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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엽(朴燁)호(號) 약창(葯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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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춘서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3-25 05:24 조회4,111회 댓글0건

본문

박엽(朴燁)
선조(宣祖) 30년 (정유, 1597년), 별시(別試) 병과11(丙科11)
인적사항
생년(生年) 경오1570(庚午1570)
자(字) 숙야(叔夜)
호(號) 약창(葯窓)
본관(本貫) 반남(潘南)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가족사항
부(父) 박동호(朴東豪)
조부(祖父) 박응천(朴應川)
증조부(曾祖父) 박소(朴紹)
외조부(外祖父) 이주국(李柱國)
처부(妻父) 조진,유덕신(趙進,柳德新)
이력 및 기타사항
전력(前歷) 유학(幼學)
관직(官職) 평안/감사(平安/監司)
문과.평안도 관찰사겸 병마수군절도사 도순찰사 관포사자.
정신 문화원
[1] 박엽(朴燁)
조선시대[1570-1623(선조3-인조1)]의 문신. 자는 숙야(叔夜)이고, 호는 약창(葯窓). 본관은 반남(潘南)임.
박엽(朴燁)
1570(선조 3)∼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숙야(叔夜), 호는 약창(葯窓). 아버지는 참봉(參奉) 동호(東豪)의 아들이다.
1597년(선조 30)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601년 정언(正言)이 되고, 이어 병조정랑·직강(直講)을 역임하고 해남현감 등을 지냈다.
그뒤 광해군 때 함경도병마절도사가 되어 광해군의 뜻에 따라 성지(城池)를 수축하여 북변의 방비를 공고히 하였고, 황해도병마절도사를 거쳐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6년 동안에 규율을 확립하고 여진족의 동정을 잘 살펴 국방을 튼튼히 하였으므로 외침을 당하지 않았다.
당시의 권신 이이첨(李爾瞻)을 모욕하고도 무사하리만큼 명망이 있었으나, 1623년 인조반정 뒤 광해군 아래에서 심하(深河)의 역(役)에 협력하고, 부인이 세자빈의 인척이었다는 이유로 그를 두려워하는 훈신들에 의하여 학정의 죄로 평양 임지에서 처형되었다.
《응천일록 凝川日錄》에는 1613년(광해군 5)의주부윤으로 있을 때, 형장(刑杖)을 남용하여 가는 곳마다 사람을 죽이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작상(爵賞)을 받으려 하였으며, 사사로이 부비(府婢)를 범하여 음탕하고 더러운 짓을 마음대로 하였다 하였고, 《속잡록 續雜錄》에는 같은해 겨울 호조판서 황신(黃愼)의 계청(啓請)에 의하여 양전(量田)관서를 설치하고 8도의 좌우균전사(左右均田使)를 정하였는데, 그는 호남우도의 균전사가 되어 혹독한 형벌로 폐해가 컸다고 되어 있다.
또한 평안감사 재임 때에는 음탕하고 포학하며 방자하여 거리낌이 없어 새로 익랑(翼廊)70여칸을 지어 연달아 장방을 만들고 도내 명창 100여명을 모아 날마다 함께 거처하며 주야로 오락과 음탕을 일삼았으며, 수를 배로 늘려 결미(結米)를 독촉하여 이행하지 않으면 참혹한 형을 가하였던 관계로, 그가 처형을 당하자 군중이 모여들어 관을 부수고 시체를 끌어내어 마디마디 끊었다
다음백과
약창유고 [葯窓遺稿]
요약
조선 중기 문신·학자 박엽(朴燁)의 시문집. 서문·발문이 없어 필사연대·필사자는 알 수 없다. 권 1 은 시 51수, 척독(尺牘) 1편, 권 2 는 부(賦) 5편, 전(箋)·지(志)·소(疏) 각 1편, 장(狀) 2편, 정문(呈文) 1편, 부록으로 교서(敎書) 4편, 전(傳) 1편 등으로 되어 있다.
내용
조선 중기 문신·학자 박엽(朴燁)의 시문집. 서문·발문이 없어 필사연대·필사자는 알 수 없다. 권 1 은 시 51수, 척독(尺牘) 1편, 권 2 는 부(賦) 5편, 전(箋)·지(志)·소(疏) 각 1편, 장(狀) 2편, 정문(呈文) 1편, 부록으로 교서(敎書) 4편, 전(傳) 1편 등으로 되어 있다. 시의 <양원수패후도창성(兩元帥敗後到昌城)>은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패전하고 창성에 돌아와 읊은 것이다. 장의 <논기철양성수축편부장(論箕鐵兩城修築便否狀)>은 기성과 철성의 복구가 옳지 않음을 논한 글이다. <황조사관정문(皇朝査官呈文)>은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왕위를 이을 때 명(明)나라에서 온 내사관(內査官)에게 보낸 정문이다. 2권 1책. 필사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두산백과--박엽朴燁( 1570 ~ 1623 ) 조선 중기의 문신.본관 :
반남(潘南)호: 약창(葯窓)별칭 : 자 숙야(叔夜) 본관 반남(潘南). 자 숙야(叔夜). 호 약창(葯窓). 1597년(선조 30)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601년 정언(正言)에 이어 병조정랑 ·직강(直講) ·해남현감(海南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광해군 때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성지(城池)를 수축하여 방비를 굳건히 하였다.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기강을 바로 세우고 국방을 튼튼히 하여 재직 6년 동안 외침(外侵)을 당하지 않았다. 권신 이이첨(李爾瞻)을 모독하고도 무사할 만큼 명성을 떨쳤으나, 인조반정 후 처가가 광해군과 인척이었다는 이유로 1623년 인조반정의 훈신(勳臣)들에 의해 학정(虐政)의 죄를 쓰고 사형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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