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ㆍ작성자 박찬승
ㆍ작성일 2016-03-26 (토) 10:38
ㆍ홈페이지 http://www.bannampark.co.kr
ㆍ추천: 0  ㆍ조회: 690       
ㆍIP: 175.xxx.221
인천우거에서 박찬승 오창공 기재잡기 (寄齋雜記) 평도공에 대한 번역문임
원문

太宗

世傳。當獻廟在上王宮。沈溫以國舅爲首相。奉使於天朝之日。獄事大起。還到鴨江。被逮流之水原。仍命賜死。溫臨死。謂其家人曰。世世與朴氏勿相婚也。遂以爲。我先祖平度公。以左相。於其死也。爲有力。故深恨之。有此遺命焉。余嘗參校國史。忽擾中雖未能盡記其顚末。而畧識其梗槪。都摠制沈泟。溫之弟也。一日與兵判朴習相語。仍及今之號令出於二處。大不如出於一處之爲專一。其意蓋以軍國大事。必稟上王。故二處稟覆之際。爲不便也。其時之際。經筵講畢。入侍大臣。並詣上王宮朝見將筵中事歷白之。仍加詳覈。雖非侍筵之臣。如係宰列從官。則皆許入參言事。故外間大小事情。往來言語。無不上聞。以此沈泟之言。亦以及之。進其言者。忘其名。似是兵曹正郞也。天威震怒。遂命鞫之。輾轉告引。蔓延卿大夫十餘人。無不抵伏。將論以同謀作亂知而不告之律。上王以爲。此豈獨沈泟之言。必是出於沈溫之意。故其一家之人。皆懷如此之心。右相柳廷顯星山府院君李稷等。皆言沈溫平日不善之狀。左右之人。亦各言其過。平度公亦曰。沈溫爲國舅。當拜首相。而首相則位尊。不任以事左相例兼吏禮兵判書。右相例兼戶刑工判書。溫嫌其無權。必欲得左相之任。貪權毀法之意。此可見也。
上曰。人情誰不欲執權。左相此言。似不須發也。又曰。朴習等今當處刑。彼沈溫何以處之。或曰。沈溫若聞此言。必有逃匿不還之患。或曰不無誣訴上國。扇變致禍之端。或曰。不無潛還本國。結黨作亂之事。使義州譏察江上。勿令一人闌行。並諭江界以下沿邊一帶。通加譏察。柳廷顯曰。朴習等旣已就伏。不可一日緩刑。或曰。朴習沈泟已死。則溫無卞證之路。不如留待其還。衆論不一。紛然雜起。平度公所陳。雖非如柳廷顯之斷然不留朴習者。而亦無決語。上王終循禁府之議。誅習等。及沈溫及水原。上王使人問其曲折。溫對曰。此言皆出於臣之赴京之後。願與發言之人卞之。上王又使謂之曰。朴習已死。何從可卞。卿乃王妃之父。止令賜死。卿知予意。以此言之。所深恨者。似在於柳。而勿婚之命。乃在朴門。抑有所深恨。非柳之比者。在於其間。而只傳於一家。不及於國史。故世無以知耶。今至百有七十餘年。沈家世世守之。不敢論親。獨縣令沈嶐一人入贅於朴門。而亦無子女。吁可怪也。
陶隱先生。以文章節義。與牧隱圃隱諸公。立於危亂之朝。一心循國。周旋險難。殆數十年。及其天命旣改之後。以圃隱之黨。流于嶺南。黃居正奉使往嶺南。一日之內。杖公數百棍。縛載于馬。馳數百里。遂潰爛而死。蓋希旨也。獻廟朝。居正策勳佐命。位至宰列。其時有人。以此言聞于上。獻廟大怒曰。崇仁文章德望。予所愛慕。恨其早死。果然此賊所爲也。遂削勳剝職。投竄遠方以斃。牧隱亦自壬申至乙亥。出入韓山驪州五臺山。太祖待以故舊之禮。任其所適。丙子五月。請往驪江避暑。登舟暴卒。太祖後疑之。殺其時按察使。久益恨之。二聖勸忠懲惡之方。出於一揆。可謂盛矣。海平云。
知中樞院事李順蒙。在驪州利川之間。力農治業。一日出耘于野。天忽晦冥。風雨大作。有火如大瓮。自遠輪轉而至。其聲轟轕。牛馬辟易。順蒙以鋤擊之。小兒黃髮被頂。靑目熒熒。手中有釼。中折如短鎌。倒在地上。久不運動。順蒙以鋤撇起之。天又晦冥風雨。遂失其去處。李實之嘗言。此乃外家先祖。故世傳其語。以匹夫一朝拔起。爲國家名將。豈無奇絶傑特之徵歟。

