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공에 대한 잘못된 정보

연암공의 아버지 (휘)사유(師愈)께서 연암공이 어릴 때 세상을 떠난 것처럼 잘못 기록된 단적인 예는 초중고등학생들이 많이 보는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1996년 들녘사 출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박영규의 책 386-389쪽에 보면 연암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박지원은 1737년 한성 서쪽 반송방의 야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학자와 고관을 배출한 명문이었다. 5대조 박미는 문예 서도의 대가로서 선조의 부마이기도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 박필균은 정2품의 지돈녕부사를 지냈다. 하지만 아버지 박사유는 그가 어릴 때 미처 관직에도 임용되지 못하고 요절하였으며, 어머니 역시 일찍 세상을 떴다. 그는 부모를 일찍 여읜 탓으로 조부에 의해 양육되었다.” (이하 생략)

이러한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하여 인터넷 세대들이 자주 이용하는 위키피디아의 글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다음은 연암공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인물 소개입니다.

“박지원은 1737년(영조 13) 한양 서부(西部) 반송방(盤松坊: 야동(冶洞))에서 박사유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16세에 조부가 사망했다.” (이하 생략)

그런데 이러한 오류는 이보다 훨씬 전의 문헌에서도 발견됩니다. 오늘날 연세 높은 분들이나 학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國朝人物志』에도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표현이 나옵니다. 다음은 『國朝人物志』에 나오는 연암공에 대한 기록의 일부입니다.

“字仲美號燕岩潘南人知事弼均孫錦陽尉瀰五世孫早孤發憤力學與洪大容演泰西地球之說以爲地一轉爲一日.....”

위의 기록에 보면, “早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어버이를 일찍 여의다.’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바, 아마도 후세의 사람들이 이 표현 때문에 혼란을 일으킨 점도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잘 아시겠지만, 『國朝人物志』는 한말의 학자 안종화(安鍾和: 1860~1924)가 지은 책으로 조선 건국부터 철종(哲宗)까지의 주요인물에 대한 행적을 적은 책인데 1909년(융희 3)에 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튼 1900년을 전후하여 연암공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나타난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증명되듯이 한 두 사람의 잘못된 말 한 마디, 글 한 줄이 후세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엉뚱한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할 때에는 한 두 가지의 자료에 전적으로 의존하거나 자신이 믿고 싶은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기록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다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료 하나(1)의 기록만을 금과옥조처럼 믿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것이 인물(人物)과 관련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반드시 종적ㆍ횡적 점검과 확인을 거쳐야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연암공의 아버지 (휘)사유께서 벼슬을 못하신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다만 한 가지 짐작해 볼만한 것은, 비록 (휘)사유의 아버지이신 (휘)필균께서 벼슬이 자헌대부(정2품 하계) 지돈녕부사에 이르렀기는 했지만 성품이 워낙 강직하시고 청렴하신 분이었다고 하므로 아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를 원하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추측에 불과한 것이고 실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집안의 특수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었겠으나 역사적인 측면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참고 1: 연암공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연보는 "개를 키우지 마라"(간호윤 지음, 2005년 9월 5일 경인문화사 출간)라는 책에 나와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비슷한 내용의 연보가 한국고전번역원 싸이트에서도 발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