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의 견훤이 내침하여 경애왕이 살해되자 백성들이 김부를 추대하여 927년(신라 정해년) 11월에 신라 56대왕(김씨 38대왕)의 마지막 임금으로 즉위하니 9년을 재위 하다
978년(고려 경종 무인) 4월 4일에 향수가 97세로 승하하니 응천무운일 경 이요 응시솔덕일 순 이라 경순왕으로 시호를 선법하다
경수왕의 훙거비보를 듣고 신라유민들이 장사진을 이루어 경주에 능지를 잡고 경주로 운구행여 하니 이때에 송도 유거민 전원이 등에 양식과 침구일체를 지고 다 따라 나섯거늘 텅빈 송도가 되는 상황에 접한 고려 조정에서는 긴급 군신회의를 열어 논제를 왕구불거벡리외라 결론하고 중지령을 내리니 경순왕의 운구가 부진되어 중도한 지점이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고랑포(장단부 남 8리 동향 고랑포)이니 이곳 성거산에다 팔백연화격이요 금계포란형의 계좌정향으로 예장하다 수만의 유민이 엎드려 통고하니 경천동지 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후 미급수호로 실전되었다가 조선 영조때에 인근 주민들이 경순왕릉을 발견하여 통보하여 후손 김응호(동지중추부사)가 수치소를 올리여, 왕의 윤허를 받아 1747년(영조 정묘년) 정월 25일에 심봉징(장단 도호부사)이 전왕조릉예의를 갖추어 봉축 수호하다
이후 1910년(순종 경술년)에 한일 합방이되어 왜 정치하에서는 향사제도 가 폐지되자 왕릉수호가 미급되든중 8.15 해방과 6.25사변에 실릉으로 간주 되었으나 다행히 38휴전선 남편에 위치하게 되어 왕릉을 관활 하는 육군 제 25 사단에 소속된 여길도(육군대위)가 이지역 중대장 당시 1973년 정월에 발견하여 경주김씨 종친회로 통보하여 종친회 주관 으로 수호 관리 하다
1976년에 국가 예산으로 개봉축하고 국가사적 244호로 지정하다 향사는 봄 춘향대제는 범 신라김씨대종원주관으로 5월첫일요일에 봉행하고 가릉 추향대제는 10월 3일 개천절에 경주김씨종친회 주관으로 봉행한대 (자료조사정리; 경기도 문화유산해설사 박원우(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