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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암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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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30 10:19 조회1,9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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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암현
양천군 [陽川郡] 
고구려의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을 통일신라 경덕왕 때 공암현(孔巖縣)으로 고쳤고, 1310년(충선왕 2)에 양천현으로 개칭,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내려오다가 1895년(고종 32) 양천군으로 승격되었으며 1914년 경기 김포군에 흡수되었다
(두산동아 백과사전에서 갖어온글)


경신보 세적편 17 쪽 하단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及第公 諱 宜 事蹟
諱 宜의 墓는 失傳이다,
峰峴에서 十里되는 공암현 馬山里에 한 古冢이 있는데 朴氏山이라는 傳說이 있으나 그곳에 사는 徐哥가 그곁에 여러번 葬事를 하였고 또 반남리에는 鄭家의 竹林속에 古冢이 있는데 또한 박씨묘라는 말이있어 英祖 庚辰年에 十七世孫인 道源 두곳을 찾아보았으나 모두 證據가 없었다. 朴文燦이 長連族譜를 했는데 그의말에 <公은 松都의 星燈洞에 살았는데 墓는 豊德에 있다> 고 하엿고 또는 <官職은 奉翊大夫 樞密使며 配位는 尹氏이고 龍騎巡衛司 大護軍 允輔의 딸이다>했으나 他譜에는 없으니 怪異한 것이다.(傳說에는 墓는 潘南書院의 북쪽 陰坂村의 뒤라고 한말이 있으나 확실하게는 알수없는 것이다.

傳說에는 墓가 마산에 있다고 하나 馬山이 처음은 어느郡인지몰라서 十三世孫인 世采가 일찌기 坡州에살 때 비로소 그 州境에 馬山이 있다는 말을 듣고 또 전설에 朴氏墓가 이곳에 있다는 말도 있어서 몇해동안 찾다가 退任한뒤에 羅主峰縣에서 十里되는 곳에 馬山里라는 이름이있고 里中에는 一岩이 있는데 암석에 구멍이 많기 때문에 孔岩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반남선생의 行狀에 의하면 선생은 孔岩縣 馬山里에서 태어났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땅인가. 孔岩아래는 한 麗朝의 古冢이 있는데 傳說에는 朴禹의 무덤이라 하고 또한 馬山里안에는 한 마을이있는데 朴哥村이라고 하엿으니 대개 禹와 宜는 글字 音이 訛傳되기 위운 것이라.地名과 村名은 서로 맞으니 이것이 혹시나 證據가될까. 다만 麗朝의 葬地에는 반드시 幽顯한 標識가 있기 때문에 道源이 按察使로 왔을 때 땅을 깊이 파 보았으나 마침내는 證據가 없었으니 어찌 의심이 나지 않겠는가. 혹은 말하되 어느 때인가 호장공의 墓를 改築할 때 墓誌가 묻혔는지를 찾으려고 瑩域을 널리 파보았으나 마침내 所得은 없었으니 또한 이상한 것이 아닌가. 


반남선생의 행장에 의해 출생지가 공암현이라고 했기에 
본래 고려때 공암현이란 현재 서울 양천구를 말하기 때문에 이같은 견해가 나온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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