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延福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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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원우(동일)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9-07-19 08:34 조회3,7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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延福君
延福君(張末孫,1431~1486本貫仁同張氏)은 우리肅川公派의 派祖이신 9세조 諱林楨할아버님의 장자이신 10세조 上護軍公 諱寅亮 할아버님의 丈人되신다
우리 숙천공후 영남파를 이룩하게 된것은 단지 연복군께서 1482년(성종13년)52세의 나이로 예조참의겸 오위도총부도총관의 벼슬을 사임하시고 영남땅 醴泉 花庄으로 落鄕 하실때 장인을 따라 같이 낙향 하므로서 시작 되었다 할것이다 그후 500여년간(금년으로527년) 화장과 예천 일원에 散在하여 後孫이 世居 중이며 현재는 3천여호에(이북황해도 신계파 확인불가제외) 종원이 8천여명을 해아리고있다 영남의 숙천공파 후손은 모두가 연복군의 外孫이 된다
연복군은 1431년(세종13년)태어나시고 名은 末孫, 字는 景胤,이고 號는 松雪軒, 諡號는 安襄,이시다
1453년(단종1년)에 司馬兩試에 합격하셧는데 이때 佔畢齋 金宗直 선생과 同榜 하였다고 한다 1459년(세조5년)에 文科에 及第 하셧는데 이때에도 佔畢齋 선생과 함께하셧다고 한다 이르한 인연으로 佔畢齋,虛白堂,洪貴澾,과 서신을 왕래하며 교분이 두터엇다고 하였다
그후 연백군은 承文院博士 司諫院正言 함길도 兵馬都使로 부임하였고 함길도 절제사 康純의 막하에서 활약 하셨으며 北評事에 임명되여 경성절도사 許倧의 막하에서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人心을 얻었다
1467년(세조13년)에 禮曹佐郞兼 禮文館應敎 에 오르셨는데 그해5월 함경도 吉州에서 李施愛가 亂(세조13년)을 이르끼자 연복군은 康純의 막하에서 反亂을 평정하는데 功勳을 세웠고 그 공으로 敵愾功臣二等에冊封되었다
그후 1476년(성종7년)왕의 命으로 忠勳府에서 敵愾功臣 으로서의 影幀이 그려졌다고 한다 1482년(성종13년) 52세의 나이로 禮曹參議兼 五衛都摠府都摠官의 벼슬을 辭任하고 醴泉 花庄으로 물러나와 松雪軒을 지으시고 閑雲野鶴을 벗 삼아 悠悠自適 하든 그 해에 연복군에 봉해지고 影幀閣 紀功碑가 세워졌으며 敵愾功臣錄券을 下賜 받았다
1483년에 嘉善大夫 연복군이란 군호를 받으셨으며 1486년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자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오위도총부도총관, 춘추관, 성균관사, 세자 시강원찬선에 증직되었고 안양(安養, 性行和順曰安因事有功曰襄)이란 諡號를 받으셨다.
그 후 1489년 충훈부에서 그려 놓았던 영정을 내리시고 불천지위를 명하셨고, 1847년 원 영정과 같게 이모 한 부본을 그려 받아 현재 함께 봉안하고 있다.
花岐리에 있는 宗宅은 연복군의 손자이신 생원공 장응신이 30세에 夭折하면서 長子인통훈대부 부사직 장윤희에게 ‘벼슬도 하지 말고 부자도 되지 말고 남의 앞에 나서지도 말며 조상과 후손을 보존할 수 있는 터를 찾아 은둔하며 살라’고 유언을 남겨 연복군의 玄孫이신 총좌위대호군 장언상이 선조 때에 이 곳 花溪(영주시,장수면,화기리[꽃계])로 이주하여 400년 이상을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1971년에 국비로 영정각을 세웠고 1988년에 국비로 유물각을 준공하였으며 2005년에 유물각을 재차 개축하였으며, 유물각에는 연복군의 6대조인 장 계의 고려홍패, 연복군의 홍패, 백패, 3점이 보물501호, 연복군 영정이 보물502호, 상훈교서가 보물 604호, 공신회맹록과 패도 2점은 보물881호, 인동장씨 고문서 11점과 녹패 1점과 장언상 교지 6점이 보물1005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종택 내에는 사당과 영정각, 유물각, 송설헌이 있으며 유물각내에는 많은 古文書와 敎旨등이 所藏되어 있다.
사당은 학사 김응조의 추원제기의 기록에 의하면 선조 계사년에 7대손 장주남이 건립하여 현재까지 523년간 보존되어 왔으며 불천위 제사를 받들고 있다고 한다. 음력 3월과 9월의 초정일에 추원사에서 향사를 올렸는데 시절이 바쁜 관계로 요즈음은 첫째 주 일요일에 올린다고 한다. 이때는 생식을 위주로 하며 전국의 후손 60~70여명이 참여하며(명절에는 100여명 정도) 10월 첫째 주 일요일에는 예천 범우리에서 묘사를 지내며 기제사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한 종택에 이렇게 많은 遺物을 소장하고 있는 延福君의 종택인 이곳이야말로 우리 지역의 또 다른 자랑거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아끼고 널리 알려야 할 일임이 분명할 것이다. (숙천공후,박원우(동일),조사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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