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ㆍ작성자 박종서
ㆍ작성일 2016-03-25 (금) 14:23
ㆍ홈페이지 http://www.bannampark.co.kr
ㆍ추천: 0  ㆍ조회: 425       
ㆍIP: 175.xxx.221
박 부마와 명마

금양위(錦陽尉)의 이야기(駙馬 朴瀰)

        박 부마와 명마

부마 박이(朴미)는 말을 보는 눈이 유달리 달랐다. 어떤 말이든지 한번 척 보고, 좋고 나쁨을 영락없이 알아맞혔다.
이를테면, 사람의 경우 상을 잘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박 부마는 어느 날, 길에서 거름통을 진 더러운 말을 보았다. 목이 축 늘어지고 빼빼 말라서 등뼈가 비어져 올라 올라왔으며, 게다가 누런색 몸털이 추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박 부마는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이 말을 나에게 팔지 않겠소?"
하고 마부(馬夫)한테 물었다. 그리고 어리둥절해 하는 마부를 집에까지 데려왔다.
원래는 돈을 적당히 치러 주려 하였으나, 다시 생각하고 당장 쓸 말을 대신 주겠다.
박 부마는 집에서 기르는 말 중에서 팔팔한 말을 끌어 내어 주었다.
"이건 너무 황송합니다."
분에 넘친다고 여간해서 받지 않으려는 마부를, 타이르다시피 하여 간신히 돌려 보냈다. 그런 후 따로 외양간을 마련하고,
"정성껏 보살펴 먹이도록 하여라!"
하고 명하였다.

며칠이 지나자 말은 살이 부쩍부쩍 찌기 시작하더니, 다른 말의 곱 가까이 커졌다. 그리고 온 몸에 윤기가 번지르르 흐르고, 생기가 돌았다. 눈에서 광채가 번득이며 사나운 이빨로 투하면 사람을 물어뜯었다.

또 얼마 후에는 제 힘에 겨워 날뛰는 바람에 외양간 기둥과 널판이 말끔 부서져 버렸다. 대여섯 명의 마부로는 다루기 힘들게 되자, 나중에는 굵은 고삐를 바짝 죄어 매고, 외양간은 마치 말의 감옥처럼 튼튼하게 고쳐 지었다.
이래서 다시는 날뛰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무서운 입김을 내뿜는 바람에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고, 판자 틈으로 여물을 던져 넣을 지경이었다.

그런 어느 날, 늙은 중이 한 사람 오더니, 말을 보고 박 부마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참으로 세상에 보기 드문 명마올시다. 그러나 저렇게 길러서는 오히려 말의 정기를 죽여, 쓸모가 없게 되겠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내가 한 번 길을 들여 보겠으니 맡겨 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디 좀 수고해 주오."
박 부마는 싹싹하게 승낙하였다.
말은 이내 끌려 나왔다. 여러 명의 하인들이 창살을 열고 밧줄을 풀고 하며 오랫동안 실랑이 끝에 간신히 끌어 낸 것이다.

