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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연암공(휘 지원)의 간략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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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암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0-05-16 17:03 조회4,084회 댓글0건

본문

안녕하십니까 !

먼저 종원님이 올려주신 글 자세히 읽었으며,저의 부족한 글에 공감하여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특히 연암공의 생애와 관련된 귀중한 자료를 읽으면서 제가 미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된 점도 매우 기뻤습니다.

사실 연암공의 선친묘소의 소재에 대하여 궁금하였는데,비로서 양주에
모셔져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연암공 선친에 대하여 특히 주목하는 점은 그동안 잘못
알려진 내용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그 진실을 정확히 알자는 취지입니다.

저는 그동안 잊혀진 인물들에 대한 추적을 하였는데,기본적인 연구방침은 
원래의 진실을 알자는 것이며,이번 선친에 관한 문제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과연 어떤 사유로 65세의 수를 누리고 가신 분이 왜 젊은 나이
에 돌아가신 것으로 묘사가 된 것인지 저로서는 궁금할 따름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왕조의 북학파의 영수로서 대표적인 실학자이시면서
동시에 '열하일기' 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대문호이신 연암공의 선친이
왜 평생 벼슬을 안하셨으며,그분과 관련된 기록을 찾기가 힘든 것인지
이번 기회에 그 내력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연암공의 출생지가 서울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사실 그
구체적인 지명까지는 몰랐음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이번 기회에 연암공의
생가터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규명을 하고 싶습니다.

비록 묘소는 안타깝게도 북한지역에 모셔져 있다고는 하나 그 생가터는 
서울에 위치하고 있으니 만큼 대종중에서 깊은 관심을 보여 주시면 감사
하겠으며,우선 저부터라도 사명감을 가지고 추적할 생각입니다.   

사실 이런 내용까지 올릴 마음은 없었으나 종원님이 저의 글에 대하여 공감
하여 주시고 이리도 연암공에 대한 자세한 행적까지 올려 주셔서 저도 그러
한 종원님의 정성에 화답하는 의미에서  이런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이번 기회에 문중의 종원님들이 우리 문중의 자랑스러운 선조이신
연암공에 대하여 좀더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10년 5월 16일(일) 문 암 올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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