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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박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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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2. 9. 경향신문 [행복한 글 읽기] '서계집을 읽는 모임'

2007년 2월 9일 (금) 15:11 경향신문

[행복한 글읽기]‘서계집을 읽는 모임’


‘서계집을 읽는 모임’ 의 회원들이 ‘이택재’ 에서 공부하는 모습.



이택(麗澤).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로 ‘붙어 있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서울 종로 운현궁 뒷골목의 한 오피스텔 7층에는 이택을 딴 ‘이택재(麗澤齋)’가 있다. 이택재는 두 개의 연못이 연결돼 서로를 적셔주듯 공부하는 붕우(朋友)들이 모여 강습을 통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절차탁마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6일 퇴근길을 재촉하는 시간. 이택재로 30, 40대의 사람들이 한 두명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택재의 재장(齋長)인 최병준씨(44)는 “‘천하에 기뻐할 만한 일은 붕우들과 강습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天下之可說 莫若朋友講習)’는 말이 있다”며 “서로에게 풍성한 연못이 되기 위해 모이는 것”이라고 전한다. 고전국역기관인 민족문화추진회(민추) 출신 선·후배들이 1999년 12월 만든 ‘이택고전연구회’의 산실인 이택재는 한문고전강독, 초서연구 등을 목적으로 연 도심속 서당. 한문 국역에 있어서 내로라하는 ‘내공’을 지닌 이들은 한문강독반을 열어 후학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연구회에는 또 작은 공부 모임이 있다.

이날 이택재에 모인 9명은 그 공부 모임 중 하나인 ‘서계집을 읽는 모임’ 회원들. 민추 출신을 주축으로 한 이들은 매주 화요일 저녁 조선 후기 대학자인 서계 박세당(朴世堂·1629~1703)의 문집인 ‘서계집(西溪集)’을 읽고 번역한다. 2005년 봄 시작했으니 벌써 3년째다. 민추 전문위원인 최채기씨(43)는 “서계는 대학자였으나 당쟁에 희생되면서 사문난적으로 몰려 삭탈관직 됐던 인물”이라며 “서계집은 20권10책으로 우리는 그가 가족·친지 등과 주고 받은 편지 부분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모임 때는 초역 담당 회원이 발표를 하면, 참가자들이 각자 해석상의 결함이나 표현상의 문제점 등을 지적한다. 초역 담당자로선 꽤 부담이 된다. 퇴계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인 강여진씨(44)는 “워낙 방대한 내용이 담긴 문집특성상 혼자 공부하다 보면 잘못 해석할 수도, 또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 수도 있다”며 “강독을 통해 서로에게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자는 30대 중반에 직장생활을 접고 한문공부에 빠져든 김낙철씨(46). 강독이 시작되자 긴장감이 흐른다. ‘下敎(하교)’에 대해 “당시 임금이 붕어상태인데, ‘임금의 지시’란 의미는 이상하다. 상대방의 말이란 의미도 있으니 역사적 사실을 더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봄이 되기 전에’로 초역한 ‘春明之內(춘명지내)’부분에서는 “춘명은 봄이 아니라 궁의 이름이다”란 지적도 나왔다. 이로써 해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 김낙철씨는 “글을 읽다 보면 당시의 역사적 상황 등을 꼭 알아야 되는데 자료가 없을 땐 고민스럽다”며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고플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웃는다.

글자 한 자를 놓고 읽고, 지적하고, 토론하고, 책을 뒤지기도 하는 이들의 강독은 밤 10시까지 계속됐다. “붕우들로 부터 매를 맞아 그 매가 뼈와 살이 되는 셈”이다. 해양수산개발원 독도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인 유미림 박사(45)는 “한문 공부는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강독은 개인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한문고전의 국역은 우리의 전통 문화, 나아가 동양 문화 연구의 기초이다. 한문 교사를 하다 ‘한문을 좀더 알고 싶어’ 아예 한문 공부에만 전념하는 이규필씨(35)는 “‘서계집’이 국역되면 필요한 모든 이가 도움 받을 수 있는 일”이라며 “표현 하나 하나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의 밤샘 노력으로 한문고전들이 하나 하나 국역돼 쌓여가고 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어제 없는 오늘, 오늘 없는 내일이 없듯이 이들의 작업은 내일을 향한 아주 소중한 일이다. 그래서 한밤중 한문 공부에 매달린 그들의 뒷모습은 듬직할 수밖에 없다.

〈도재기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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