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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2016-03-26 (토)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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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문강공 묘소 유래

문강공묘소.jpg

문강공묘소 옛사진.jpg


합천 문강공 묘소 유래

        (1991년 1월 합천제각등 중건실록 중에서 )

서기 1543년 (갑오년) 8월 어느날 야천선조의 부인이신 홍씨께서는 화양동앞 개울에서 병상의 선생이 입으셨던 옷을 빨고 계셨다.

당시 개울 건너편 남향의 산 기슭에서는 산역이 한창이었다.
8일전 작고하신 홍씨 할머니 시외조부 장사날이 내일 이였기에 묘혈을 파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 진주에서 초빙해 온 영남 제일의 지관이 화양동 파평윤씨네 산을 나흘동안 샅샅이 답사한 끝에 잡은 묘지자리였다.
지관은 이곳이 천하의 명당이라고 했다

이때 빨래에 열중하고 있던 홍씨 할머니의 귀에 “허허 저기는 윤씨네 묘자리가 아닌데 쯧쯧...”하는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홍씨 할머니가 고개를 살며시 들어보니 지척의 개울둑에 한 노승이 선장을 집고 서서 산역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지껄이는 말이었다.
노승은 머리를 서너번 젓더니 이윽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홍씨 할머니는 얼른 산역하는 곳으로 시선을 보냈다.
그와 동시 병상에서 신음중인 남편 야천선생의 모습을 떠올리시곤 한가지 생각을 문득 머금었다.

이튼날 아침 윤씨네 상가에서는 에기치 않은 큰 소동이 벌어졌다.
복인 한사람이 묘혈에 이상이 없나 살피러 왔다가 묘혈에 물이 가득 고인 것을 보고 상가로 달려와 그대로 고했던 것이다

이에 상제는 며칠동안 그드름을 피어온 지관을 재촉하여 현장에 달려가 보았다. 글세 과연 묘혈에는 물이 가득 괴어 있었다.
풍수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그러나 별다른 이상한 점은 발견할수 없었다.
결국 야천선생 외조부의 묘자리는 다른 곳을 택해 장사를 치렀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삼우날 저녁 선생은 숨을 거두셨다.
이에 홍씨 할머니는 시외숙의 허락을 받아 버려진 그 묘혈에 선생을 상사 지냈다.
세상에 일컫는『박묘』는 그렇게 해서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조선조에서는 일찍이 5명당이니 8명당이니 하는 말이 있었다.
예컨대 나주의 반남박씨의 『시조묘』 합천묘산의 『야천묘』를 비롯하여,
황해도 구월산의 문화유씨묘, 부산 동래 화지산의 동래정씨묘, 경남 창령군 왕산의 창령성씨묘 경북 고령의 고령신씨묘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의 풍양조씨묘 등이 그것이다.

명당 소리를 듣는 묘란 자손이 번성하여 석학거유와 고관대작 청백리 등을 많이 배출한 것을 말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야천 선조의 묘자리는 명불허전의 명당이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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