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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박흥양
ㆍ작성일 2016-03-26 (토)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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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전(兩班傳) 연암 박지원 지음 박흥양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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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전(兩班傳)             연암 박지원 지음         박흥양 번역
양반이란 자는 사족의 존칭이다.
정선군에 한 양반이 있었는데 어질고 독서를 좋아하거늘 군수가 새로 부임할 때 마다 반듯이 그집에 친히가서 상견례를 하드라.
그러나 집이 몹시 가난하여 해마다 조적미(관곡)를 먹고 살새( 빌려다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여러해를 먹다보니 1000석에 이르렀다.
관찰사(觀察使)가 군읍(郡邑)을 순행(巡行)하면서 조적미를 검열(檢閱)하다가 대노하여 말하기를
“어느 놈의 양반(兩班)이 군량미(軍糧米)를 다없애버렸는가, 그양반을 잡아드려 가두어라” 할세
군수(郡守)가 그 양반(兩班)을 아끼는 마음은 있으나 가난하여 갚을길은 없고 차마 가둘수도 없어 어쩔줄 모르고 있으니
양반(兩班)은 밤낮으로 울기만 하면서 대책(對策)이 없는데 그의 처(妻)가 꾸짖어 말하기를
“평생 글만 읽으면서 관청의 조적미에 매달려 살면서 양반이 무엇이고” 하면서 혀를 차드라
양반은 한푼도 갚지못하는데
그마을에 사는 부자(富者)가 그 댁(妻)과 상의(相議)하기를 양반은 가난해도 항상 존경(尊敬)을 받으며 사는데, 나는 부자이나 항상 비천(卑賤)하여 감히 말(馬)을 한번 탈수가 있나. 양반만 보면 국축(跼縮:황송하여 몸을 굽힘)이 되어서 방황하며 업드려 기며 뜰에서 절하고 코를 끌며 엉금 엉금 기면서, 내항상 그렇게 하였으니 그얼마나 욕되게 살았는가.
이제 兩班이 가난하여 조적미를 갚을 능력이 없어 크게 군색(窘塞)하여 도저히 양반의 身分을 부지못할 형편이니
“내가 양반을 사서 행세(行勢)·하리라” 하고
드디어 양반을 찾아가서 조적미를 갚을 것이니 양반을 내게 팔아라 하니 크게 즐거워 하면서 허락하거늘 於是에 조미를 실어서 관청으로 보내니 郡守가 크게 놀라서 이상히 여겨 양반의 집에 가서 연유를 물으니 양반이 자리를 펴고 폐립(敝笠; 벙거지)을 쓰고 짧은 옷을 입고 엎드려서 소인이라 하면서 감히 쳐다보지 못하거늘 군수가 놀라면서 내려가 붙들고
“여보시오 어찌 나를 욕보이시오” 하니
양반이 더욱 두려워 하는 모습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부복(俯伏)하여 아뢰기를
“내가 양반을 팔아서 조적미를 상환(償還)하는 것이니 마을에 부자(富者)가 양반이지 소인(小人)이 어찌 감히 팔기전에 양반이라 하여 양반 행세를 하겠습니까”
군수가 탄식하기를
“군자(君子)로다 부자(富者)여 양반(兩班)이로다. 부자여 부로서 의리에 인색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급한사람을 어려움에서 구해주니 어질도다. 어찌 낮은 사람으로서 생각이 높은사람의 지혜와 같을까,    이것이 진정 양반이로다. 그러나 사사로히 팔고 산것이 문서를 마련해두지 아니하면 앞으로 송사가 일어날 소지가 있으니 내가 너와 약조한것이니 군민을 증인으로 하고 문서를 만들어 미덥게 할것이다” 하고 군수가 스스로 서명하고 관아로 돌아와 군내에 양반과 농공상을 다불러 뜰에 모으고 부자는 향소(鄕所) 우측에 앉히고 양반은 그밑에 세워서 문서(文書)에 쓰기를
“건융10년 9월 일 에 오른쪽일을 명문으로 가리노니 양반을 팔아서 관곡(官穀)을 상환(償還)했는데 갚은양이 1000섬이다 그런데 오직 그양반 이라는것은 이름이 복잡다단(複雜多端)한데 글읽는것을 선비라 하고, 벼슬한사람을 대부라하고, 덕망있는것을 군자라하고, 무과에 급제하면 계급이 서반의 반열에 올라야 하며, 문집이 여러질 사랑방에 쌓여 있어야 이것이 양반이니, 임이데로 따라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일이 있으니, 옛사람의 뜻을 따라 밤 오경에 항상 일어나 호롱에 기름을 점검하고 눈으로 코끝을 보고 꿇어 앉아서 동래박의(東萊博議)하며, 글외우는 소리는 어름위에서 박구르듯 하고, 배고프고 추위를 참아야 하며, 아무리 없어도 없다말 하지 말고, 입을 다시면 뇌가 울리게 하고, 입을 가새면 침을 삼키고 옷깃에 문의를 새기고, 관에는 깃털을 꼽으며 먼지를 톡톡 털며, 낯을 씻을때 싹싹 문대지 아니하며, 양치질을 해서 입에 냄새가 나자않도록 하고,
”여바라“ 하고 종을 부르며” 걸름걸이는 조용조요히 하고, 고문진보(古文眞寶)나 당시품휘(唐詩品彙)를 초서로 쓸줄알아야 하며, 한눈에 백자를 다 알아봐야 하며, 손에 돈을 쥐는 법이 없으며, 쌀값은 묻는일이 없어야하며, 아무리 더워도 버선을 벋지말아야 하며, 밥상앞에서는 상투를 만지지 말며, 밥먹을때는 국그릇을 먼저 비우지 말며, 마실때는 꿀꺽 꿀꺽 소리가 나지않도록 하며, 젓가락을 콩딱 콩딱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생파를 먹지 말아야 하며, 막걸리를 마실 때 수염에 묻히는 일이 없어야하며, 담배를 피울때 볼이 들랑 날랑(들락날락) 하지 아니해야 하며, 화가 난다 해서 처를 때리는 일이 없어야 하며, 성난다고 그릇을 깨지 말며, 주먹으로 구박하지 말며, 말과 소를 부릴때 망할놈의 소 팔아치울까 하지말며, 아파도 무당을 부르는 일이 없어야 하며, 화로불에 손을 쬐지 말며, 말할 때 이(치아)가 들어나지 않아야 하며, 소를 잡는일이 없어야 하며, 노름을 하지 말것이며, 이와같은 행실은 어기는 양반은 이 문안(文案)데로 관청(官廳)에서 변을 당하게 해서 바꿀것이다“
.(이러한 100가지 행동이 만일 양반과 틀릴 때에는 이문서를 가지고 관청에 가서 고치게 할것이다.“)
성주 정선군수가 명하고 좌수(座首)와 별감(別監)이 증인으로 서명하고 통인(通引)이 관인(官印)을 찍고 큰소리로 엄하게 외치고 호장(戶長)이 다 읽고 나니 부자(富者)가 넋을 잃고 오래된뒤에 말하기를
“양반은 신선(神仙) 같은줄 알았는데, 정말 이와같이 하다간 진작 말라죽겠으니 원(願) 하건데 조금 쉽도록 고쳐 주십사” 하니,
於是에 다시 문안을 작성하되 오직 하늘이 백성을 내릴때 네가지를 정하였는데
“네 가지 중에 제일 귀한것이 선비인데 이름하여 양반이라, 이로움이 더할나위 없으니 농사도 짓지아니하고, 장사도 하지말고, 문학이나 역사를 익혀서 크게는 문과하고, 적게는 진사라도 해야 하며, 문과하면 홍패가 두자도 안되지만, 百物(백가지 물건)을 갖추어져 있으며, 전대(돈 자루)가 불룩할것이다. 진사만 해도 삼십(三十)가지 이점이 있으니, 교제를 잘하면 처음부터 벼슬을 할수있으며, 이것이 이름하여 음사라 하며, 상관을 잘섬기면 일산대 휘날리며, 배불리먹고, 방울만 울리면, 대답하며 옥귀거리로 처와 기생을 단장하고, 뜰에서는 길르는 학이 울고, 궁한 선비가 향리에 살면서, 오히려 힘이쎈 사람을 이기며, 이웃집소가 내밭을 먼저 갈아주며, 이웃사람이 내밭을 매주니, 누가 감히 나를 없이여길까, 회관여비(灰灌汝鼻 ;잿물을 코에 붓고) 하며, 상투를 잡고 수염을 잡아도, 감히 누가 업신여기거나 원망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부자가 문서 중간에 토설(吐說)하기를 그럼 그렇지 맹랑(孟浪) 하도다. 내가 도둑놈이지 하면서 머리를 치며 가서 다시는 양반은 말도 아니하드라.

