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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度公과 고암전(鼓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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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9-05-21 09:00 조회4,8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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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度公과 고암전(鼓岩田)
조선초 문신 박은(朴訔1370-1422)은 좌의정의 벼슬까지 올랐으나 평소 검소한 생활을 하고 가산을 생각하지 않아 자신도 조밥과 거친 옷으로 자족하는 생활을 하였다. 하루는 태종이 사복 차림으로 그의 집을 찾았는데 마침 조밥 식사를 하다가 재채기가 나서 곧 나와 손님을 맞이하지 못함에 오랫동안 문 밖에 서 있던 태종의 안색이 자연 좋지 않았다.이를 송구스러워 하며 사실을 말하자 태종은 놀라 믿지 못하고 “경이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조밥을 먹다니 말이 되느냐”면서 사람을 시켜 안으로 들어가 알아보게 하였는데 사실이어서 이때 태종은 감탄하며 특별히 명하여 동대문 밖의 북바위 부근의 논, 밭 몇 마지기를 주게 하였다고 한다. 이 鼓岩田은 현재 안암동 1번지 부근에 있다.
--성북구청 홈페이지에서--


上幸公第特賜鼓巖田    
公雖出入中外位極人臣然儉約敦睦俸祿皆分濟親黨故家甚貧一日太宗微行訪公
立門前稍久公食粟飯而嚔不則迎拜上怪問之對曰臣適飯粟入口數嚔不下故所遲死罪惶恐 上曰卿爲宰相乃食粟飯耶使人入視之果然上深加嗟歎仍特賜靑門外鼓巖
田若千畝子孫世守 公第在東部雙柏亭云
潘南記. 燃藜室記述. 潘陽三世顯彰錄



특사고암전(特賜鼓巖田)
임금이 은(訔)의 집을 행차하시어 특별히 고암전(鼓巖田) 밭을 하사하시다.
공은 비록 조정과 지방을 드나들며 벼슬이 신하로서 최고(最高)에 달하였으나 검소절약하고 친목이 돈독하였으며 국가에서 받은 녹(祿俸)을 다 가난한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므로 집안은 대단히 빈한(貧寒)하였다.
어느 날 태종(太宗)이 수행원과 같이 미행하여 박은을 방문하여 문전(門前)에 오래 서있게 되었다. 이유는 주인이 빨리 마지하지 아니한 때문이었다. 임금이 괴상하게 여기어 물으니 대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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