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평서. 호국의 육탄 10용사
5월 4일은 육탄10용사가 장렬한 전사하신 72주기다
박평서 (朴平緖 )
계급 육군상사
생존기간 : 1931.12.08 ~ 1949.05.04
출신지 : 전남 나주시
출신학교 : 공산초등학교
훈격(년도 ) : 을지무공훈장 (1950.12.30.)
副率公派
족보 3권 1216 쪽 부 승실 자 찬희
공적내용
육탄 10 용사
제 1 사단 11 연대 하사관 교육대 1 소대 1 분대장 서부덕 상사외 8 명과 중화기 소대 분대장 박창근 하사등 10 명은
49. 5. 4 송악산 지구 UN 고지 탈환전에서 특공대를 자원
81 밀리 박격포탄을 안고 적토치카에 뛰어 들어 적 기관총 진지 10 여개를 파괴후 장렬히 산화
이 결과 송악산지구 일대 고지를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으며
육탄 10 용사의 육탄공격 정신은 군인정신의 귀감으로서 군의 사기를 충전시키는 기폭제가 되었음은 물론 국민에 대한 군의 신뢰를 가일층 증진
▲통일공원에 있는 육탄10용사 충용탑 (출처-국가보훈처 현충시설 통합정보 )
-육탄 10용사-
6.25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전면전을 예고하는 소규모 전투가 38선 일대에서 수시로 일어났는데요. 특히 6.25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49년에는 그 횟수가 잦았습니다. 1949년 4월 남천점(南川店)에 주둔하고 있던 북한군은 병력 1천여 명을 개성 송악산 후방에 집결시켰다가 5월 3일 새벽 송악산 능선을 따라 기습 남침하여 38선 남방 일대의 고지를 순식간에 점령했습니다.
1949년 5월 4일, 국군은 북한군에게 빼앗긴 개성 송악산 일대 4개 고지(292, 155, 유엔, 비둘기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수십차례 전투를 펼쳤지만 수적열세와 적의 토치카(tochka, 지하 참호)에서 쏘아대는 기관총 공격으로 인해 고지탈환은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국군 제1사단 제11연대는 송악산 능선에 버티고 있는 북한군의 토치카 10개소를 파괴하는 것만이 38선을 지킬 수 있다고 판단하였고, 적진에 폭탄을 안고 뛰어들 용사를 모집했습니다. 이때 가장 먼저 손을 들고 특공대로 자원한 것은 연대 하사관교육대의 서부덕 이등상사였습니다. 이후 김종해 상병 등 인원이 가세하여 10명의 특공대가 이 작전에 자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서부덕 이등상사를 대장으로 하여 10명의 특공대들은 81mm박격포탄에 수류탄을 장치한 급조 폭발물을 가슴에 안고 적진으로 돌격했습니다. 적의 포화를 뚫고 돌진하는 동안 그들의 몸은 포탄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결국 10개의 토치카를 파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우리 국군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돌격하여 4개의 고지를 탈환하는 대전과를 거두었는데 이를 ‘송악산 전투’라고 부릅니다. 정부에서는 열 명의 용사를 '육탄 10용사'로 명명하고 이들의 조국애와 희생정신을 기려 서부덕 상사는 소위로, 다른 9명은 상사로 특진시키는 동시에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고 육탄10용사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였습니다.
[육탄 10용사] 서부덕 소위, 박창근 상사, 황금재 상사, 윤옥춘 상사, 윤승원 상사, 김종해 상사, 이희복 상사, 오제룡 상사, 양용순 상사, 박평서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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