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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도공의 사시던곳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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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한가람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9-06-03 17:35 조회4,1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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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도공의 집터

이규태 코너 ‘풍류마당’ 사적고(事蹟考) 중에서

풍류의 마당으로 개방된 겨우 1km의 동숭동거리는 지금 흔적을 찾아 볼수없는 사적이 촘촘 하게 밀집된 역사의 거리이기도 하다 굵직한것부터 가려보자.

서울대 의과대학의 남쪽 경계즈음이 태종의 외손자요, 간신 유자광의 모함으로 젊어서 죽은 남이 장군이태어나 자라던 집터이다. 이집터에는 장군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한 남이탑이 서 있었다던데, 이미 복원돼야 했을 사적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다. 남이탑의 바로 그 이웃에는 세조때 정승이며 풍류로 우상처럼받았던 이석형(李石亨)의 초가집 계일정(戒溢亭)이 있었다.
문헌에 보면 연못을 파 물이 넘치지도 또 마르지도 않게 자연조절하여 그의 자손이나 찾아 오는 손님에게 매사를 분에 넘치지 않게 하라는 훈계를 이 계일(戒溢)로 했다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연못의 연꽃이 너무 아름다워 연지동이라는 동네 이름까지 남아 있게된 것이다. 그 초정(草亭)과 연못이 복원된다면 얼마나 좋은까 하는 생각이다.
그 연못 맞바래기에 북벌 계획을 세웠던 용기있던 반사대주의자 효종과 그의 아우 인평대군이 태어나 자라던 조양루(朝陽樓)가 우애를 상징하며 맞바라보고 있었다. 성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락으로 소문난 옛시에 자주 오르고 있는 다락들이다.
태종때 청빈하기로 소문난 박은(朴訔)의 집도 바로 그 길가에 있었다.
높은 정승이면서 못사는 사람에게 녹을 나누어주고 가난한 초가에서 조밥을 먹고 사는 것을 직접 숨어보던 태종을 놀라게 했다는 바로 청빈의 집인것이다. (下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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