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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짇날에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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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서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0-04-30 22:26 조회3,992회 댓글0건

본문

"삼짇날에 대해서" 세시풍속.hwp 의 실제파일에서 발췌했습니다.

却� 하게 마련이었다. 중국에서도 옛날에는 3월 중의 처음 사일(띠 로 따져 뱀날)을 명절로 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상사일(그 달의 첫 뱀날)이라고 하였으나, 위날, 진나라 때부터는 초 사흗날로 아주 일정하게 정해져 중삼(3월 3일은 3자가 중복되어 있음)이라고 불리게 되었 다.

중국에서 이렇게 삼월 삼짇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겨울 동안 추워서 갇혀 있다가 따뜻한 봄을 맞 아 해방을 즐기려는 것이다. 그래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들어가 몸을 깨끗이 씻고, 들에 나가 새 움을 트는 푸른 풀을 밟아 대지의 새 생명에 접촉하고, 굽이굽이 흐르는 물가에서 시를 지으며 즐겼다.

답청 (踏靑) -답청은 화류와 비슷한 개념으로 봄에 야외로 나가 푸른 풀밭에 밟는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 이다. 답청절이라고도 하는 삼짇날에 서울 사람들은 필운대(弼雲臺)의 살구꽃, 북둔(北屯) 의 복숭아꽃, 동대문밖의 버들에 많이 모여 봄놀이를 즐겼다. 필운대는 대궐의 서쪽 언덕밑인 지금의 배화여고 뒤쪽인데, 이 근처는 살구나무가 특히 많 았고 봄이면 여러 꽃들이 만발해서 사람들이 꽃구경 겸 답청을 즐겼다. 북둔은 지금의 성북동으로 산골짜기엔 복숭아나무가 많아서 도화동, 북사동, 북적골이라 부 르기도 했고 묵사(墨寺)란 절이 있어서 묵사동이란 이름도 있다.

2. 삼짇날의 풍속

삼짇날 사람들은 꽃을 찾아 날아드는 여러 가지 나비들을 보고 점을 치기도 하는데,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 제일먼저 보게되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좋다고 생각하나 흰나비를 먼저 보게되면 나쁘고 특히 부모의 상(喪)을 당하게 되는 흉조(凶兆)라고 여겼다. 이러한 속신(俗信)은 나비보기 뿐만아니라, 경남지방에서는 3일에 바람점을 보는데 오전에 바람이 불면 초장(初場)에 삼 값이 비싸고 오후에 바람이 불면 파장에 값이 비싸다고 하였다. 또 이 날 바람이 불면 삼농사가 잘 되지 않고, 비가오면 콩과 팥이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이 외에도 이날 몇가지 속신에 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삼짇날 머리를 깍으면 머리결이 좋고 또 잘 자란다.

봄에 처음 보이는 여릅(야생삼)을 보고 "야 삼 봐" 하고 먹으면 학질에 걸리지 않는다.

할미꽃이 처음 필 때 세잎을 따서 먹으면 학질에 걸리지 않는다.

서쩍새가 소짝소짝하고 울면 그해 농사가 흉년이들고, 소탱소탱하고 울면 풍년이 든다.

이 무렵이면 날씨도 따뜻해져서 나무는 꽃을 피우고 들녘에는 봄나물이 돋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산에는 이미 진달래와 개나리가 만발해여 온통 분홍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고, 이꽃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기도 한다. 삼짇날에는 여자들이 머리를 감는 일이 많았는데, 그것은 이날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소담스러워지고 윤기가 나며 부드러워진다고 믿어서이다. 또 가정에서는 자식을 두지 못한 부녀자는 자식을 얻기 위하여 기도를 드리는데 그 비는 대상은 산신(産神),부처 등 여러이 되었다. 우리민족은 아들을 더 원하는 마음

이 깊으며 조선시대에는 자식을 낳지 못하면 쫓겨나게 되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라 하여 중벌시하는 풍습도 있었다. 아들 얻기는 비는 그시기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고 수시로 하였으나 충북의 진천(鎭川) 지방에스는 삼짇날부터 초파일 사이에 부녀자가들이 무덩을 불러 용왕당이나 삼신당에 가서 굿을 하고 절(寺刹)에 가서 빌었는데, 그곳에는 행렬이 끊이지 않고 사방의 여인들이 모두와서 기도하므로 마치 시장이 선 것처럼 혼잡을 이루었다고 한다.

