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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2016-03-26 (토)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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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늦어진 현목수비<顯穆綏妃> 개호(改號)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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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늦어진<顯穆綏妃> 改號 전말
贊旭 (活塘公 後)
나의 서재에 있는 대한제국 융희 원년(光武11年)에 간행된 玄采선생의 <東國史略> 권三 중의 本朝一覽 3페이지에 보니 수빈 박씨가 벌써 <嬪>이 아닌 正祖宣皇帝의 <綏妃>로 나와 있었다. 물론 우리 족보 경신보 제1권 71페이지에도 정조수비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대 어른들을 못믿어서 그 존호를 불신하고 <綏嬪> 칭호를 墨守해 왔다는 것인지....
그것은 전주 이씨들도 마찬가지였다. 휘경원(수비박씨園寢)봉향회 당국 분들이 “이미 비로 추존되셨습니다.” 알려주시면서도 그 공문에는 여전히 <수빈>으로 항상 표기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보학에 다년간 조예 깊으시고 대종중의 전산화 작업을 담당하시는 太緖 族叔께 여쭈어, 검색해 주신 바 조선왕조실록 중의 고종실록 38년 10월 11일 실록에서 그 추존사실을 확인하였다.

<고종 38/10/11(양력) / 현목수빈을 수비로 높여 봉하다>
현목수빈을 수비로 높여 봉하고 옥책과 금보를 올리는 의식을 진행하였으며 축하를 올리고 조서를 반포하였는데 간략한 의식으로 하였다. 조서는 이러하였다.(중략) 삼가 생각건대 현목수빈은 천품이 순결하고 천성이 정숙하였다. 이름이 있는 가문의 딸로서 범절에는 물려받은 아름다움이 있었고 훌륭한 용모와 의젓한 행동으로 폐백을 갖추어 선발하였는데 뽑혔다. 훌륭한 꿈을 꾼 것은 황태자를 낳을 상서로운 징조에 부합되고 범이 지나가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곰이라도 당해낼 떳떳한 공적을 기대한 것이었다. 경술년에 아들을 낳으니 크나큰 복록은 나라의 좋은 운수를 이어 놓았다. 왕비를 도우니 두드러진 공로는 태사나 太任에 미쳤고 자궁을 모시는 각근한 지성은 아침 저녁 문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음을 잡아 생각이 깊고 덕이 가득했으며 불행에 처하여도 끝까지 한생을 누렸고 훌륭한 계책을 품고 있어 세월이 오래될수록 더욱 빛났다.(중략)
우리 정조선황제의 칭호를 소급하여 높인 만큼 그 다음으로 비를 소급하여 높이는 것은 떳떳한 규례이다. 그래서 이해 음력 8월29일에 삼가 인장을 올리고 수비로 높여 봉하였으니 황후의 의장은 제도대로 하고 금궤에 보관하는 것은 예법이 그러한 것이다. 삼가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니 감격스러운 마음이 더해진다. 아, 법은 전대에 근거하여야 하니 그것은 모든 선왕들의 것이고 훌륭한 계책은 길이 후대에 물려주니 우리 자손만대에 내려갈 것이다. 온 나라에 공포하여 모두 알게 할 것이다.

<고종 39/10/24/(양력) / 이주영 등이 황후로 높이는 의식을 제의하다>
폐하는 효성이 모든 임금들보다 뛰어나고 예의는 ‘3대’의 임금과 대등하여 조상을 높이고 근본에 보답하는 모든 방도를 취할 대로 다 취하였습니다. 융릉(隆陵)을 소급하여 높이고 다섯 사당을 더 높였는데 유독 차례로 시행해야 할 현목수비를 황후로 높이는 의식만 아직도 시행하지 않은 지가 몇 해씩이나 됩니다...(중략)
천자의 비로서 천자의 어머니까지 되고도 끝내 황후로 올라가지 못하였으니 천하에 어찌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상고할 만한 지난 시기의 역사책이나 원용할 만한 나라의 규례들이 한두 가지만이 아닌 만큼 폐하처럼 거룩하고 명철한 자질로는 틀림없이 꿰뚫어 볼 것이니 신 등이 어찌 누누이 말씀드리겠습니까. 하지만 종묘의 아름다운 법은 바로잡지 않으면 안되고 온 나라의 공정한 논의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폐하는 깊이깊이 생각해서 지시를 내리는 동시에 해당 관청에서 좋은 날을 받아 황후로 높이는 의식과 신주를 종묘에 들여놓는 의식 절차를 예의를 갖추어 거행하게 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폐하의 효성이 빛날 뿐만 아니라 하늘에 있는 선조와 숙종 두 조상의 영혼도 저 세상에서 기뻐할 것이며 높고 낮은 관리들과 백성들까지 모두 더 없이 기뻐서 춤출 것입니다. “ (후략)

