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화 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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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우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0-06-03 23:00 조회4,004회 댓글0건본문
橘化 爲枳 (귤화 위지)
(귤나무귤(橘), 변할화(化), 될위(爲), 탱자지(枳))
“귤이 변하여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환경에 따라 만물이 변할수 있다는 말이다]이말은 춘추시대(春秋時代) 제(齊)나라의 명재상으로 유명했던 안영(晏嬰)의 사적을 수록한 “안자춘추(晏子春秋)”[內雜下]에 나오는 말이며 “남귤북지(南橘北枳)”라고도 한다
어제(6월2일) 동시에 전례없는 8번의 투표를 하였다 그동안 출사표(出師表)를 낸 후보자로부터 천하태평(天下泰平)과 구국안민(救國安民)의 묘책(妙策)을 들으며 “맛있는 귤인줄알고 찍었던이 못먹는 탱자같은 일이나 하지 않을지”?? [귤보다 더 맛있는 유자같은 일만 해야 할 터인데 걱정이 앞선다,]
또 죽어서 무덤에 [顯考學生某氏之墓] 나 면하고 [顯考00議員某氏之墓] 라는 墓表나 써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기를 빈다, 어떤 인연(因緣)있는 지방의 29명이나 되는 출마자의 실세없이 걸려오는 휴대전화의 문자 멧세지를 받으면서 착잡한 심정으로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 민요에
사람마다 벼슬하면 농부 될자가 그 누구이며
의원(醫員)마다 병고치면 북망산천(北邙山川))은 왜생겼나
또
총명이 뛰어난 것을 영(英)이라 하고 담력이 큰 것을 웅(雄)이라 한다
장량(張良)은 총명하되 담력이 부족하고 항우(項羽)는 담력은 있지만은 총명은 부족하다
중국 위나라 유소(劉邵) 라는 분이 쓴 [인물지]에는 [영웅(英雄)]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또
王이 죽으면 이름을 대신하여 먼저 諡號를 올리고 땅에 葬事하면 陵號를 올려 무덤을 구별하고 宗廟(祠堂)에 位牌를 모시면 廟號를 올려 代數를 구분하는데 『예기에 공(功))이있는 왕은 조(祖)가 되고 덕(德)이있는 왕은 종(宗)이 된다』하였으니 “創業曰 祖요 守城曰 宗이라” “祖가 宗보다 나은 것이라 한다” 朝鮮은 27왕 519년 동안 祖가 7왕이요 宗이 20왕이라,
시조
청강(淸江)에 비듯는 소리 긔 무어시 우읍관대
만산홍록(滿山紅綠)이 휘드르며 웃는고야
두어라 춘풍(春風)이 몃 날이리 우을때로 우어라
(청나라의 호령소리만 들을것이 아니라 환향여(還鄕女)의 울음소리도 들어야 하지 안았을까,)
(봉림대군, 작, 고시조문학론에서)
귤화위지(橘化爲枳) 의 고사(故事)
춘추시대(春秋時代) 제(齊)나라의 명재상(名宰相)인 안영(晏嬰)이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초대를 받았다 초(楚)나라 영왕(靈王)은 이 소식을 듣고 안영은 제나라의 뛰어난 인재인데 지금 그가 오고 있다고 하오 내가 그를 골탕 먹이고 싶은데 어떤 방법이 좋겠소 !
하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어떤신하가 “신이 죄인 한명을 포박하여 데려오겠읍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영왕이 말했다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잘못했소” 신하는 “제나라 사람이고 도둑질을 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얼마 후에 안영이 초나라에 도착 하자 영왕은 인사말을 건내자 마자 바뿌게 입을 열었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소 ? 하필 경(卿)과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낸 이유가 뮈요? ”
영왕은 당시 제나라를 우습게 여겼기 때문에 안영이 비록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하나 외모는 볼품 없고 키도 아주 작았기에 이를 빗대어서 다소 무례하게 굴었다 그러나 안영은 개의치 않고 태연히 대답하였다 “그 까닭은 이러 하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서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곧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臣)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초나라로 오게 된 것입니다 ”
안영의 능수능란(能手能爛)한 말솜씨에 한풀 기세가 꺽인 영왕은 은근히 화가 났다 때마침 그 앞으로 포리(捕吏)가 제나라 사람인 죄인을 끌고 가자 영왕은 안영에게 들으라는 듯 “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을 잘하는가 보오” 하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안영은 영왕의 계속되는 비아냥거림에 굴하지 않고
“제가 듣자하니 귤이 회수(淮水) 남쪽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수 북쪽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잎은 서로 비슷하나 그 실제의 맛은 다르니 그러한 까닭은 무엇 이겠습니까,그것은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지금 저 죄인은 제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랄때는 도둑질을 하지 않다가 초나라에 들어와서 도둑질을 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초나라의 풍토가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잘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하고 차분하게 대답 하였다
연거푸 두방을 앋어맞은 영왕은 할말을 잃었다 안영의 기지에 놀란 영왕은 “성인(聖人)과는 장난하지 말라고 했거늘 오늘 제가 도리어 큰 허물을 얻었습니다 ” 하고 정중히 사과 하였다
이로서 제나라 출신의 죄수를 안영에게 보여줌으로서 안영을 꼼짝못하게 하려던 영왕의 계획은 결국 실폐로 끝나게 되었다 이윽고 영왕은 크게 잔치를 벌여 안영을 환대하는 한편 다시는 제나라를 넘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한다,,,
(초하에 운월당에서 度平閑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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