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작곡가 朴勝裕
광복군 작곡가 朴勝裕
독립유공자이며 강원대 음악대교수를 지낸 작곡가
1990년11월 2일 별세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
1990 건국훈장 애족장
김춘선(金春仙)
<인터뷰> (춘천=연합뉴스) 이해용기자 =
기사입력 1999-08-13 13:03
"남편은 을사오적의 손자라는 죄책감때문에 죽는 날까지 병상에서
일본군 탈출기를 쓰며 괴로워했습니다"을사보호조약 체결당시 외부
대신을 지낸 박제순(朴齊純.1858-1916)의 친손자로독립운동을 했던
박승유(朴勝裕.1924-1990)의 아내 김춘선(金春仙.)씨는 고인
이 된 남편의 이야기를 하며 울먹였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박선생은 어떤 사람이었나.
▲할아버지가 나라를 팔아 먹은 을사 오적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평소 괴로워했다. 할아버지가 차라리 자결을 하지 왜 그 치욕스러운
자리에 있었는가 하며 슬픔을 느꼈었다. 평생 그 스트레스에 시달리
다 위암에 걸리고 병원에 입원해 죽는 날까지도 2-3장의 일본군 탈
출기를 집필했다.
-박선생이 독립운동을 하게 된 경위는.
▲일본으로부터 징집통보를 받고, 입대한뒤 한 달만에 동료 1명과 함
께 탈출을 했다. 탈출을 한 뒤 비 바람속을 헤매던 중 중국 장개석군
대를 만나 광복군 제2지대에 들어가 활동을 했다.
-광복군에서의 주요 활동은.
▲ 안익태선생이 만든 애국가를 광복군에 보급하고 당시 상해국립음
악원 구 소련 교수인 슈슈린으로부터 음악공부를 하는 등 정치와는
다른 음악의 길을 걸었다.
-경성법대를 졸업한 사람이 음악을 하게 된 경위는.
▲법을 공부한 정치인이 나라를 팔아 먹었다는 욕을 듣게 되면서부
터 음악에 뜻을 둔 것 같다. 또 경기중학교 다닐 때부터 개인적으로
레슨을 받은 것도 한 요소다.
-박선생의 할아버지가 을사보호조약에 도장을 찍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할아버지가 직접 을사보호조약에 옥새를 찍지는 않은 것으로 안
다.일본인들이 강요하자 당시 관사인 경기중학교자리 연못에 옥새를 던져 버렸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물을 퍼내고 이를 찾아 찍은 것으로 안다.
-박선생의 위업을 위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남편의 할아버지가 운현궁에서 당시 적었던 일기와 유품 등을 정
말로 뜻이 있는 기관을 찾으면 기증하고 싶다
※
이철주 건국포장 (2005)
공적내용
1940년 11월 경기중학교 재학 중 동창생 마츠하라[松原博]와 가회동(嘉會洞)
자신의 집에서 만나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뜻을 모으고, 동급생 박승유(朴勝裕)·
이순복(李洵馥), 동교 3년생 민성기(閔成基) 등을 동지로 포섭하여 비밀결사 ‘MH회’를
조직하였다. 동년 12월 동급생 고원석(高元錫) 집에서 한국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이들을 동지로 규합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발각되어 1942년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註·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42.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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