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336
  • 어제1,165
  • 최대1,363
  • 전체 308,535

자유게시판

세적편 번역 문제 소고(小考)

페이지 정보

no_profile 승혁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9-06-18 00:06 조회3,816회 댓글0건

본문


안녕하십니까?
판관공 16세손 승혁입니다.
除煩하옵고,

대종중에서 열흘 전쯤 갑자기 경신보 세적편 새 교정번역본을 저에게 보내와 검토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저는 시간적인 여유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한문(漢文)과 종중사(宗中史)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없기 때문에 극구 사양하였으나 막무가내로 맡기시기에 가독성(可讀性)만 살피기로 한다는 조건을 달고 받아들였습니다. 검토위원은 네 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대종중에서 보내온 교정번역본에는 원문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원문을 대조해서 살필 수는 없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설령 원문이 있다 하더라도 네 사람의 검토 위원들이 자자구구(字字句句) 대조를 하면서 검토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특히 제 경우에는 한학(漢學) 능력이 거의 무(無)에 가깝기 때문에 원문이 있어도 대조 검토할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며 이 점에 대해서 미리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만약 종원들 중에서 자원 봉사를 하시려는 의사가 있으신 분이 계신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사오니 한문과 종중사(宗中史)에 조예가 깊으신 종원들께서는 부디 자원하여 봉사해 주시기를 부탁 올립니다.

이어서 찬승 종인께서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 저의 관찰(觀察) 사항을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서계방조 서문에 민예란 (民隸} 해석도 없고” 라는 지적에 대해: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1)은 경신보의 번역문이고(저에게는 경신보가 없기 때문에 퍼온 것을 인용합니다), (2)는 <고전번역원>의 번역문이고, (3)은 김언중 교수팀의 새 번역문입니다.

원문: 朴氏。本出新羅。而枝散葉布。分處州郡。下而爲氓隷。上而爲公卿大夫。不可盡數。各以其世之可紀而爲祖。祖之所興而著籍。其著以潘南而以戶長應珠爲祖者。吾族也。

(1) 박씨(朴氏)는 본래 신라(新羅)에서 나왔는데 지엽(枝葉)이 산포(散布)되어 주군(州郡)에 나뉘어 살아서 아래로는 민예(亡+民隸)가 되기도 하고 위로는 공경대부(公卿大夫)가 되었으니, 이를 모두 헤아릴 수가 없었다. 각각 그 세계(世系)를 기록(記錄)할 수 있는 것으로써 조선(祖先)을 삼고, 조선(祖先)이 일어난 곳으로써 판적(版籍)에 드러냈으니 그 반남(潘南)으로써 드러내고 호장 응주(戶長 應珠)로써 조선(祖先)을 삼은 이가 우리 일족(一族)이다. (경신보)

(2) 박씨는 뿌리가 신라(新羅)에서 시작되어 자손들이 널리 퍼졌다. 여러 고을에 흩어져 살면서 낮게는 평민이나 종이 되기도 하고 높게는 공경(公卿)이나 대부(大夫)가 되기도 하였으니, 그 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리하여 각각 기록할 만한 세손(世孫)을 시조(始祖)로 삼고 시조가 일어난 곳을 관적(貫籍)으로 나타냈으니, 반남으로 관적을 나타내고 호장(戶長) 응주(應珠)를 시조로 삼은 가문(家門)이 우리 종족이다. (고전번역원)

(3) 박씨는 본래 신라에서 나왔는데 후손들이 흩어져 주군(州郡)에 나뉘어 살다가 아래로 백성이 되기도 하고 위로 공경대부(公卿大夫)가 되기도 하니 이들을 모두 헤아릴 수 없었다. 각각 그 세계(世系)에서 실마리가 될 만한 분으로써 선조를 삼고 선조가 일어난 곳으로써 호적 위에 기록하였으니 반남(潘南)으로써 기록하고 호장(戶長) 응주(應珠)로써 선조를 삼은 이들이 우리 일족이다. (김언중)

먼저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세 번역이 그 뜻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1)의 번역은 번역문에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어 번역문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반면, (2)와 (3)의 번역은 좀 더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번역이라 하겠습니다. 예컨대, (1)의 번역에서는 “亡+民隸”를 그대로 사용한 반면, (2)에서는 “평민이나 종”으로, (3)에서는 “백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또 (1)의 번역에서는 “枝葉”을 그대로 사용한 반면, (2)에서는 “자손”으로, (3)에서는 “후손”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1)보다는 (2)나 (3)이 훨씬 더 현대적이라 하겠습니다. 다만, (2)의 번역에서 “자손”이라고 표현한 것은 자칫 여성(女性)을 배제하는 듯한 뉘앙스를 주기 때문에 (3)의 번역, 즉 “후손”이 좀 더 발전적인 번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따라서 (3)의 번역을 그대로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으나 만약 약간 다듬는다면 다음과 같이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수정: 박씨는 본래 신라에서 나왔는데 후손들이 퍼져서 여러 주군(州郡)에 흩어져 살면서 아래로는 평민이나 종이 되기도 하고 위로는 공경(公卿)이나 대부(大夫)가 되기도 하니 이들을 모두 헤아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각각 그 세계(世系)에서 실마리가 될 만한 분으로써 선조를 삼고, 선조가 일어난 곳으로써 관적(貫籍)을 나타냈으니, 반남(潘南)으로써 관적(貫籍)을 나타내고, 호장(戶長) 응주(應珠)로써 선조를 삼은 이들이 우리 일족이다.

