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년(1767년) 할아버지(박사유朴師愈)가 상을 당하셨다 이전부터 할아버지는 병환이 위중하셨는데 이 해 삼월 초이튼날에는 하마터면 돌아가실뻔 했다. 당시 아버지는 화로에 약을 달이시고 계셨다. 온집안이 난리가 났지만 아버지는 돌아앉아 숫돌에 칼을 갈았다. 큰아버지께서, "칼은 갈아 무엇하려느냐 ?“ 하고 꾸짓자. 아버지는 “생강을 썰려고요” 하고 대답하셨다. 아버지는 약을 짤 때 칼로 왼손 중지를 베어 피를 뚝뚝 떨어뜨려 약에 타 올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조금있다 소생하셨다.
이달 엿샛날은 형님의 돌이었는데, 할아버지는 돌상을 차리라고 하시고는 평상시와 같이 즐거워하셨다. 할아버지는 유월 스무날 마침내 돌아가셨다.
손가락을 벤 일이 있은 후 110일이나 지나서다. 그런데 당시 이일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고 아홉 살 난 나의 큰 누이만이 곁에서 목도했다. 그러나 어려서 명문을 몰라 아버지께서 왜 그러시는지 알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누님은 그후 어는날 밤 수심에 찬 얼굴로 걱정하며 말했다. “지난 3월 경황이 없을때 아버지께서 칼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이셨는데, 이제 나으셨는지 모르겠네” 이말을 듣고 큰아버지께서 놀라 어떻게 손가락을 베었더냐고 물었다. “손가락을 벤후 핏방울을 약 주발에 떨어뜨리셨어요. 참 이상하지요 ?”
큰아버지는 이에 급히 아버지를 불러 손을 잡아 손가락을 펴보니 중지 두마디에 과연 칼자국이 있었다. 큰아버지는 한참 눈물을 흘리시더니 다시는 집안 사람에게 이 일을 말씀하시지 않았다. 당시 아버지는 남들이 그일을 알기를 바라지 않아 다친곳을 감싸매지 않고 손을 움켜쥔 채 며칠 동안을 다니셨는데 그 사이 상처는 저절로 아물었다 <과정록> 중에서 과정록은 자식이 아버지의 언행과 가르침을 기록한 글이란 뜻이다. 박종채는 4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이책의 초고를 집필했다.
<과정록> 이책은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가 쓴 박지원의 전기이다. 박종채는 아버지의 위대한 문학가로서의 면모만 아니라 그 인간적 면모와 함께 목민관 시절의 흥미로운 일화도 자세히 들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