고종 38년은 光武 5년이니 서기 1901년이다. 당시 갑오경장을 실시하여 국위를 일신하고 칭제건원을 단행하였는데 특히 선대 다섯 종묘를 추존하였다는 실록기사가 있다. 그리하여 열조 중에, 재위하지 않았던 추존 文祖翼皇帝의 조대비도 神貞翼皇后로 높이고 사도세자 곧 추존 莊祖의 빈이신 혜경궁 홍씨도 다행스럽게 獻敬懿皇后가 되어 종묘에 봉안되었거니와, 정작으로 애석하게도 실제 재위했던 두 분인 正祖宣皇帝의 비요 純祖肅皇帝의 모후는 后도 아니요 妃도 아닌 嬪으로 지금까지 106년을 七宮에 받들어 왔다니.(嗚呼, 不敏한 吾門!)
이것은 <전주리씨 대동 종약원>이 공한에서나 기타 존호를 사용함에 있어, 그간의 오류를 바로잡아 遑然히 개호를 실천해야 한다. 이미 1901년에 추존(改號) 詔書는 내려진 것이 아닌가!
애석한 것은 대한제국이 이후 을사년(1905년 보호조약) 정미년 (1907 칠조약) 경술년(1910 국권병탄) 국치에 이르기까지 혼미한 정국으로 운이 다하매, 수비께서도 끝내 황후로 추존, 行禮되는 운을 못 보신 것이다.

그러나, <빈>은 임금의 1위 副室이며 정일품의 女官이요, <비>는 임금의 정실 아내며 내전 곤전 중궁전이라 불러 왕과 같이 품계는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미 경신보에 선대 종현들이 정통하시어 바로 기록해 주신 대로 ‘綏妃’ 칭호를 준수하자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세 분의 비빈이라>하지 않고 <세 분의 妃라>고 일러야 옳다. <潘朴에 비빈이 셋이라> 않고 <비가 세 분이라> 해야 바른 지칭이다. 그 추존호는 <현목수비>다.
현재 칠궁에는 비빈이 7위 모셔 있는데 그 중에 두 妃가 있으니. 영왕(垠) 모친인 純獻貴妃 엄씨와 순조의 모친 현목수비 박씨다.
종친들께 알리오니, 부디 매년 양력 10월 넷째 월요일(오전11시)을 달력에 메모해 두셨다가, 전철 경복궁역에 내리시어 청와대 정문 왼쪽 담에 이웃한 七宮祭의 제향(景祐宮)에 참반해 주시기를 삼가 부탁을 올립니다.



동국사략

1906년 현채(玄采 : 1856~1925)가 편찬한 한국통사.
4권 4책(초판은 4권 2책). 국한문혼용체.
저자의 많은 사서(史書) 중에서 대표적인 책이다.
한말의 대표적인 한국사 교과서로 이후 교과용 한국사는 이 책의 체제를 많이 모방했고, 단순히 이 내용을 축약한 것도 많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1906년 6월 초판, 1907년 10월 재판, 1908년 7월 3판을 발행했다.
1909년 5월 5일자로 발간이 금지되었다. 원명은 〈중등교과 동국사략〉이다.
1924년 수정하여 〈동국제강 東國提綱〉으로,
1928년 〈반만년 조선역사〉로 간행되었다. 현채는 계몽을 위한 많은 역사서를 서술했으며, 학부(學部)에서 교과서 편찬에 간여하면서 근대적인 사서의 체제를 모색했다. 이 결과물이 〈동국사략〉이다. 서문에서 그는 근대적인 사서의 특징으로, 분명한 증거에 따른 서술과 다양한 분류를 든다. 이에 따라 이 책은 편년체 서술을 벗어나 태고(단군~삼한)·상고(삼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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