이 동안에도 말은 발버둥 몸부림을 마구 치며, 집채가 흔들리도록 무섭게 울부짖었다. 그러다가 사나운 기세로 바깥뜰, 중이 있는 곳으로 나는 듯이 펄쩍 뛰어왔다.
"이크, 큰일이다!"
하인들은 기겁을 하였다.
박 부마와 중이 말굽에 당장 짓밟힐 듯이 보였던 것이다.
순간, 중의 몸이 땅을 차고 하늘로 치솟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중은 벌써 말 등에 척 올라타기가 바쁘게, 목에 걸친 고삐를 한 손으로 당겨 잡았다.
사나운 부르짖음과 함께, 말은 앞발을 번쩍 치켜 세우더니, 다시 내려놓기가 무섭게 몸을 함부로 흔들었다. 금방 떨어질 것 같은 중의 몸은, 그러나 말 등에 찰싹 달라붙은 듯, 여간해서 엉덩이도 쳐들리지 않았다.
중은 그러는 동안에도 오히려 말의 엉덩이를 지팡이로 연거푸 때리고 있었다. 중을 떨어뜨리지 못한 말은 성이 날 대로 났다. 또 한번 무섭게 부르짖더니, 이번에는 대문 옆 높다란 담을 펄쩍 뛰어 넘었다.
이 때에야 제 정신을 차린 박 부마와 하인들이 일제히 대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말도 중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편 말은 중을 태운 채,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좁은 골목을 갑자기 이리저리 달릴 때는 중의 몸이 돌덩이처럼 날아가 아무 곳에나 부딪혀 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중운 끄떡도 안 했다. 마치 뼈와 살이 말과 한 덩어리로 된 듯, 꿈쩍도 안 하는 것이었다.
좁은 길에서 큰 길, 다시 널따란 벌판에 나와서, 말은 더욱 사나워졌다. 뛰며 달리며 흔들며 울며, 정말이지 미친 말과 다를 바 없었다.
드디어 말의 몸이 온통 땀에 젖고, 거친 입김과 콧김에 섞여, 침 거품이 비처럼 날렸다.
그래도 중은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여전히 태연하였다.
이렇게 얼마를 날뛰었을까? 마침내 말은, 한 곳에 우뚝 서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숨만 허덕거렸다.
그제야 중은 고삐를 고쳐 잡았다. 고삐에 따라 말은 얌전히 돌아섰다. 때마침 쏟아지듯이 내리쬐는 저녁 햇빛을 흠씬 받고, 말은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토록 사납던 말이 양순하면서도 씩씩해져 돌아왔으니 박 부마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우선 말을 외양간에 매어 두게 하고, 중에게 정중한 치사부터 하였다. 그러나 중은 당연한 일을 하였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힘으로는 이 이상 다스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만하면 천하의 명마로서 훌륭한 구실을 할 것입니다. 다만 앞으로 잠시 액운을 겪을지 모르나, 그것도 결코 큰 해는 미치지 않을 터이니 안심하십시오."
말을 마친 중은, 대접도 안 받고, 자기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휑하게 어디론지 가 버렸다.

이후 박 부마는 그 말을 대단히 아끼고 사랑하였다. 훌륭한 안장과 고삐를 장만하여 달고, 먼 곳 가까운 데를 가리지 않고 타고 다녔다. 심지어 대궐에 갈 때도 궁문 밖까지 타고 갈 만큼, 하루라도 안 타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였다.
이리하여 박 부마의 말은 서울 장안의 사람치고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다. 또 그런 만큼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당시 폭군으로 이름난 광해군 역시 박 부마의 말을 무던히 갖고 싶어 하였다. 그러다가 결국은 거의 말을 빼앗다시피 바치게 하고 말았다.
성미가 괄괄한 만큼 광해군도 이 말을 마음에 썩 들어 하였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을 타고 달렸는데, 볼 일이 없으면 대궐 안 큰 마당이라도 한 바퀴 타고 돌아야 마음이 풀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광해군은 말에서 쿵 하고 떨어졌다. 원래는 자기의 잘못이었으나, 성미가 그런 탓에 노발대발하며 말을 마구 때렸다.
그러자 양순하던 말이 별안간, 앞발을 쳐들면서 사납게 울었다. 다음 순간, 광해군이 미처 소리를 지를 사이도 없이, 길도 넘는 대궐 뒷담을 훌쩍 뛰어 넘어 갔다.
"저 놈 잡아라!"
그제야 광해군이 악을 버럭 쓰고, 호위 군졸들은 벌써 담을 넘어 쫓아갔다. 하지만 말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서울 성안은 물론이거니와 가까운 시골 구석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말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깊은 산 속에 도망가서, 호랑이 밥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광해군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 말은 꼭 잡아라. 만약 숨긴 자가 발견되면 엄벌에 처하여라!"
하면서 길길이 뛰었다.