번역본 안효공과 평도공 관계 원문
태종

○ 세상에 전해오기를,

“헌묘(獻廟 태종의 묘호)가 상왕궁에 있고 심온(沈溫)이 국구(國舅)로서 수상이 되어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시기에, 옥사가 크게 일어났다. 심온이 돌아올 때 압록강에 이르자 마자 붙잡혀 수원(水原)으로 귀양갔다가 이내 죽음을 받았다. 심온이 죽을 때에 가족들에게 이르기를, ‘대대로 박씨와는 혼인하지 말라’ 하였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우리 선조 평도공(平度公 박은(朴))이 좌상으로서 그가 죽을 무렵에 힘이 있었기 때문에, 깊이 원망하여 이런 유언이 있었던 것으로 여겼었다.
내가 일찍이 국사(國史) 교정에 참여하였는데, 바쁜 와중이어서 비록 그 전말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나 그 개요를 대략 알고 있다. 도총제 심정()은 심온의 아우이었는데, 하루는 병조 판서 박습(朴習)과 서로 이야기하다가 자연 말이,

“요즈음에 호령이 두 곳(상왕과 세종)에서 나오므로 대단히 불편하여 한 곳에서 나와 전일한 것만 못하다.”
고 하였으니, 그 뜻이 대개 군국(軍國)의 대사는 반드시 상왕께 여쭙게 되어 있으므로 두 곳에 거듭 여쭐 때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이때에 경연에서 강론이 끝나면 입시하였던 대신들이 모두 상왕궁에 가서 배알하고 경연 중에 있었던 일들을 차례로 아뢰고 더욱 세밀히 조사하였으며, 비록 경연에서 모시는 신하가 아닐지라도 재상의 반열에 드는 종관(從官)은 모두 들어가 일을 논하는데 참여하게 하였으므로 바깥의 크고 작은 일과 오고가는 말을 아뢰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심정의 말도 나오게 되었던 것인데, 그 말을 아뢴 사람의 이름은 잊어버렸으나 병조 정랑인 듯하다. 상왕이 벼락같이 노하여 드디어 국문하라 하였으나, 죄인들이 서로 전가하고 끌어들여 경대부 10여 명에게까지 연루되었는데, 죄를 자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다 장차 ‘함께 모의하여 난을 꾸미고, 알면서 고하지 않은 죄’로 논하기로 하였다. 상왕은 생각에,

“이것이 어찌 심정 혼자서 한 말이겠는가? 반드시 심온의 뜻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집 사람들이 모두 이런 마음을 품고 있을 것이다.”
여겼고, 우의정 유정현(柳廷顯),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 이직(李稷) 등이 모두 심온의 평소에 좋지 못한 일들을 말하였으며, 좌우의 사람들도 각각 그의 허물을 말하였다. 평도공도 말하기를,

“심온이 국구(國舅)이므로서 의당 수상이 되어야 하는데, 수상은 직위만 높았지 맡은 사무가 없고, 좌상은 으레 이조ㆍ예조ㆍ병조 판서를 겸임하며, 우상은 으레 호조ㆍ형조ㆍ공조 판서를 겸임하므로, 심온이 권세 없는 것을 꺼려 꼭 좌상의 자리를 얻으려고 하였으니, 권세를 탐내 법을 무너뜨리려는 뜻을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였다.
상왕이 말하기를,

“인정에 누가 권세 잡기를 마다 하겠소. 좌상의 이 말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소.”
하였다. 또 말하기를,