마음에 드실런지 모르겠으나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이 있듯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잘못은 구체적으로 지적하시되, 번역자의 고충도 함께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둘째: “판관공 묘갈명에 족산(族山)을 족장(族葬)으로 변조 해놓아 한자로 인해 혼란스럽게 하고있습니다 원문에는 선비사가 빠진 경우도 잇습니다” 라는 지적에 대해:

이미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경신보를 소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원문과 경신보의 번역문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모릅니다. 수일 내로 대종중에 가서 확인을 해볼 생각입니다. 다만 김언중 교수팀의 새 번역에서 약간 의심스러운 부분을 보면,

“..... 부인은 흥양유씨(興陽柳氏)로 숙인(淑人)에 추증되었으니 증조부는 고려 명신(名臣) 탁(濯)이고 조부는 낭장(郎將)인 선(水+善)이며 선고(先考)는 도염서승(都染署丞) 정(禎)이요 선비(先女+比)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인데, <소고문집>에 나오는 원문을 살펴보니 “祖郎將水+善”과 “考都染署丞禎” 사이에 “女+比南陽洪氏”가 있는데 번역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세적편 원문 자체에서 빠뜨린 것이 아닌가 의심됩니다.

다음으로, “족산(族山)을 족장(族葬)으로 변조 해놓았다”고 하셨는데, <소고문집> 원문에도 “山”이 아니라 “葬”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원래의 묘갈문에는 어떻게 되어 있었는지 지금으로서는 판단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소고문집>의 원문을 따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김언중 교수팀의 번역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공의 묘는 고양군(高陽郡) 원당리(圓塘里)에 있으니 실은 유씨(柳氏) 종족의 산이다.”

원문이 “山”으로 되어 있든 “葬”으로 되어 있든 번역에서는 큰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원문에는 선비사가 빠진 경우도 잇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어디인지 확실치 않으니 다시 정확히 지적해 주시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셋째: “이런것은 인쇄소에 소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라는 말씀에 대해:

위에서 지적한 실수들이 “인쇄소의 소행”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좀 있는 듯합니다. 설령 인쇄소에서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교정하지 못한 종중의 잘못도 있으니 잘못을 너무 쉽게 인쇄소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넷째: “그리고 연암 문집에 휘 종채가 쓴 원사을 보시면 알수있고 손자 환제 박규수가 쓴 연암 문집 편을 보시면 은 누가 없는 것을 보태 놓았느냐고 기록된 것을 본것 같습니다 이런 것은 화양 병사기에 나또한 외손 이라고 쓴것은 없습니다” 라는 지적에 대해:

이 문제는 경신보나 고전번역원의 번역보다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김명호 교수가 번역한 <연암집>을 참고하시면 대부분의 의문이 풀리실 것으로 믿습니다. 김명호 교수는 연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국내의 연암연구가로는 최고 수준에 있는 학자이니 그 분의 번역은 믿을 만 할 겁니다. (물론 100% 완벽한 번역은 없습니다. 김명호 교수의 번역에도 애매한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연암 연구에 대한 김명호 교수의 학문은 관련 학계에서 확실하게 인정하고 있으니 믿어도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누차에 걸쳐 말씀드렸지만 100% 완벽한 번역은 없습니다. 특히 한 씨족(氏族)의 문중사(門中史)에 관한 경우에는 한문 실력뿐만 아니라 해당 문중의 인물과 역사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며, 나아가 국어 표현 능력도 있어야만 제대로 된 번역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을 찾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일단 새 번역문에 대한 “내용” 검토는 해당 소종중에서 책임지고 해 주셔야 합니다. 해당 소종중에서 교정을 소홀히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오역, 졸역이 나오게 될 터인즉 나중에 대종중에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점이 있으면 해당 소중중을 통해 논의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결국 대종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전체적인 번역 의뢰와 번역문에 대한 오, 탈자 점검, 표현의 어색함 바로잡기 정도일 것입니다. 검토를 맡은 제 입장에서 원문 대조까지는 할 수 없다는 송구스러운 말씀을 다시 올리면서 깊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본의 아니게) 새 번역문 검토를 맡은 한 사람으로서, 세적편 번역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신 찬승 종인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세적편의 원문과 번역문에 잘못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능력에 맞지 않은 일을 맡게 되어 마음이 심히 무겁습니다. 지금이라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 간절하오니 부디 한학과 종중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신 종원님들의 직접 참여를 간곡한 심정으로 부탁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승혁 배상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