                     壬午 12月 日    朴 興 陽 譯



관리자 추기(네이버에서 갖어옴)

양반전을 쓴 동기
선비는 몸이 비록 곤궁하더라도 본분을 잃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지금 소위선비들은 명절을 닦기에는 힘쓰지 않고 부질없이 문벌만을 진귀한 보화로 여겨 그의 세력을 팔고 사게 되니, 이야말로 저 장사치에 비해서 무엇이 낫겠는가. 이에 나는 이 양반전을 써 보았노라.

양반전의 소재와 표현법
빈궁한 양반이 자기의 신분을 팔았다는 이야기는 다른 기록에도 나온다. 이것은 경제적 질서의 재편(서민의 상승, 양반 의 몰락)에 따른 것이다. 연암은 이 소재를 취하여 매매 사건 자체를 다룬 것이 아니라, 선비는 언제나 사의식을 지켜 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양반 신분을 이용하는 도둑밖에 되지 못함을 풍자적 방법으로 비판하고 있다.

감상
이 작품은 연암의 초기작 가운데 하나로 조선 후기 양반들의 경제적 무능과 허식적인 생활 태도를 폭로하고 비판한 한문 소설이다. 작자는 신분 질서가 문란해진 조선 후기를 바탕으로 해서, 양반이라는 특권 계층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양반이 양반답지 못한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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