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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2016-03-25 (금)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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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안은 대대로 청빈하였으니

우리집안은 대대로 청빈하였으니

    나의 아버지 박지원 <박종채> 중에서

    일찍이 우리형제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너희들이 장차 벼슬하여 녹봉을 받는다 할지라도 넉넉하게 살 생각은 하지 말아라.
우리 집안은 대대로 청빈하였으니, 청빈이 곧 본분이니라”
그리고는 집안에 전해오는 옛 일들을 다음과 같이 낱낱이 들어 말씀해주셨다.

    우리 선조 반남(潘南; 朴尙衷) 선생께서는 원나라를 배척하고 명나라를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시다가 훙악한 무리들에게 핍박을 받아 청교역(靑郊驛; 경기도 개성 덕암동 보정문 밖 5리쯤 되는곳에 있던 역 이름)에서 돌아가셨다. 고향으로 운구하지 못하고 그곳에 장사지냈으니. 바로 개성 동문 밖이였다. 선생의 집안이 가난하여 어쩔 도리가 없었음을 알수 있다.

    반남선생의 아드님이신 평도공(平度公: 朴은)께서는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어려서 고아가 되어 가난에서 병까지 겹쳤지만 뜻과 의기만은 의연하였다”
공은 알아주는 임금을 만나 오랫동안 재상의 자리에 계셨건만 탈속반(脫粟飯; 첫 번 찌은 쌀로 지은밥 아주거칠다.) 먹는 신세를 면하지 못할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다.
공의 집은 낙산(駱山; 지금의 동숭동 뒷산으로 한양 도성의 東山에 해당되며 西쪽의 인왕산과 짝을 이루었다) 아래 있었다.

    하루는 태종께서 갑작스레 공의 집에 납시었다. 태종은 공이 얼른 나와 영접하지 않은 데 대해 노여워 하셨다.
공은 이렇게 아뢰었다.
“신이 마침 탈속밥을 먹던 중이어서 그대로 나가 전하를 뵈면 실례가 될 듯하여 양치질을 하고 나오느라 감히 늦었사옵닌다”.(탈속밥은 왕겨만 벗기고 도정하지 않은 쌀이므로 먹을때 치아에 많은 찌꺼기가 끼인다)
임금께서 그 밥을 가져오라고 하여 확인하고는 더욱 노하여 말씀하였다.
“이는 저 옛날 공손홍이 삼베 이불을 덮었던 일(한나라 무제때 공손홍이 삼공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삼베로 만든 이불을 덮었다.)에 해당 되지 않는가?” 어찌 조정 대신으로서 탈속반을 먹는 자가 있단 말인가?.“
좌우에 있던 신하들이 아뢰었다.
“대신을 의지해 살아가는 일가친척과 친구들이 워낙 많아 녹봉으로 받는 쌀이 그 날 저녁이면 다 흩어져버리옵니다”
임금이 무안해 하시며 말씀 하셨다.
“내 잘못이로다! 내가 임금이 되어서도 소시적 친구( 平度公 박은 은 태종이 임금이 되기 전에 의기가 상통하여 1.2차 왕자의 난때 태종을 도와 공을 세웠으며,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으로 반남군에 봉해졌다) 에게 탈속반을 먹게 하다니. 나는 도저히 경의 훌륭함을 따라가지 못하겠구려”
임금은 즉석에서 동대문 밖 고암(鼓巖 ; 지금의 종암동이다. 안암동에 있는 북바위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고암’ ‘종암’ 등으로 불렸다) 의 전지(田地) 10결을 하사 하셨다.

    야천(冶川; 박소(朴紹)) 선생은 소인의 무리에게 미움을 받아 세상을 피해 우거하시다가 영남에서 돌아가셨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하여 반장(返葬 ; 객지에서 죽은사람을 그가 원래 살았던 곳이나 고향으로 군구하여 장사지내는 일) 하지 못했다.

당시 장남인 찬성공(贊成公 ;박응천(朴應川), 현재는 감정공이라고 한다) 이 열아홉살
차남인 반성공(潘城公; 박응순(朴應順) 현재는 반성부원군 이라고 한다)이 아홉 살
삼남인 문정공(文貞公: 박응남(朴應男) 현재는 남일공 이라고 한다. 문정은 남일공의 시호 )이 여덟 살
사남인 도헌공(都憲公: 박응복(朴應福) 현재는 졸헌공 이라고 한다. 도헌은 대사헌의 별칭) 이 다섯 살
오남인 도정공(都正公: 박응인(朴應寅)) 아 세 살이셨는데, 그 울부짖는 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하였다
    홍부인께서는 이들의 손을 잡고 온갖 고초를 겪으며 서울로 돌아오셨다.

내가 안의현감으로 지낼때 여러 차례 선생의 묘에 참배하였다. 겹겹이 둘러싸인 쓸쓸한 산에 홀로 서서 당시 일을 생각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선생의 환난과 가난이 이토록 심했었나’ 싶어 통곡 나오려 했다.

    마침내 다섯 아드님이 모두 벼슬길에 올라 이름난 공경(公卿; 公은 3공을, 卿은 9경을 가르킨다. 3공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고, 9경은 좌 우 참찬 6조의 판서 한성부의 판윤에 대한 총칭) 과 어진대부가 되었다.

    찬성공(감정공 박응천)은 여러 차례 고을살이를 하셧는데 종종 식구들을 거느리고 가지못하셨다.
    그 때 문정공(文貞公; 남일공 박응남)은 경(卿)의 녹을 받고 있었는데 그절반은 형수에게 드렸다. 매양 조정에서 물러나오면 조복을 벗지도 않은채 형수를 찾아가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지를 여쭈어보셨다. 그리고 몸소 쌀독이며 장독을 들추어보아 빈 것이 있으면 마련해다가 채워드렸다. 그러나 문정공(文貞公)은 가난 속에서도 맑은 지조를 지켜 온 세상 사람들에게 경외를 받았으니,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참으로 태연자약하셨다 할 것이다.
    반성공 (반성부원군(潘城府院君)은 임금의 장인이라는 귀한 신분이었으나, 집안은 썰렁하여 재물이 없었다. 국혼을 치를 적에는 안팎에서 재물로 도와주는 것이 옛날부터 내려오던 관례였으나, 공은 홀로 한 물건도 받지 않고 검소하게 혼례를 치렀다.
    나의 선조 도헌공(都憲公; 졸헌공 朴應福)은 당시 바야흐로 벼슬에 진출해 명망이 있으셨으나, 자신이 임금의 외척과 가까운 처지라 허여 더욱 겸손하고 검소하게 생활하셨다. 그리하여 두문불출하며 오직 책과 화초와 대나무로 소일하셨다. 공은 평생 이렇게 지냈으며 끝내 높은 벼슬을 하지 않으셨다. 우리 가문의 청렴하고 욕심 없는 태도는 이처럼 철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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