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재 박규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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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30 11:23 조회2,040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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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한국사에서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는 근대전환기에 활약한 선각자로 길이 기억되어야 할 인물이다. 그는 19세기 조선의 역사적 격변 한가운데에서 정치 ․ 사상 ․ 문학 등 다방면에 걸쳐 폭넓은 활동을 보여주었으며, 당대의 가장 개명한 지식인으로서 시대적 과제에 직면하여 누구보다 깊이 고뇌하고 적극적으로 대책을 모색하였다. 그러므로 19세기 한국사를 연구하자면 도처에서 그의 존내와 마주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박규수의 생애와 사상과 문학을 종합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자주적 근대화의 길을 찾기 위해 분투했던 그 시대의 총제적 진실에 접근하고자 한 것이다.
필자의 박사논문이자 첫 저서인 「열하일기 연구」의 집필을 마무리할 무렵에 그 후속 작업으로 환재 박규수를 연구해야겠다는 구상이 저절로 떠올랐다. 「열하일기」에 집대성된 연암 박지원의 사상적 문예적 성과가 후대에 계승 발전되어간 양상을 규명하려면, 가학(家學)을 통해 그의 사상과 문학을 충실히 전수받은 손자 박규수를 연구할 필요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박규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그의 조부 연암이므로, 연암을 모르면 박규수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또한 개화사상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박규수의 활동과 연관지어 보아야만 연암의 사상과 문학이 지닌 시대적 진보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연암을 전공한 필자야말로 박슈수연구의 적임자요, 연암 연구의 토대위에서 박규수를 연구한다면 새로운 성과를 거둘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박규수의 문집인「환재집」을 정독하면서 필자는 “냉철한 눈으로 시무 살피며/ 마음 비우고 고서 읽노라”는 그의 시구에 깊이 공감하고, 이를 연구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박규수가 말한 바 ‘시무’ 즉 현대의 시대적 과제를 냉철하게 성찰하고, 궁극적으로 그 과제의 해결에 기여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철저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에 필자는 박규수의 현존하는 저술을 거의 망라한「환재총서」를 편찬하고 수많은 관련 자료들을 섭렵했으며, 한문학 전공자로서 난해한 한문 자료들을 최대한 정밀하게 독해함으로써 진상을 완벽하게 파악하고자 힘썼다.
또한 필자는 박규수의 폭넓은 활동을 통해 19세기의 총제적 진실에 접근하고자 한 만큼, 다양한 분야에 걸쳐 학제간(學制間) 연구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학연구를 기반으로 하되, 과감하게 사회사와 사상사 연구의 영역까지 넘나들면서 한국 근대문학과 근대사상의 원류(原流)를 규명하고자 했다. 그 결과 이 책에서 필자는 한문학을 중심으로 한 19세기의 문학사뿐 아니라, 연행(燕行)을 통한 한중(韓中) 문화교류, 양반사대부의 복식제도와 예론(禮論), 천문 수학 등 과학사, 농민 항쟁과 삼정(三政) 개혁까지 아우르는 광범한 주제를 논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술 면에서도 박규수의 생애와 그 시대상을 충실히 복원하는 전기적(傳奇的) 수법을 구사하는가 하면, 그의 문학작품과 사상적 저술 및 정치 활동에 관해 집중 분석하는 경우에는 엄밀한 논문식 문체를 취하기도 했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포괄하여 논했던 동아시아의 인문학적 전통과 아울러, 서사(敍事)와 의론(議論)의 교직(交織)을 추구한 고전 산문의 작법을 현대적으로 살려보고자 한 셈이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논의를 전개한 이 책을 가급적 통독해주기 바라지만, 독자들의 관심사에 따라 선별해서 읽어도 무방하도록 책의 각 장(章)을 유기적이면서도 독립적으로 구성했다는 점을 첨언해둔다.
지난 십수년간의 연구 성과를 결산한 이 책의 간행을 앞두고 보니 자못감회가 깊다. 우선 이 책은 필자에게 대기만성(大器晩成)을 기대하신 고(故) 우전(雨田) 신호열(辛鎬烈) 선생께 올리는 일종의 ‘중간 보고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선생의선조가 환재의 장인이었던 인연으로 필자의 연구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고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노촌(老村) 이구영(李九榮)선생의 영전에도 이 책을 바치고 싶다.
이 책은 이러한 두 분 스승의 학은(學恩)뿐 아니라, 많은 분들의 도움에 힘입어 완성될 수 있었다. 환재의 현손(玄孫)인 고 박공서(朴公緖) 옹을 비롯하여 귀중한 관련 자료를 아낌없이 제공해주신 분들 께 감사드리며, 지면 관계상 일일이 사의를 표하지 못함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필자의 첫 저서인「열하일기 연구」에 이어, 그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의 간행을 흔쾌히 맡아준 출판사 창비에도 깊이 감사드린다.
이 책에 앞서 필자는 셔먼호사건(1866)부터 신미양요(1871)까지 고종시대 박규수의 대외활동을 집중적으로 다룬「초기 한미관계의 재조명」을 간행한 바 있다. 그러므로 출생 이후 철종시대까지(1807~1863) 박규수의 생애를 다룬 이 책과, 그에 이어지는「초기 한미관계의 재조명」, 그리고 장차 박규규수의 만년(1864~1877)의 활동을 다루게 될 세 번째 저작으로 필자의 박규수 연구는 완결될 것이다. 이 책의 간행을 계기로, 3부작을 완성하는 그날까지 가일층 매진할 것을 다짐해본다.
2008년 가을
김 명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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