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ㆍ작성자 박원우
ㆍ작성일 2016-03-26 (토)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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擇里志에 있는 葯窓公 朴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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擇里志에 있는 葯窓公 朴燁 이야기

평양 동쪽은 성천부(成川府) 이다

곧 송양왕국(松讓王國)이었는데 주몽에게 합병된 지역이며 고을 관아는

강가에 있다

광해군(光海君)이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신주

(神主)를 받들고 부중(府中)에 와서 피란하였다

광해가 임금이 되자 부사 박엽(朴燁)를 시켜 객관옆 강선루(降仙樓) 를

크게 수리 하였다 누각(樓閣)이 300여 간이나 되고 지음새가 굉장하여

팔도 누각 중에 으뜸이다

누 앞에 흘골산(紇骨山) 열두봉이 있으나 돌빛이 아담스럽지 못하고

강이얕고 빠르며 들판이 또한 비좁아서 평양보다는 훨씬 못하다

광해군은 박엽이 재능이 있다 하여 평양감사로 발탁 하였다

그때 만주(滿洲)에서 난(亂)을 꾸며 서쪽 방면에 일이 많았으나 박엽이

재주와 슬기가 있었으므로 광해가 신임하여 무릇 10년 동안이나 벼슬을

갈지 않았다 박엽은 재물을 많이써서 첩자를 잘 이용 하였다

한번은 지방를 순시 하다가 구성(龜城)에 도착하였는데 마침 청병이 와

서 성을 포위 하였다 그날 밤중에 호인(胡人) 하나가 성을넘어 박엽의

침소(寢所)에 들어와서 박엽의 귀에다 무었을 말하고 갔다

다음날 아침에 박엽이 사람을 시켜 술을 가지고 가서 청병을 먹이도록

하였다 또 쇠고기로 꼬치적을 만들어서 청국 군졸에게 나누어 주게 하

였는데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군졸의 수효와 똑 같았다

되(胡)장수는 크게놀라 괴이하게 여겨 박엽을 신(神)이라 하며 곧 강화

(講話)한 다음 포위를 풀고 가버렸다


계해(癸亥)년에 박엽의 비장(裨將) 한 사람이 틈을 따서 귀띔하기를

“지금 조정은 패할 겄입니다”공은 지금 임금이 총애하는 신하이니

반드시 화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니 청국과 내밀히 결탁 하였다가 만약에

조정에 일이 벌어지거든 이 지역을 청국에 바치고 일부는 떼어서 공이

차지 한다면 자립하기에 넉넉할 것입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화를 면하기

어럽습니다 , 하였다

이에 박엽은 “나는 문관이다 어찌 나라를 배반하는 신하가 되겠는가”

하고 듯지 않았다 그사람은 곧 박엽을 버리고 도망첬다

얼마 안 되어서 인조(仁祖)가 반정(反正)하여 정권을 잡자 곧 사신을

보내여 박엽을 임소에서 베어 죽였다 ,

박엽은 경오생(庚午生)이며 선조30년 丁酉別試 에서 文科 及第 하고

황해도 함경남도 평산 의주 평안 황주 장흥 지방부윤 목사 병사로 재직

하며 치적이 돋보였다




                        반남학교장    원우(동일)(조사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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