이 무렵, 박 부마는 전라도 땅 어느 시골에서 외로이 살고 있었다. 광해군의 미움을 사 가지고 쫓겨 내려 왔던 것이다.
어느 날 초저녁이었다.
박 부마가 사랑방에 혼자 앉아 있는데, 별안간 귀에 익은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박 부마는 한때 귀를 의심하다가 곧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게 웬일이냐!"
하고 부리나케 뒤꼍 울타리 밖으로 쫓아나갔다. 그 쪽 대나무 숲에서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흐으흥, 프르륵!"
말이 한 번 울었다. 그리고 곧 이어, 임금의 안장이 놓인 말이 댓숲에서 뛰어 나왔다.
"네가 왔구나!"
박 부마는 와락 달려들어 고삐를 잡고, 온 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말도 반가움을 못 이기는 듯, 그런 박 부마에게 낯을 비벼대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필시 대궐을 버리고 도망 온 게로구나. 옛 주인을 찾아 천릿길을 멀다 않고 이렇게 찾아오다니! 그렇지만 이미 광해군에게 미움을 사고 와 있는 처지인데, 너마저 도망 와서야 내가 무사할 수 있겠느냐?"
말은 그 뜻을 알아들었을까. 고개를 숙이고 눈만 꿈적거렸다.
"그렇더라도 너를 돌려보낼 수는 없구나. 잠시 동안 숨겨 줄 터이니, 그 대신 아예 울지나 말아 다오."
박 부마는 대나무 숲 깊숙한 곳에 외양간을 지어 놓고 말을 감춰 두었다. 말은 주인의 부탁을 완전히 알아듣기나 한 듯이, 한 동안 기척도 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후, 말이 갑자기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숲이 떠나갈 만큼 우렁찬 울음 소리였다.
박 부마는 깜짝 놀랐다.
"이크, 큰일 났구나!"
하지만 박 부마는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었다. 조금 후 인조반정(仁祖反正)의 소식이 날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박 부마가 문득 따져 보니까, 말이 울던 그 날이 바로 인조반정(仁祖反正)의 날이었다.

박 부마는 그 말을 타고 오랜만에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후 또 몇 해가 무사히 지나갔다.
때마침 조정에서 중국에 서신을 보낼 일이 생겼다. 그래서 사절단 일행이 떠난 지 오래 되어, 아마도 며칠 사이에 압록강을 건너지 않았나 싶었을 때다. 갑자기 그 외교 서신에 고칠 대목이 있었던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물론 너무도 시일이 없었다.
여러 가지로 의논을 한 끝에, 인조 임금은 문득 박 부마의 말이 생각났다.
그 말이라면 혹시 사절단을 쫓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인조 임금은 곧 박 부마를 불렀다.
"그대의 말을 빌릴 수 없는가?"
박 부마가 이것을 거절할 리는 없다.
]"나라를 위하여는 목숨도 바치겠거늘 어찌 말을 아끼겠습니까?"
그러나, 날래고 튼튼한 무사를 시켜 새 국서(國書)를 가지고 가게 했을 때, 박 부마는 신신당부하였다.
"그쪽에 닿거든 말이 쓰러지더라도 절대 풀도 물도 주지 말고, 며칠 동안 놓아 두시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죽을지 모르오."
말은 참으로 바람처럼 달렸다. 떠난 지 며칠, 사절단 일행이 압록강을 건너기 직전에 도착했다

그러나, 사신이 내리자 말은 그 자리에 푹하고 쓰러졌다. 사람들이 급히 달려오고, 간호하듯이 살피고 우선 물을 먹이고 연한 풀도 먹였다. 박 부마가 열심히 당부한 일을 깜박 잊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말은 한 번 힘껏 울더니 그만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1973. 1. 15 발행
                                한국자유교육협회간
                                권희철 엮음
                                        우리의 민화에서
   
  0
3500
    N     분류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17 신년인사 관리자 2016-03-25 413
116 새해인사 (세보편찬위원회) 관리자 2016-03-25 418
115 송년인사 관리자 2016-03-25 414
114 대 와 세 관리자 2016-03-25 431
113    세와 대의 구분 外孫 2016-03-25 434
112       대 와 세 관리자 2016-03-25 1023
111 박 부마와 명마 박종서 2016-03-25 425
110 승주님의 세보편찬에 대한 몇가지 의견 답변 및 두서님의 질의.. 박용우 2016-03-25 467
109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 박종서 2016-03-25 567
108 한문이 너무 많아요 박찬우 2016-03-25 559
107 궁금한게있어요.. 박두서 2016-03-25 414
106 거창 신씨 할머니의 전설 박찬주 2016-03-25 742
105 반남학교제2기종사반 수료고유례및 특별강좌 실시결과 박춘서 2016-03-25 430
104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1부 -‘타이거 박’ 박운서- 관리자 2016-03-25 617
103 묵상집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 펴낸 박완서씨 관리자 2016-03-25 493
102 삼가 한 말씀 올립니다. passerby 2016-03-25 426
1,,,361362363364365366367368369370,,,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