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 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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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박종채 지음 박희병 옮김의 <나의 아버지 박지원> 에서 옮
긴 글입니다
지계공(연암 박지원 처남)은 다음과 같은 제문을 지어 아버지를 애도 하셨다
유세차 모월 모일.
처남 이재성은 삼가 제문을 받들어
연암 박공의 영령에 곡하며 영결
합니다.
아아, 슬프도다!
사람들은 말들을 합니다.
문자에는 정해진 품평이 있고
인물에는 정해진 평판이 있다고
그러나 공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마치 저 굉장한 보물이
크고 아름답고 기이하고 빼어나나
마음과 눈으로 보지 못하면
이름하기 어려운 것과 같지요
용을 아로새긴 보물솥은
밥하는 솥으로 쓸 수 없고
옥으로 만든 술잔은
호리병이나 질그릇엔 어울리지 않지요
보검이나 큰 구슬은
시장에서 살 수 없는 법이고
하늘이 내린 글이나 신비한 비결은
보통의 책상자 속에 있을 턱이 없지요.
신령한 거울은 요괴를 비추고
신령한 구슬은 잊은 걸 생각나게 하지요.
끊어진 줄을 잇는 걸 생각나게 하지요
끊저진 줄을 잇는아교가 있는가 하면
혼을 부르는 향(香)도 있답니다
그러나 처음 듣고 처음보면
이상하고 기괴할밖에요
그래서 한번 써보지도 않고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요
아아, 우리 공은
명성은 어찌 그리 성대하며
비방은 어찌 그리 많이 받으셨나요?
공의 명성을 떠받들던 자라 해서
공의 ‘속'을 안 건 아니며
공을 비방하던 자들이
공의 ‘겉’을 제대로 본 건 아니지요
아아, 우리공은
학문은 억지로 기이함을 추구하자 않았고
문장은 억지로 새로움을 좇지 아니했지요,
사실에 충실하니 절로 기이하게 되고
깊은 경지에 나아가니 절로 새롭게 된 것일뿐.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도
공에게 가면 훌륭한 문장이 되고
울고 화내고 꾸짖는 속에
진실 됨이 담겨 있지요
강물이 굽이굽이 흘러
안개 속에 물결이 넘실거리듯.
첩첩이 솟은 바위 사이에
노을과 구름이 일어나듯.
문장의 천태만변(千態萬變)은 절로 이루어진 것이지
언지로 남을 놀래려는 게 아니었지요.
무실(務實)을 중시한 관중(管仲) 과 상
앙(商鞅)을 학자들은 입에 올리기 부끄
러워하고
가의(賈誼)와 육지(陸贄)의 문장을
문인들은 배우려 하지 않았지만
공은 자신의 소임을
이 분들에 견주었지요
재주 그토록 높으면서
뜻은 어찌 그리 낮추셨는지.
말세의 문인들은
고문(古文)을 짓는다고 스스로 뽐내며
거칠고 성근 것을 답습하고
껍데기와 찌꺼기를 본뜨면서
깨끗하고 질박한 양 착각하나
실은 너절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지요.
공은 이 풍속 고치려다
오히려 사람들의 분노를 샀었지요
이는 흡사 위장병 환자가
맞있는 음식을 꺼리는 것과 같고
눈병 앓는 환자가
아름다운 무늬를 싫어하는 것과 같지요.
공을 좋아한다는 자들조차
공의 진수를 안 건 아닙니다.
하찮은 글 주워다가
보물인양 생각하고
우언이나 우스갯소리를
야단스레 전파했으니
이 때문에 헐뜯는 자들
더욱 기승을 부렸지요.
“우언은 궤변으로 세상을 농락한 것이
고
우스갯소리는 실상이 아니요
거만하게 세상을 조롱한 것이다!”
좋아한다는 자나 홀뜯는 자나
참모습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지요
하지만 떠들어대는 저 자들이
공과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공의 장점과 단점을 제가 한번 말해보리
다.
공은 기세가 드높아서 1만 사람을 압도
했지만
명리에 대해서는 가까이하길 두려워했
지요
세 가지 까다로운 문제를 옳게 밝히셨으
나
세상 유행에는 어두웠지요
가장 참지 못한 일은 위선적인 무리와
상대하는 일.
그래서 소인배와 썩은 선비들이
공을 원망하고 비방했었지요
중년에는 연암골에 들어가셔서
세상에 자취를 감추셨지요.
세상을 경륜할 큰 뜻 못 펴자
명상에 잠기며 쓸쓸히 지냈지요
우연히 중국을 여행하게 되어
천하의 형세를 살피셨지요.
그리하여 천하의 안위(安危)를 논하고
중화와 오랑캐를 분명히 구별했지요
만년에 별슬한 건 가난 때문이었으니
서글프게 짐을 챙겨 임지로 향했지요.
벼슬 그만두려고 생각하신건
책을 져술하려는 마음 간절해서였지요
편안히 지내시던 중 그만 병이 나
말과 거동이 불편하셨지요.
그래서 품은 뜻 펼치지 못하고
술술 나오던 글도 그만 그쳣지요
묘하도다! 저 성명(性命)을 촛불에 비유
한 말씀
형질(形質)이 초라하면 마음은 심지와
같아
형질이 순수하고 마음이 올골 받아야
촛불처럼 빛난다고 하셨지요.
이처럼 식견이 높고 이치가 정밀하니
덧 붙일 말이 있겠습니까.
절필하여 불완전한 원고밖에 전하지 않
으니
누가 다시 그 심오한 이치 깨달을는지?
아아! 우리 공은 남과 화합 못하여서
이웃이 드물었지요.
제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을 따라 배우려 했었지요.
세상에 크게 쓰이지 못한 공을 위해
그 누가 탄식을 하겠습니까?
나의 서투른 금솜씨 때로 칭찬해주셨으
며
상자에 지으신 글 100편 넣어두시고는
제가 피병해주는 걸 좋아하였더랬지요.
아 아! 우리 공은
그 사귐이 연배(年輩)를 뛰어넘어
선배에까지 미쳣었지요
우리 아버지께 감복한 건
그 고렬함과 지조 때문이었으니
잘 알려지지 않은 언행과 덕행을
제문에다 낱낱이 쓰셨지요.
어이해 붓 들어 비문을 짓지 못하셨나요
공을 형님처럼 여겼지요.
머리가 허옇도록 늘 그랬으니
새삼 무얼 말하겠습니까?
숲이 우거진 저 무덤은
옛날 사시던 연암골에 가까운데
현숙했던 부인께서 먼저 잠들어 계시지
요.
추운 새벽 발인하니
눈과 얼음 길에 가득
병으로 멀리 전송하지 못하옵고
홀로 서서 길이 통곡하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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