(1) 시제사 -조선시대 순조(純祖)대에 김매순(金邁淳)이 지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실린 삼짇날의 시제사(時祭祀)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나라 풍속에 기제사(忌祭祀)는 중하게 여기지만 시제(時祭)는 중하게 여지지 않는다. 이는 오랑캐의 비루(鄙陋)한 풍속에서 벋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왕조{조선조} 중엽에 이르러서 어진 선비가 배출되고 사대부 중에 예(禮)를 숭상하는 자가 많아져 비로소 시제(時祭)를 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백성들은 대체로 가난하고 검약(儉略)해서 사계절의 시제를 모두 행하는 자가 드물었고, 봄 가을 두 번 행했는데, 봄은 삼짇날에 지내고 가을은 중양절(重陽節;9월 9일)에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2) 접점-나비점 - 삼짇날에는 나비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에 나비점을 치는데, 호랑나비나 노란나비를 처음 보면 길조(吉兆)로 여기고 흰나비를 먼저 보면 흉조(凶兆)로 여긴다. 꽃들 사이를 나는 나비에 대한 이야기로는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에 나오는 우주만물의 진리를 엿볼 수 있는 장자의 나비 일화를 떠올릴 수 있다.

3. 삼짇날의 놀이

삼과들에 꽃이 피는 이 때쯤이면 유생(儒生)은 유생들끼리, 농부는 놀부들끼리, 부녀자는 부녀자들끼리 모여 들로 산으로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서 음식을 먹어가며 시조를 지어 읊거나 춤과 노래로 하루를 즐기는 풍속이 있어 왔다. 이를 화류(花柳)놀이 꼬는 화전놀이라고 한다. 이 화류놀이는 남쪽지방으로 갈수록 유명했는데 특히 부녀자들은 봄을 맞아서 시집살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하루를 즐겁기 놀았던 것이다. 산에서 내려올 때에는 함빡 핀 진달래꽃을 꺽어서 머리에 꽂거나 꽃방망이를 만들기도 한다. 이 화류놀이 때에 부르는 노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제화제화 제화하

얼씨고 절씨고 좋을씨고

춘삼월 화전놀이를 간다.

춘향의 방문 앞

이도령 걸음으로

아그작 아그작 걸어서

거들거리고 나간다.

세모시 마당 앞에

금자라 걸음으로

아그작 아그작 걸어서

거들거리고 나간다.

둥그다당실 둥그다당실

에라 두덩실

연자 부리고

마- 거리고

건들거리고 나간다.

제주도에서는 3월3일이 되면 정의원(旌義縣監)이 관속과 육방 하인들을 데리고 성읍(表善面 城邑里) 성북(城北) 영주산 서쪽에 있는 정수암이라는 곳에가서 큰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 잔치를 '정소암 화전놀이'라고 하였다. 이 때 노는 가운데 기생들은 '신목사 허리' '사랑가'등의 민요를 부르면 사령들은 칼춤을 추는데, 이칼춤은 비명에 죽은 죄인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행교의 선비들은 글을 지어 풍월을 다투었으며, 이 때에 장원을 한 사람에게는 황봉(黃封)이라 해서 술로 상품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의 정의현!

안에는 각 면에서 모여든 양반들도 참석하는데, 이 자리에서 어려운 일을 진정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날만 백성이 관리에 대해서 얼마쯤 불경한 태도를 보여도 관에서는 벌주지 않았다고 한다. 함남 영흥 지방에서는 삼짇날 동류수(東流水)에 몸을 씻으러 가는데, 이곳에서 몸을 씻으면 한 해의 재액(災厄)을 떨어 버린다고 한다. 시인과 묵객(墨客)들도 강변 정자에 모여 시를 읊고 화전놀이를 즐겼다. 이때 쯤에는 들에 여러 가지 풀들이 돋아나고 나뭇가지에는 물이 올라서 소년 소녀들은 이러한 풀과 나뭇가지로 여라 장난감을 만들어 가지고 놀았다. 소녀들은 담밑에 나는 각시풀을 한줌씩 따다가 추려서 한쪽 끝을 실로 묶어 머리채를 만들고 나무를 깍아서 그것을 묶어 머리채를 만들어서 각시놀이를 한다. 풀각시의 머리는 땋듯이 하든가 쪽을 지은 것처럼 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예쁜 색 헝겊으로 치마와 저고리를 만들어 입힌다. 때로는 풀각시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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