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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東尹(副率公)의 墓所 移葬時 野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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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4-28 14:31 조회3,7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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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東尹(副率公)의 墓所 移葬時 野史
   작성자 : 박원우


   글자 크기 : 보통/크게/가장크게
작성일 : 2010-04-22 오전 8:40:02   

朴東尹(副率公)의 墓所 移葬時 野史
洪陵을 도로 金谷에 정하였다
금곡에 朴東尹의 墓所가 있어 또한 파헤치게 되었다
그의 후손 朴齊馨이 드러난 유골을 거두기 위해 그곳에 이르렀는데 그때 마침 땅이 얼어붙어 있었다 파헤처 무너진 사이에서 표석을 얻었는데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木, 卜 ”이 일찍이 점지한 땅이 마침내 밝은 세상의 능이 되었으니 洪氏 - 洪址로 이름하여 황제의 업을 도울 것이니 모름지기 군신이 복을 함께 누리고 국운의 길고 원대한 壙穴(墓穴)을 더함이라
無學이 어찌 알았으리오 ?
神師가 가려낸 곳이로다 그 당시의 계시를 따를 것이니 俗師의 잘못된 말을 들어 찾으려 하지말라 陽宅은 오히려 陰宅과 같은 것이니 이는 荊帝(관우를 가리키는 듯)이후로 기간이
400년 이로다,,
글자는 무릇 62자 였다 또 曾人秘埋(사람이 일찍이 모르게 묻어 두었다)네자가 쓰여 있었다
그것은 또한 간사한 사람들이 몰래 묻어 놓고 장차 그것을 가지고 임금을 현혹시켜 총애와 이득을 얻으려 한 것이었다 그런데 박제형은 우연히 그것을 얻어 보고 놀랍고 괴이하여 감히 숨길수가 없어서 그것을 일가인 朴定陽에게 보였다
박정양이 대궐에 들어가 이일을 아뢰자 임금은 매우 기뻐 하는듯하였으나 이윽고 끝내 말이
없었다 박제형은 求禮에 살아서 나와는 잘 아는 사이 였다 성실하고 신중하여 감히 비행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대하여 그 전말을 설명 하면서 나에게 그 이일을 기록해 달라고 청하면서 집에다 보관 하겠다고 하였다 (辛丑(1901年)光武5年)
(본고는 梅泉野錄에서 옮겨온것임,원문생략,박원우 조사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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