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인물 | 13세 활당공活塘公 동현東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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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중 작성일16-03-31 14:21 조회1,285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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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 활당공活塘公 동현東賢] 1544(중종39)∼1594(선조27) 호는 활당(活塘). 할아버지는 사간 소(紹)이고, 아버지는 사재감정(司宰監正) 응천(應川)이며,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참봉으로 벼슬길에 나가기 시작해, 그 뒤 의금부도사·종부시직장(宗簿寺直長)등을 지냈다. 1588년(선조21) 알성 문과(謁聖文科)에 병과로 급제하고 정언正言· 이조좌랑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1591년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황윤길(黃允吉)· 김성일(金誠一) 등이 일본의 국서를 가지고 왔을 때 그 내용 중 일본이 중국을 정벌하겠으니 조선의 길을 빌려 달라는 내용이 있었다. 조정에서는 이 사실을 중국에 알리느냐 마느냐로 의견이 분분하였다. 이 때 수찬으로 경연(經筵)에 입시한 그가 중국과 우리나라의 국교 관계를 생각해 알리는 것이 옳다고 건의해 분분하던 논의가 알리는 쪽으로 결정 났다. 이듬 해 임진왜란이 발발해 왕과 정부 일행이 의주까지 피난하는 중에도 시종 일행을 수행하였다. 그러면서 온갖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문란한 규율을 바로잡고 시의(時宜)에 맞는 진언(進言)을 해 모든 일을 바로잡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1593년 환도 뒤에도 계속 교리· 헌납· 지평· 사간· 응교 등의 요직에 있으면서 국정을 바로잡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이이(李珥)· 성혼(成渾)을 사사해 자주 찾아가 배우고, 김장생(金長生)과 친교가 두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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