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ㆍ작성자 송촌옹
ㆍ작성일 2020-08-21 (금)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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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의 정신으로 어사 활동을 한 환재(瓛齋) 박공 규수(朴公 珪壽) 2.

하물며 벗의 아버지라 한들

1854(철종 5) 경상좌도 암행어사 박규수.

어사 박규수가 경상도 밀양 땅에서 겪은 이야기. 박규수는 밀양군수 서유여의 비리를 전해 듣고 그가 절친한 벗의 아버지라는 사실에 고민하지만 끝내 公私를 구분해 그의 죄를 낱낱이 적발해 낸다.

 

나는 이곳 운부암에서 문서를 처리한 후에 비로소 다른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 짐작했던 것보다 일이 고되고 어려움이 많지만 그때마다 할아버지의 책에서 읽은 구절들을 떠올리며 힘을 얻고 있다···.”

철종 5(1854) 225일 경상도 영천 은해사의 말사 운부암에서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가 동생 온재(溫齋) 박선수(朴瑄壽)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조선 말기 대표적인 개화사상가였던 환재 박규수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손자로 그 해 14일 경상좌도 암행어사로 임명돼 남루한 행색을 하고 영남지방을 암행하는 중이었습다.

환재공은 효명세자(孝明世子)에게 주역을 강의하고 그와 국정을 논의하는 등, 스무 살 무렵에 이미 문명을 떨쳤지만 효명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어머니, 아버지의 연이은 사별로 크게 상심하여 20년간 칩거했습니다. 그러다 할아버지의 <연암집>을 읽고 실학의 학풍에 눈을 뜬, 마흔두 살에 비로소 과거를 치르고 벼슬길에 나아갔습다.

병조정랑, 부안현감 등을 거치면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을 실현해가던 공이 고된 암행 길에 오른 것은 그의 나이 오십이 가까울 때였습니다. 때가 때이니 만큼 체력 좋은 젊은 신진기예들보다 애민정신이 투철한, 진정한 목민관이 필요했던 시기였습다.

당시 조선은 몇 년째 계속되는 지독한 가뭄과 흉년으로 배를 움켜쥐고 유랑하는 백성이 팔도 곳곳에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그즈음 은해사에 사람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누렇게 뜬 얼굴로 집도 밭도 다 버리고 다만 먹기 위해 산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환재공은 하루에도 몇 명씩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일차 정보를 수집한 그는 상황이 매우 심각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가뭄도 가뭄이지만 백성을 이 지경으로 만든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었던 것입다.

아무리 아끼고 밤낮으로 일해도 아전들이 부리는 이런저런 농간에 배겨날 수가 있어야죠. 오죽하면 아전의 술 한 잔이 환자(還子:각 고을의 사창(社倉)에서 봄 춘궁기에 빌려주던 곡식)가 석 섬이라는 말도 있겠소? 조그만 미끼를 던져 덥석 물게 해놓고는 나중에 그 몇 곱을 받아 가로챈단 말입니다. 하긴 수령은 이방한테서 돈을 뜯고 이방은 아전들한테서 돈을 뜯으니 아전은 어디서 돈을 뜯겠습니까? 차라리 머리 깍고 중이나 되면 이 꼴 저 꼴 안 보고 살 수 있잖소.”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해, 중앙이고 지방이고 할 것 없이 관리들이 줄서기와 자기 배 채우기에 정신없을 때였습니다. 그러니 탐관오리들이 횡행하여 갖은 명목으로 수탈하는 것도 물 만난 고기처럼 당연한 현상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영남지방에서는 그 폐해가 가장 심했습니다. 이곳으로 오기 위해 거쳐온 경기 충청 지역과 비교해봐도 알 수 있었다. 이에 환재공은 영남은 재화와 보물이 풍부한 고장으로서 풍속이 아름답고 인재 배출도 일찍이 팔도의 으뜸이었으나, 지금은 삼정(三政)이 모두 병들어 온갖 폐단이 고질화됨이 또한 팔도에서 가장 심하다며 한탄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환재공과 대화하는 것을 듣고있던 한 걸인이 끼어들며 그래도 아무렴 밀양 사람들보다 더 할라구요?” 라고 한마디 한다. 그러자 먼저 신세 한탄을 하던 자가 하긴 그렇지. 그런 부사 만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지.”하며 거드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에 환재공은 귀가 번쩍 트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밀양은 그나마 좋은 부사 만나 형편이 좀 낫지 않소?”

