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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박선우
ㆍ작성일 2016-03-26 (토)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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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주시라고 새 지폐로 세뱃돈 준비했는데

2007 2. 17 조선일보

이인묵기자 redsox@chosun.com
입력 : 2007.02.16 22:01 / 수정 : 2007.02.16 22:01



“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아버님 혼자서 캄캄한 도로를 헤매실 때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14일 오후 서울 강동구 성내동 강동성심병원 장례식장. 전날 도로에서 버스에 치여 숨진 홍모(69)씨의 아들(35·회사원)은 “내 탓”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홍씨는 13일 밤 서울 암사유적지 부근 올림픽대로에서 변을 당했다. 쓰러진 홍씨 옆에는 그가 끌던 리어카가 산산이 부서져 나뒹굴었고, 리어카에 실려있던 폐지 더미는 도로 위에 흩어져 비에 젖었다.

닭고기 장사를 하던 홍씨는 2001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기억력이 약해졌다. 가끔 길을 잃기도 했다. 그래서 폐지 줍는 일을 시작했다. 자녀들이 말려도 “바람도 쐬고 고물상 주인들, 시장 사람들과도 이야기해서 좋다”며 하루 5000원 벌이의 일을 계속했다.

홍씨는 자녀들을 출가시킨 뒤 아내와 함께 서울 천호동의 월세 15만원짜리 지하 단칸방에서 살았다. 아들과 딸이 “함께 살자”고 해도 “30년 살아온 천호동을 떠나지 않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사실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그러신 것”이라고 아들은 말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도 “(내가 아파서) 미안하다”며 자녀 걱정부터 했던 아버지였다. 결국 자녀들은 작년 말 돈을 모으고 은행 빚을 얻어 천호동에 전세 3000만원짜리 방 2칸 집을 마련해 드렸다. 이사온 후 홍씨는 한두 차례 길을 잃어 집을 찾지 못했다. 그날도 밤길을 잘못 찾았는지, 그만 자동차 전용도로에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장례를 치르는 이틀 내내 아들의 품에는 신권 지폐 다발이 들어 있었다. 만원권 40장, 1000원권 100장. “올해는 좀 넓은 집에서 손자들에게 세뱃돈 넉넉히 주시라고 새 돈을 준비했는데….” 아들은 목이 잠겨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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