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문정공(휘 박상충)과 판서공(휘 박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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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문정공(휘 박상충)과 판서공(휘 박상진)
<高麗史>.《112 열전 25 / 제신 / 박상충(朴尙衷) 》
§ 박상충(朴尚衷)
박상충(朴尙衷)의 자(字)는 성부(誠夫)요 나주(羅州) 반남현(潘南縣) 사람이니 공민왕조(恭愍王朝)에 등제(登第)하고 여러번 옮겨 예조 정랑(禮曹正郞)이 되었다. 무릇 향사(享祀)는 예의사(禮義司)가 다 맡았으나 전일(前日)에는 문부(文簿)가 없었음으로 여러번 착오를 일으켰는데 박상충(朴尙衷)이 고례(古禮)를 참작하여 순서대로 조목(條目)을 지어 손수 써서 사전(祀典)을 삼으니 그 후로는 이 책임을 이은 자가 얻어 의거할 바가 있었다. 어머니의 상(喪)을 당하였는데 전교 령(典校令)을 제수하니 때에 사부(士夫)들이 부모상(父母喪)을 100일만 입고 곧 벗었으나 박상충(朴尙衷)은 3년을 마치려 하매 얻지 못하고 드디어 직(職)에 나아갔다. 그러나 3년까지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신우(辛禑) 초에 김의(金義)가 조정(朝廷 명나라)의 사신을 죽이고 북원(北元)으로 달아났는데 그 후에 김의(金義)의 수종자가 왔거늘 이인임(李仁任)․안사기(安師琦)가 후하게 대우하는지라 박상충(朴尙衷)이 상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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