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ㆍ작성자 한가람
ㆍ작성일 2020-08-12 (수) 14:46
ㆍ추천: 0  ㆍ조회: 589       
ㆍIP: 114.xxx.152
몸을 두루 인두로 지졌으나, 박태보는 의연하였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12/2020081200052.html
 
정재공 박태보 할아버지의 의연한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위의 주소를 클릭하시면 내용을 보실수 있습니다.
 
 

朴泰輔 16541689(효종5숙종15) 定齊公,


--병문-임종-조년--응천-동선--세당-태보


자는 사원(士元), 호는 정재(定齋). 5대조는 야천 문강공 사간 박소(朴紹) 이고 고조부는 사재감정 박응천(朴應川) 증조부는 좌참찬 박동선(朴東善) 할아버지는 인조반정때 정사 3등공신인 참판 박정(朴炡)이고, 아버지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박세당(朴世堂)이며, 어머니는 현령(縣令) 남일성(南一星)의 딸이다. 당숙인 세후(世垕)에게 입양되었다.

 

1675(숙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생원으로서 1677년 알성 문과에 장원해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거쳐 예조좌랑이 되었다. 이 때 시관(試官)으로 출제를 잘못했다는 남인들의 탄핵을 받아 선천(宣川)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1680년에 홍문관의 부수찬(副修撰수찬·부교리(副校理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거쳐 교리가 되었다. 그런데 당시 문묘 승출(陞黜)01)에 관한 문제


 

와 당시 이조판서 이단하(李端夏)를 질책한 소를 올려 파직되었다.

 

1682년 홍문관의 사가독서(賜暇讀書)02)에 선발되었다. 사가독서를 마친 후 이천현감


 


 

(伊川縣監)을 시작으로 부수찬·교리·이조좌랑, 호남의 암행어사 등을 역임하였다.

 

호남에 암행어사로 다녀온 뒤에 중앙에 보고한 과감한 비리 지적에 조정의 대신들이 감탄했으며, 호남 지역의 주민들로부터도 진정한 어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또한 당시 서인 중에서 송시열(宋時烈)과 윤선거(尹宣擧)가 서로 정적으로 있을 때, 윤선거의 외손자임에도 불구하고 친족 관계라는 사심을 떠나 공정하게 의리에 기준을 두고 시비를 가려 통쾌하게 논조를 전개한 적도 있다.

이어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를 거쳐 파주목사로 나갔을 때, 조정에서 성혼(成渾)과 이이(李珥)의 위패를 문묘에서 빼어버렸다. 그런데 박태보가 부임해 재직하는 파주에서는 조정의 정책에 따르지 않고 그대로 이를 존속시켜나가 인책, 면직되었다.

재주가 뛰어나 젊은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한 경력이 있으며, 학문 태도도 깊고 높아 당대의 명망 있는 선비들과도 깊은 교유를 맺었다. 특히 교유한 친우는 주로 서인의 소론파들로 최석정(崔錫鼎조지겸(趙持謙임영(林泳오도일(吳道一한태동(韓泰東) 등이 있다.

타고난 성품도 뛰어나 지기(志氣)가 고상하고 견식이 투철해 여러 차례의 상소에서 보여준 것처럼 시비를 가리는 데는 조리가 정연하고 조금이라도 비리를 보면 과감히 나섰으며 의리를 위해서는 죽음도 서슴지 않았다.

죽은 뒤 왕은 곧 후회했고, 충절을 기리는 정려문을 세웠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풍계사(豐溪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정재집(定齋集)14, 편서로는 주서국편(周書國編), 글씨로는 박임종비(朴林宗碑예조참판박규표비(禮曹參判朴葵表碑박상충비(朴尙衷碑) 등이 있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정재공께서는 서인(西人)으로서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진도(珍島)로 유배 도중 옥독(獄毒)으로 노량진(鷺梁津)에서 죽었다. 나라에서는 그의 학문을 높이 평가하여 이조판서로 추증하는 동시에 시호를 문열(文烈)이라 하고,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이 서원을 건립하였다

노강서원은 동작구 본동 사육신묘 서쪽 기슭 가칠목에 있었던 서원으로, 숙종 15(1689) 기사환국 때 죽은 정재공(定齋公)을 배향하던 서원이다.
이 서원터는 당시 신확(申瓁= 정재공 4촌인 대재학 태상의 사위)의 집이 있었던 곳으로 정재공이   이집에서 묵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숙종 23(1697)에 박태보를 위해서 이 곳에 서원을 건립하고 노강서원이라는 서액을 하사하였다.
고종 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 철폐되지 않았다.

 

파주목사로 재직 때 참판공 규()의 비석이 피페되어 새로 세워 오늘에 이르고

강원도 이천(伊川)현감 때, 문순공 세채 할아버지께서 족보 편집을 하시고, 아버지인 서계 세당공께서 서문을 쓰신 계해보를 정재공께서 이천현에서 간행을 하였다.

 

   
이름아이콘 4kraphs8
2020-09-01 19:07
위의 정재공 약력 소개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경종실록>(경종 3년 10월 29일) 기사는 오류로 판명되었습니다.
<승정원일기>(경종 3년 11월 24일) 기사를 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문제"(!?)를 일으켜 종중에 논란이 일어나 최종적으로 확인한 것인데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곳이 있는가 봅니다.
대종중에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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