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부사(휘 운수)공 철비
거창의 위토를 확장하신 거창부사공의 쇠로 만든 철비(순조 34년 서기1834년 12월 세움) '府使朴候雲壽淸德善政碑,가 거창시내에서 2.5km 떨어진 거창박물관에 모셔져 있음으로 합천 시제에 참석 하는 중에 참배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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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수
• 한자 朴雲壽
• 분야 종교·철학/유학
• 유형 인물
• 시대 조선
• 성격 문신|학자
• 출신지 서울
• 성별 남
• 생년 1797년(정조 21)
• 몰년 1841년(헌종 7)
• 본관 반남(潘南)
• 저서(작품) 덕은유고
• 대표관직(경력) 가평군수|거창부사|순흥부사
• 집필자 권양섭
[정의]
1797(정조 21)∼1841(헌종 7).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내용]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경룡(景龍), 호는 덕은(德隱) 또는 죽계(竹溪). 서울 출신. 서흥부사(瑞興府使) 종여(宗輿)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로 규복(奎復)의 딸이다. 할아버지 윤원(胤源)에게 글을 배웠다.
1820년에 문과(文科)에 합격, 1822년에 사용(司勇)이 되었으며, 이듬해 태릉참봉(泰陵參奉)을 거쳐 사과(司果)·빙고별제(氷庫別提)를 지냈다. 이어서 사헌부감찰·돈녕부판관(敦寧府判官)·예산현감·문화현령(文化縣令) 등을 지냈다.
1829년 가평군수를 거쳐 1833년 거창부사·순흥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수령으로 있는 동안 실정(失政)을 많이 고쳐 주민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특히 순흥부사로 있을 때에 2만6000여석의 허위로 보고된 환곡(還穀)을 정리하여 부민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글씨에 뛰어나 금석문자도 남아 있다. 저서로는 『덕은유고』 3권이 있다.
[참고문헌]
• 『덕은유고(德隱遺稿)』
• 『순조실록(純祖實錄』
• 위의 내용은 한국학 중앙연구원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에 있음
<박운수>
[부 - 부]
성명 : 박종여(朴宗輿) 관직 : 부사(府使)
[조부 - 조부1:부의 부]
성명 : 박윤원(朴胤源) 관직 : 감역(監役) 기타 : 불사(不仕)
[증조부 - 증조부1:조부1의 부]
성명 : 박사석(朴師錫) 기타 : 견종희파(見宗喜派)
[외조부 - 외조부]
성명 : 이규복(李奎福)
[처부 - 처부]
성명 : 유문주(兪文柱) 관직 : 감역(監役)
[출전]
『진신보(搢紳譜)』1‧2‧3‧4(규장각한국학연구원[古929.3-Eu55])
<박정양>:
[부]
성명 : 박제근(朴齊近)
[조부]
성명 : 박운수(朴雲壽)
[증조부]
성명 : 박종여(朴宗輿)
[외조부]
성명 : 이응재(李應在)
[출전]
『국조방목(國朝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박정양>: 주미전권공사(駐美全權公使), 내각총리대신, 조선 말기의 불편부당한 온건중립파로서 진보적인 개화사상을 가지고 이상재(李商在) 등 개화파 인사들을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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