히 내 스스로 전면의 글씨를 쓰고 陰記를 이와 같이 기록한다.
상지 숙종 삼십사년 무자 시월 임신 오세손 통정대부 수 전라도 도관찰사 필명 근서
위의 비문은 판관공파 찬수님께서 번역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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