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등단 40 주년 맞아 산문집
페이지 정보
한가람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0-08-02 08:50 조회4,387회 댓글0건본문
경향닷컴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2010. 8. 2)
박완서 등단 40주년 맞아 산문집 출간 이영경 기자
댓글 0ㅣ 0 ㅣ 0
ㆍ‘6·25서 월드컵까지’ 희로애락의 기
억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
올해로 팔순과 함께 등단 40주년을 맞는 소설가 박완서씨가 신작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를 펴냈다. 한국문학의 원로라고 할 수 있는 박씨는 산문집의 머리글에서 “또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밝혔다.
2007년 산문집 <호미> 이후 3년 동안 문학 잡지와 일간지 등에 틈틈이 발표해 온 글들을 묶은 이번 산문집에서 박씨는 집앞 정원을 가꾸고 후배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다니는 일상의 소소한 풍경부터 그가 소설을 쓰도록 추동한 ‘원체험’이 된 6·25 전쟁의 아픈 기억과 천안함 사태, 한·일 월드컵 등에 대한 생각, 그보다 먼저 세상을 뜬 김수환 추기경과 소설가 박경리씨에 대한 추모의 글 등을 다채롭게 풀어놓는다.
경기도 구리의 아치울 마을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박씨는 아침마다 앞뜰을 맨손으로 가꾼다. “잔디밭에 등을 대고 누우면 부드럽고 편안하고 흙 속 저 깊은 곳에서 뭔가가 꼼지락대는 것 같은 탄력이 느껴진다”는 박씨가 “매니큐어 대신 손끝에 푸른 싹이 난 열 손가락을 하늘 향해 높이 쳐들고 도심의 번화가를 활보하는 유쾌하고 엽기적인 늙은이를 상상해본다”고 발랄하게 말할 때는 그의 나이가 무색하게 느껴진다.
6·25 전쟁에서 겪은 피붙이의 끔찍한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 “억울한 사정을 외치고 싶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마흔의 나이에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한 박씨에게 전쟁은 아물 수 없는 상처이자 문학의 원천. 그는 천안함 사태를 보면서 “젊은 죽음에 대한 애통한 마음도 쉬 가라앉지 않거니와 그 사건에 낀 우리의 입장, 주변국과 강대국의 태도, 북에 대한 의구심과 적개심, 그 정당한 분노조차 자제해야 할 것 같은 그래도 전쟁만은 피해야지 하는 마지막 평화주의”를 느낀다.
“인정머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냉정한 단문”으로 이뤄진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을 읽으면서도 그는 병자호란이 아닌 6·25 전쟁을 떠올린다. 박씨는 병자년이 아니라 전쟁이 벌어지던 해인 1950년 경인년 1·4 후퇴를 떠올리며 부상당한 오빠 때문에 피란도 가지 못하고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 남아 견뎠던 추위를 떠올리며 혹독한 감기로 석 달을 고생했다고 털어놓는다.
이밖에도 2002년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내가 축구에 열광할 수 있으리라는 걸 꿈에도 몰랐다”며 “월드컵이 있기 전까지는 무슨 재미로 살았나 싶게 하루하루가 가슴이 울렁거리고 살맛이 났다”고 말할 때는 소녀 같은 풋풋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박씨는 거리를 가득 채운 ‘붉은 악마’의 응원을 보며 “우리에게 빨강은 의식의 한 올을 가시처럼 찌르고 잡아당기는 이상한 빛깔이었다”며 “붉은 악마들은 우리 세대의 이런 고질적이고도 황당한 빨간 빛깔과의 악연을 단숨에 날려버렸다”고 말한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완서
"글에서만은 나잇값을 떳떳하게 하고싶
다"
| 기사입력 2010-08-01 08:43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소리 없이 나를 스쳐간 건 시간이었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줬다. … 나를 스쳐 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은 소설가 박완서(79)가 새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냈다. 2007년 초 산문집 ‘호미’ 이후 쓴 글을 묶었다.
책에는 사람과 자연을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새삼 발견한 기쁨과 경탄이 그득 차 있다. 또 그로 인한 감사와 애정도 오롯하게 담겼다. 박씨는 “내 소유가 아니어도 욕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며 “살아 있는 것들만이 낼 수 있는 기척을 감지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전한다.
이와 함께 꿈틀대는 생명력의 경이로움을 담아 “내 몸이 (자연에)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며 죽음과 가까워진 생에 대한 성찰 또한 담백하지만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한다. 특히 “경제 제일주의가 만들어낸 황폐한 인간성”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하지만, 무너져 내린 남대문과 천안함 침몰 사건 앞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뻔뻔스러운 정의감”과 “비겁한 평화주의”를 반성하기도 한다.
