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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군 박정 선정비와 박종대 선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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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2-16 09:55 조회5,971회 댓글0건

본문

광한루의 뒤쪽 동편으로 약 25m 지점 춘향사당으로 가는 길 옆 담장 안쪽에
30여개의 많은 비석이 두 줄로 길게 서 있다. 앞·뒤줄 길이가 각각 20여m정도
이며 앞줄과 뒷줄의 사이는 약 4m 정도이다.
이들 비석은 주로 남원지역과 관련을 맺은 부사(府使), 관찰사(觀察使), 어사
(御使)들의 사적비(事蹟碑), 선덕비(善德碑), 선정비(善政碑) 들인데 비석의
앞면에는 당시의 관직과 성명을, 뒷면에는 건립연대를 음각하였다. 건립연대
는 주로 60갑자로 표기하거나 정유재란때 남원에 3천여 원병을 보내준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연호를 기준한 연대를 표기하였다.
이 비석들은 처음 부내 여러 곳에 산재해 있던 것을 해방 후에(요천에 제방
을 축조할 때, 현 천주교 부근) 이들 비석의 보존과 광한루 경내의 미화책으
로 이곳에 모아 관리하고 있다.



□ 부사 박정 선정비(府使 朴炡 善政碑)

비석의 앞면에는 부사 박령공정선정비(府使朴令公炡善政碑)라고 새겨져 있
고, 뒷면에는 숭정3년 12월 세움(崇禎三年十二月日立)이라 새겨져 있어 1630년에 새워진 것으로 보인다. 사각의 농대석과 꽃잎 무늬의 둘레에 둥근머리로 된 가첨석을 갖추고 있다. 박정(朴炡:1596년∼1632년)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자는 대관(大觀), 호는 하석(霞石)이다. 광해군 11년(1619년) 정시문과 을과에 급제, 인조 7년(1629년) 남원부사를 지낼 때 관내의 도적을 소탕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 부사 박종대 선정비(府使 朴宗大 善政碑)

비석의 앞면에는 부사 박공종대선정비(府使朴公宗大善政碑)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O술 2월 세움(○戌二月日立)이라 새겨져 있는데 맨 위의 글자는 마멸되어 알 수 없다. 육각형의 농대석과 망두형의 가첨석을 갖추고 있다. 순조 18년부터 19년(1818년 3월∼1819년 5월)까지 남원부사를 지냈다. 이로 미루어 1826년인 병술년(丙戌年)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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