그러자 걸인이 손사래를 치며 기가 막히다든 듯 한마디 하기를 보아하니 이곳 사람 아닌 것 같아 내가 참겠는데 말이지, 혹시라도 밀양에 가거들랑 그딴 얘기 꺼내지도 마슈, 맞아 죽고 싶지 않거든 말이오. 어이구···”

환재공은 서둘러 문서를 정리하고 밀양으로 떠났습니다. 직접 보고 듣기 전에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밀양 부사 서유여(徐有畬)는 바로 그의 절친한 벗인 서승보(徐承輔)의 부친이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에 몇 번 뵈었지만 늘 예의를 갖춰 대하던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호탕하게 웃으며 대인의 풍모를 간직했던 그 분이 이다지도 백성들의 원성을 사게 될 줄은 짐작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조령 고개를 넘어서자마자 환재공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밀양의 부정부패를 보고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문대로 밀양의 백성들은 아사 직전에 놓인 상태로, 부사 이하 모든 관리들에게 치를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사 서유여는 바로 이 부정의 선봉장이었다. 1852년에 부임한 뒤 조유전(漕留錢조창마감 시에 남은 돈)을 작곡(作穀)한다는 등 갖은 명목과 수단을 만들어 환곡의 색락미(色落米 毛色이나 손실분 보충을 위해 가외로 걷는 쌀)를 착복했습니다. 그해 봄 진정(瞋政) 때에는 각종 명목으로 백성들로부터 돈을 걷었는데 그중 3천여 냥이 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이제는 출도해서 문서들을 조사하기만 하면 수많은 비리가 적발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환재공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눈앞에 서승보와 함께 학문을 공부하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서승보는 문자와 도의로 사귄, 그의 몇 안 되는 지인이었습니다. 그와의 친분을 생각하면 출도는 아니 될 말이었습니다.

그 무렵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암행어사 제도도 예전처럼 엄격하게 관리되지 못하여 뇌물을 받고 눈감아주거나 권세가에 빌붙는 어사가 생겨나고 있었다. 하지만 환재공은 설령 동생이 그런 부정을 저질렀다 해도 사사로운 감정으로 일 처리를 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물며 벗의 아버지라 한들 그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을 뻔히 보고도 어찌 묵인하겠는가. 이는 자신은 물론 할아버지 연암공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환재공의 할아버지인 연암공이 안의현 사또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관아에 구휼(救恤)하는 곳을 두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죽을 나누어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연암공은 백성들을 구휼하는 중에도 예의가 있어야 하며, 죽을 나누어주기 전에 염치를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연암공은 먼저 뜰에다 금을 그어 남녀를 구분하고 어른과 아이, 양반과 일반 백성의 자리를 구분했습니다. 그 다음 동헌에 앉아 먼저 죽 한 그릇을 들었습니다. 그 그릇은 구휼에서 쓰는 것과 똑같은 하찮은 것이었으며 소반이나 상 같은 건 차리지도 않았습니다. 연암공은 남김없이 죽을 다 들고나서, "이것은 주인의 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이렇게 하는데 무슨 부끄러움을 느끼겠는가. 다른 사또들도 이렇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탄복하였습니다.

연암공의 평소 지론은 이러하셨던 것입니다.

"백성들이 사소한 은혜만 알 뿐 큰 은덕을 모른다고 해서 고을 원님들은 늘 사소한 은혜만 베풀어 명예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백성을 다스리는 요점을 알지 못한 탓이다. 고을 원님들은 오로지 큰 도리를 지켜서 백성을 동요시키지 않는 것을 요점으로 삼아야 한다."

할아버지 연암공이 살아 계셨더라면 도리도 모르고 애민정신도 없는 수령을 그냥 보고 지나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러서야 환재공은 차분한 마음으로 결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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