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및 특징 洪武6년(1373; 공민왕22) 12월에
開城府에서
朴秀
에게 발급한 准戶口이다. 원문서는 전하지 않고
『潘南朴氏世譜』(1825)에 「密直公癸丑戶籍」이라는 제목으로 전재되어 있는 문서이다. 근거호적은 바로 전해인 壬子年(1372) 戶口이다. 戶首와 그 妻의 世系가 四祖로 국한되어 기록된 점, 행의 배열방식 등으로 보아 족보에 수록되는 과정에서 많은 편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박수
와 그 처
김씨, 그리고 그 사이에 출생한 3남2녀가 가족원으로 등재되었다.
박수
의 증조부는
戶長으로 조부대에 及第함으로써 중앙관계에 진출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進士試에 입격하여
良醞令同正을 지냈고,
박수
당대에 이르러서는
密直副使와 같은 고관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박수의 맏아들 朴尙衷(1332~1375)과 둘째 아들 朴尙眞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淸職에 진출하였고, 두 사위 역시 과거에 급제한 인물이다. 향리층에서 출발하여 과거를 통해 중앙관계로 성장해나간 麗末 신흥사대부의 전형적인 모습을 이 자료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아들의 아내 기록은 “娶…”, 딸의 남편 기록은 “夫…” 형식으로 각각 附記되었다. 아들들의 과거와 관직사실이 연령기록 다음에 나오는 점도 특징적이다. 다른 여말 호적과의 차이인지 족보의 수록과정에서 나타난 편집의 결과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