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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2013-12-03 (화)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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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 과거시험 포기한 이유★

燕巖 朴趾源, 科擧試驗 抛棄한 理由
當代 朝鮮 最高의 文學家로 알려진 燕巖 朴趾源(1737~1805)

약관의 나이부터 문장으로 이름을 날린 그의 출세를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연암 박지원은 1771년 과거를 완전히 단념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에 대해 <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사이더>(위즈덤하우스. 2007, 13,000원, 334쪽)의 저자 노대환 교수는 "친구 이희천의 죽음 때문"이라고 답한다. [연암 이야기는 5번째]

李羲天(이희천, 1738-1771)은 燕巖의 젊은 시절 스승인 李胤英(이윤영, 1714-1759)의 맏아들로, 朴趾源과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그는 1771년 사형을 당하는데, 이유는 단 하나였다. <明紀輯略(명기집략)>이라는 불온(不穩) 서적을 소유했던 것.

<明紀輯略>은 中國의 역대 사실을 기록한 <綱鑑會纂(강감회찬)> 중 明나라 歷史를 서술한 책이다. 여기에는 太祖 李成桂가 高麗의 권신 李仁任(이인임, ? -1388))의 아들이라는 잘못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한 宣祖가 술에 빠져 국방을 소홀히 했고, 仁祖가 임금 자리를 찬탈했다고 주장했다. 朝鮮의 입장에서는 모두 용인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이는 朴弼淳(박필순)의 상소로 알려졌는데, 이를 듣고 격분한 英祖는 淸에 우의정 金尙喆을 파견해 <綱鑑會纂>의 소각을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책을 가진 사람은 자수하기를 명령했다.

이에 영의정 金致仁(김치인), 좌의정 韓翼?(한익모), 우의정 金尙喆을 비롯한 70 여 명이 이 책을 내놨다. 이들이 바친 책은 漢城府 창고에 가득 쌓였다.

그러나 아직도 모자라다고 판단한 英祖는 책 중개상인인 책주릅들을 체포해 책을 판 곳을 실토케 했다. 이 과정에서 李羲天이 잡혀 왔다.

그는 책을 사놓기는 했지만 실제 보지는 않았으며 상소가 나온 후 즉시 불태웠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英祖는 이를 믿지 않았고 李羲天은 결국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친구의 처참한 죽음에 燕巖은 큰 충격에 빠졌다. 상소를 올린 朴弼淳은 燕巖에게는 할아버지뻘 되는 이였고, 朴弼淳이 처음 본 <綱鑑會纂>도 燕巖의 팔촌 형인 朴明源(박명원, 1725-1790, 英祖의 和平翁主의 男便)의 집에서 나온 것이기에 자책감은 더욱 컸다.

이 일이 있은 후 燕巖은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고, 과거 역시 포기했다. 몇 년간은 폐인처럼 지내기도 했다. "아내를 먼저 보낸 슬픔 보다, 지기(知己)를 잃은 슬픔이 심하다"고 할 정도로 교분을 중시했던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제자 李漢柱(이한주)가 세상을 떠나자 쓴 <李夢直哀辭(이몽직애사)>에도 이는 분명히 나타난다. 다음은 그 일부다.

"나는 내 친구 이사춘이 죽은 뒤부터는 사람들과 다시 교제하고 싶지 않아 축하하는 일이건 조문이건 모두 폐해버렸다. -중략- 교제가 끊어지는 것도 달갑게 여겨, 비록 실성하거나 멍청한 사람으로 지목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았다."

盧大煥敎授

이처럼 친구에 대한 燕巖의 깊은 마음 씀씀이는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와 명예를 위해서라면 우정파괴도 서슴지 않는 요즘, 한 번쯤 되새겨 볼 이야기다.


이휘천
1771년(영조47) 5월26일자 조선왕조실록은 이희천(李羲天·1738-1771)과 책주름 배경도(裵景度)를 조리 돌려 목을 벤 후 청파교에서 효시하여 사흘 간 목을 달아두고, 그 처자는 흑산도로 보내 영영 관노비로 삼으라는 기사를 싣고 있다.

이희천은 당대 이름 높던 문인 이윤영(李胤英·1714-1759)의 아들로 명망 높은 명문가의 후손이었다.

이렇게 참혹한 형벌을 받은 그의 죄목은 고작 국가에서 금지하는 서책을 소지했다는 것이 었다. 청나라 주린(朱璘)의 ‘강감회찬(綱鑑會纂)’이란 책에 태조 이성계와 인조를 모독하는 내용이 일부 실려 있었다. 이를 들은 영조는 격분하여 우의정 김상철(金相喆)을 청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주린을 처벌할 것과 ‘강감회찬’을 훼판하고 소각할 것을 요구하고, 이 책을 수입해온 세 사신을 삭직하는 조처를 취했다. 또 민간에 소장된 ‘강감회찬’을 자진 헌납케 했다.

당시 자진 헌납자는 영의정을 비롯한 3정승과 판서가 포함된 무려 75명에 이르렀다. 당시 이들이 바친 책이름도 다양해서 10가지가 넘었다.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저자의 문제의 책이 당시 내로라하는 조선 사대부의 서가마다 대부분 모두 꽂혀 있었던 셈이다. 같은 책도 완질과 축약본이 있었고, 명칭 또한 다양하게 유통되었던 사정까지 알 수 있다.


영조는 이 책의 유통 과정에 개입된 책주름들을 체포하여 처벌했다. 이희천은 단지 이 책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시범 케이스로 극형을 당해 죽었다. 이 일과 연좌되어 10여명의 책주름이 처형당하거나 변방으로 유배 갔다. 그의 친한 벗이었던 박지원은 이 일로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바깥과 일체의 왕래를 끊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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