‘영원한 현역’이라는 별명을 지닌 작가답게 여전히 글쓰기를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기력이 있을 때까지는 계속 글을 쓸 것”이라며 “나이가 들면서 예전처럼 빨리 쓰지는 않지만 좋은 문장을 남기고 싶어서 더 공들여 쓴다”고 귀띔한다.
등단 40주년에는 굳이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로 인해 어떤 큰 구속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작가로서나, 한 인간으로서 존재의 영속성에 대한 끝없는 탐구 때문이다. 아직 박씨 안에 가지 못한 길, 어딘가에 있을 더 아름다운 길을 찾아 나설 자유를 향한 의지와 내적인 충동이 가득하다는 의미다.
박씨는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며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自閉)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줬다”고 전했다.
“나를 지탱해주는 이 양다리가 아직은 성해서 이렇게 또 한권의 책을 묶을 수 있게 된 것을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다. 늙어 보인다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고, 누가 나를 젊게 봐준 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은 평범한 늙은이지만 글에서만은 나잇값을 떳떳하게 하고 싶다.”
책에는 문태준 시집 ‘그늘의 발달’과 김연수 소설 ‘밤은 노래한다’ 등 여러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을 정리한 글도 있다. 아울러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 소설가 박경리, 화가 박수근 등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추모글도 실렸다. 268쪽, 1만2000원, 현대문학
realpaper7@newsis.com
박완서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세계일보>입력 2010.07.30 (금) 17:34
“십년만 더 젊어질수 있다면 완벽하게 정직한 삶을
마당쇠 없어도 나혼자 먹고 살 농사짓고 살고싶어”20100730002885
“내가 십 년만 더 젊어질 수 있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게 한 가지 있긴 하다. 죽기 전에 완벽하게 정직한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다. 깊고 깊은 산골에서, 그까짓 마당쇠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나 혼자 먹고살 만큼의 농사를 짓고 살고 싶다.”(231∼232쪽)
우리네 세는 나이로 팔순에 이른 황해북도 개풍 출생 소설가 박완서씨가 최근 펴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에서 피력한 소회다. 거두절미한 채 문맥으로만 본다면 작가가 그동안 살아온 삶이 정직하지 못했다는 자의식에 시달려 왔을 법한데, 그리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작가 박완서가 그동안 써온 모든 작품들에서 한결같이 드러내거니와, ‘정직하고 싶다’는 심정은 시대의 폭력과 개인사에 드리운 깊은 상처를 극복하려는 자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처럼 끊임없이 솔직하고 정직하려는 태도야말로 독자들과 깊은 교감의 뿌리를 내려 작가 박완서를 한국사회에 우뚝 세워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서두에 인용한 작가의 ‘정직’이란, 물론 자연을 닮은 삶을 살고 싶다는 단순 수사일 터인데 사족이 길었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작가로서의 나의 새로운 다짐이 있다면 남의 책에 밑줄을 절대로 안 치는 버릇부터 고쳐볼 생각이다. 내 정신상태 내지는 지적 수준을 남이 넘겨 짚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도 일종의 잘난 척, 치사한 허영심,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폐증이라고 생각되자, 그런 내가 정떨어진다.”(155∼156쪽)
팔순의 작가 박완서는 다시 반성한다. 책이 귀했던 여학교 시절 대부분의 책을 빌려서 보았는데 섣불리 밑줄을 쳤다가 남이 나를 경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밑줄 같은 건 절대로 안 칠 것 따위나 신조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런 나는 얼마나 겁쟁이인가.” 이러한 태도의 배면에는 그가 일본 여행에서 분석한 일본인들의 ‘지나친 친절’의 원인이 그에게도 그대로 다시 적용될 법하다. 박완서는 “그들(일본인)의 친절이 우월감의 소산이라면 우리의 불친절은 열등감의 소산일지도 모르겠다”(127쪽)고 언급했거니와, 그가 충분히 자신의 상처와 추억을 정직하게 직면해 왔다는 ‘우월감’이야말로 반성적 태도의 흔연한 자산일 것이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아들이 죽는 참척의 고통을 겪으면서 혼절했다가 장례가 끝난 후 아들 친구들이 많이 왔다 갔다는 말에 “내가 눈을 번쩍 뜨더니 그 친구들 뭣 좀 잘 먹여 보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고 기술하는 장면(93쪽)은, 아무리 감추려도 여밀 수 없는 큰 모성이어서 박완서 문학의 깊은 품을 넉넉하게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12년 전 경기 구리시 아치울 마을로 이사가 마당을 가꾸고 숲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그가 이번 산문집에서도 그 마당의 노동에 대한 소회를 풀어놓았다. 아늑하고 편안한 대지와의 교감이 작가 박완서의 완성될 평화를 예감케 한다.