“박습 등은 지금 마땅히 처형하겠지마는 저 심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하니, 누군가가 말하기를,

“심온이 만일 이 소문을 듣는다면 반드시 도망하여 숨어버리고 돌아오지 않을 염려가 있습니다.”
하였다. 혹은,

“중국에 무고하여 변란을 선동하여 화를 일으킬 염려도 없지 않습니다.”
하였고, 혹은 또,

“몰래 본국에 돌아와 붕당을 만들어 난을 일으키는 일이 없지도 않을 것이니, 의주에서 압록강 위를 순찰하여 한 사람도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게 하고, 아울러 강계(江界) 이하 연변 일대에도 유시를 내리어 일률적으로 순찰하게 하소서.”
하였다. 유정현이 말하기를,

“박습 등이 이미 자백하였으니, 하루도 그의 처형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하였고 혹은 말하기를,

“박습ㆍ심정이 죽으면 심온이 변명하여 증거댈 길이 없게 될 것이니,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하여, 중론이 일치하지 않아 분분하게 일어났고, 평도공이 말한 것은 비록 유정현이, ‘단연코 박습의 처형을 보류하지 말자.’고 한 것과는 같지 않았으나 또한 결정적인 말이 없었다.
상왕이 마침내 의금부의 의론에 따라 박습 등을 베이고, 심온이 수원에 귀양간 뒤에 상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 곡절을 묻자, 심온이 대답하기를,

“이런 말은 모두 신이 중국에 간 뒤에 나온 말이니, 발언한 사람과 대면하여 밝히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상왕이 또 사람을 시켜 이르기를,

“박습이 이미 죽었으니 무엇으로 밝힐 수 있겠는가? 경은 왕비의 아버지이므로 죽음을 내리는 것으로 그치니, 경은 나의 뜻을 알라.”
하였다. 이런 사실로 보면, 깊이 원망한 데는 유정현에게 있을 것 같고 ‘혼인하지 말라’는 유명은 박씨 가문에 대해서였다. 아니면 깊은 원한이 유(柳)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 그 중에 있으면서도 다만 한 집안에만 전해오고 국사(國史)에는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알 수 없게 된 것이 아닐까?
지금 1백 70여 년이 지났는데도 심씨 가문에서 대대로 지켜 감히 박씨와 혼인하지 못하고, 다만 현령 심융(沈융) 한 사람만이 박씨 집안 사위가 되었는데 또한 자녀가 없었으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수백년이 흘렀는데도 감정이 있으면은 안효공파 이외에 청송심씨 전문중이 반남박씨와 원한이 있는것 같이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박찬승
   
  0
3500
    N     분류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236    세보 편찬에 대한 질문 환영합니다 박희서 2016-03-26 483
235 (기재잡기) 문강공 야천할아버지 묘 자리 전설 춘서 (… 2016-03-26 519
234 평도공 한식 제향 관리자 2016-03-26 515
233 2007년도 제52회 대종회 참석 소감 박승진 2016-03-26 556
232 시(詩) 사진 서예(書藝)의 만남 전(展) 관리자 2016-03-26 500
231 조선왕조실록에 문열공(文烈公) 박태보의 기록 관리자 2016-03-26 1757
230 노강서원 춘계향사 봉행 견문록 박창서 2016-03-26 542
229 노강서원 춘계향사 봉행 관리자 2016-03-26 522
228 2007년 반남박씨 전북지회 정기총회 개최 안내 관리자 2016-03-26 513
227 대종회의 서광? 박창서 2016-03-26 584
226 4월중 평도공 한식 제향, 세양공 반성부원군 절사, 정재공 춘계.. 관리자 2016-03-26 566
225 반남박씨 제 52회 정기대종회 경과보고 관리자 2016-03-26 471
224 박찬욱, 이번엔 美 영화제 심사위원 발탁 관리자 2016-03-26 520
223 대종회 참관소감 박승우 2016-03-26 474
222 반남박씨 대종회 경축 박창서 2016-03-26 485
221 수단분과 위원회 개최함 관리자 2016-03-26 478
1,,,361362363364365366367368369370,,,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