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ㆍ작성자 박원우
ㆍ작성일 2016-03-25 (금)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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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와 대

代와 世에 대하여

                                                                       

우리들이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은 의외로 많다

세(世)와 대(代)를 다르게 생각하는것 또한 그 중의 하나라 할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기불대수(己不代數)라 하여 자신(본인)은 대수(代數)에

넣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즉 대는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반면, 세는 자신까지 포함하여 계산한

다는 주장이다 어떤문중(門中)에서는 종보(宗報)에 이르한 내용을 게재

하여 더욱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대(代)와 세(世)는 똑같은 뜻으로 원래는 세(世)자를 더 많이 사용하

였는데 당나라 때에 태종(太宗)의 이름이 세민(世民)이므로 세(世)자

를 휘(諱)하여 대(代)자로 통용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기불대수란 말은 고전에 보이지 않으며 단지 우리나라에 족보가 크게 성

행하면서 족보의 세수(世數) 표시를 보고 지어낸 말로 추측된다

우리나라 족보는 1면(面)을 6단(段)으로 나누고 맨 아랫단에는 자손의

이름만을 기록하였다 가 다음 장의 상단(上段)에 다시 그의 이름을 쓰

고 생졸(生卒)과 이력(履歷)을 자세히 기록하여 면마다 5대(代)씩 수록

함으로써 대수를 계산하기 편리하게 하였으며 시조(始祖)를 1세(世)로

하였다 그리하여 만일 고조(高祖)로부터 자신까지 세어 오면 5세가 되

는데 실제로는 고조가 4대조가 된다

즉 시조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 27세라면 시조는 당연히 26대조가 되고

자신은 26대손(孫)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세와 대가 달라서가 아니요 뒤에 조(祖)나 손(孫)을 붙

였기 때문에 한 대가 줄었음을 알아야 한다

족보의 세수(世數)는 객관성을 강조하여 시조를 1세로 한 반면 몇대조

또는 몇세조라고 칭하거나 몇 대손 또는 몇 세손이라고 칭하는 것은

자신의 할아버지나 후손인 본인을 기준하여 주관적으로 지칭하기 때문에

한 대가 줄어드는 것이다

조(祖)는 자신의 선조란 뜻이요 손(孫)은 선조의 후손이란 뜻이므로 자

신이나 선조는 자연 대수에서 제외되게 마련이다

옛날 어른들은 자신의 성(姓) 아래에 씨자(氏字)를 달지 않는다 그르나

유독 족보에는 전주이씨 족보(全州李氏族譜)니 김해김씨족보(金海金氏

族譜)니 하여 씨자를 붙이는데 이 역시 객관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자신의 선조를 남에게 말할 경우에는 몇 대의 비선조(鄙先祖)라고

칭하는데 이는 자신을 위주로 한 주관적 호칭이다 그러므로 25대조는

바로 25세조이고 25대손은 바로 25세손일뿐, 하등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만일 4대조인 고조를 5세조라고 칭한다면 이는 자신까지도 선조로 친

것이 되며 4대손인 고손(高孫)이 자신을 5세손이라고 칭한다면 이는

고조까지도 자손으로 친 것이 된다

세상에 어찌 이르한 망발이 있을 수 있겠는가 ??

필자는 일찍이 이러한 오류를 지적하여 간행물에 발표한 적이 있으며

최근에는 전통문화 연구회의 홈페이지에 이것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랫더니 항의성 질문이 쏟아저 나왔다 그만큼 관심이 있는 문제이며

동시에 그만큼 잘못 알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한번 잘못 인식된 지식은 쉽게 고처지지 않는가보다 상당히 유식한 분

인데도 자신의 잘못된 상식이 옳다고 고집한다 그분들의 논리대로라면

조(祖),자(子),손(孫),이 2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조,자,손은 엄연히

3대이지 2대가 아니다 3대와 3세가 어떻게 다르단 말인가?

백대(百代)와 백세(百世), 만대(萬代)와 만세(萬世),모두 동일한 의미

이지 백세는 99대이고 만세는 9천9백99대가 아니다

단지 예전에는 몇 세조나 몇 세손이라는 단어보다 몇 대조니 몇 세손이니

하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제 족보의 세(世) 아래에 손자

(孫字)를 붙임으로 말미암아 26세는 바로 26세손으로 인식하여 이르한

혼란이 야기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제 대손과 세손이 똑같은 실례를 제시하기 위하여 우계(牛溪) 성혼

(成渾)의 저서인 우계속집(牛溪續集) 6권 잡기(雜記)의 내용을 소개한다

우계의 선조인 문정공(文靖公) 성여완(成汝完)이 넷째아들인 낭장(郎將)

석번(石璠)에게 준 문기(文記)가 있는데 말미에 “父 輔國崇祿大夫 檢校

門下侍中 成“(부 보국숭록대부 검교문하시중 성)이라고 쓰고 수결(手決)

을 하였으며 “모 경안택주 나씨”(母 慶安宅主 羅氏)라고 쓰고 붉은도장

을 찍었는데, 우계는 이러한 사실을 기록하고, “수백년 전 선조의 손때가

묻은 문기를 얻어 보니 어찌 다행이 아니겠는가, 만력(萬曆) 丙子年(宣朝

9,1576) 10월 27일에 7세손 혼(渾)은 삼가 쓰다“라고 부기(附記)하였다

여기의 7세손은 문정공 성여완의 7세손이라는 뜻이다

우계의 가계(가계)를 살펴보면

여완(汝完)-석인(石인)-억(抑)-득식(得識)-충달(忠達)-세순(世純)-수침

(守琛)-혼(渾)으로 이어져 총8세이지만 우계는 이처럼 7세손이라고 표현

하였다 설마하니 대학자인 성우계가 대수를 잘못 표시할 리가 있겠는가?

다시 한번 강조 하거니와

시조로부터 26세라면 “시조부터26세”라고 말해야 할 것이요

“26세손”이라고 칭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끝,




                            글쓴이 성 백 효 (국역연수원교수)

                            옮긴이 박 원 우 (반남학교 장)




*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옮긴이가 본 논고의 경과를 적는다

본 논고는 글쓴이가 2000년 여름 민족문화추진회보 제58호에 발표

하였는데 이후 엄청난 논쟁이 있었다 이때 옮긴이는 성균관에서

교육중이었는데 찬,반, 양론은 있엇으나 어느것이 올타는 결론은

듯지 못하였다 이후 몇차래 문화지에 발표된 다른글을 보았으나

결론없이 주장만이 있었다 우리종중 홈페이지에 세와대에 대한

글들이 올라오는것을 보고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옮겨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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