“잔디밭에 등을 대고 누우면 부드럽고 편안하고 흙 속 저 깊은 곳에서 뭔가가 꼼지락대는 것 같은 탄력이 느껴진다. 살아 있는 것들만이 낼 수 있는 이런 기척은 흙에서 오는 걸까, 씨앗들로부터 오는 것일까. 아니 둘 다일 것 같다. 흙과 씨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적이 많다. 씨를 품은 흙의 기척은 부드럽고 따숩다.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15쪽)
이 산문집은 본격 에세이들을 모은 1부 ‘내 생애의 밑줄’과, 2부 책들에 대한 짧은 글 모음 ‘책들의 오솔길’, 그리고 김수환 박경리 박수근을 추모하는 글로 채워진 3부 ‘그리움을 위하여’로 구성됐다. 박완서씨는 책머리에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 주었다”면서 “늙어보인다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고, 누가 나를 젊게 봐준 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은 평범한 늙은이지만 글에서만은 나잇값을 떳떳하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구절 한구절 그린 ‘팔순 작가의 삶’…
박완서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2010.07.30 18:03]
원로 작가는 언어에 앞서 세월로 글을 쓰는 것 같다. 소설가 박완서(79)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는 불모의 역사에 대한 심원하고도 먹먹한 기록이다. 여기에 올해 우리 나이로 팔순이라든가, 등단 40주년이라는 사족을 붙일 게 없다. 오랜만에 귀한 글을 읽는다고 호들갑을 떨수록 값은 떨어진다.
작가 스스로 “청탁에 밀려 막 쓴 글이 아니고 그동안 공들여 쓴 것들이어서 흐뭇하고 애착이 간다”고 했듯 한 구절 한 구절 읽어갈수록 미각은 살아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파노라마 같은 전경 속에 들어앉은 박완서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첫 장은 경기도 구리시 아치울 마을 자택 마당에 웅크리고 앉아 호미로 잡초를 뽑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다. “잔디밭에 등을 대고 누우면 부드럽고 편안하고 흙속 저 깊은 곳에서 뭔가가 꼼지락대는 것 같은 탄력이 느껴진다. (중략)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17쪽)
내 소유의 마당을 가꾸다가 노안에 비친 건너편 숲의 몽실거림을 차경(借景)의 묘미, 즉 빌려 보는 경치로 즐기는 지혜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산문집을 관통하는 아련한 정서는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을 기다리는 형국’이라고 표현한 대목이다. 스무 살 시절이면 박완서 문학의 시원이기도 한 6·25전쟁 전후의 시기다. 1·4후퇴 당시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오빠를 손수레에 태우고 여섯 식구가 죽을 힘을 다해 무악재를 넘다가 바퀴가 빠져버린 탓에 오도가도 못하고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서 겨울을 났던 바로 그 즈음이다.
“나는 그 겨울부터 다음 해 겨울까지 일 년동안 생리가 멎었다가 서울이 수복되고도 한참 있다가 다시 시작됐는데 아마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트랜스지방 풍부한 턱찌기 덕이었을 것이다. (중략) 그때 생리만 멎은 게 아니라 성장도 멎어버린 것 같다.”(67쪽)
두 번 다시 오빠를 소생시키지 못했던 그 겨울의 기억 때문에 이렇게 쓸 수 있는 지도 모른다. “이념이라면 넌더리가 난다. 좌도 싫고 우도 싫다. 진보도 보수도 안 믿는다. 김훈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다만 바퀴 없는 자들의 편이다.”(68쪽)
산문을 읽다보면 본 것이 많을수록 잃은 것도 많다는 생각이 스친다. 김수환 추기경, 박경리 선생, 박수근 화백, 소설가 이청준 등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가 만난 사람 가운데 거개가 세상을 떴으니 여기에 실린 글의 절반쯤은 저 세상 사람들에게 바치는 글인 것이다. 어쩌면 이 산문집은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 또는 ‘기억을 땅에 돌려주기 위해서’라는 지독한 역설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가령 이런 대목이다. “기억 중 나쁜 기억은 마땅히 소멸해야 하고, 차마 잊기 아까운 좋은 기억이라 해도 썩어서 꽃 같은 것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을.”(65쪽)
정철훈 선임기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